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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의정부화재와 판박이...제천 드라이비트 29명 화재 참사

중앙일보

입력

21일 오후 16명의 사망자를 낸 제천 복합건물 주변으로 구조헬기가 선회하고 있다. [연합뉴스]

21일 오후 16명의 사망자를 낸 제천 복합건물 주변으로 구조헬기가 선회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번에도 또 드라이비트였다.

2015년 의정부 아파트 5명 사망 126명 부상 #1층 필로티 구조, 외벽 마감재 '드라이비트' #드라이비트는 시멘트 안쪽에 스티로폼 구조 #저렴해 단열재로 인기..화재시 불쏘시개 역할 #전문가 "다중이용시설 내·외장 불연재 써야"

21일 29명의 목숨을 앗아간 충북 제천시 한 스포츠클럽 화재는 2년여 전인 2015년 1월 경기도 의정부의 한 아파트에서 발생한 화재와 판박이였다. 두 건물 모두 1층이 주차장인 필로티 구조인 데다 외벽 마감재가 드라이비트 공법이 사용됐기 때문이다. 불길이 삽시간에 위층까지 번져 시민이 대피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충북 제천시 하소동 9층짜리 스포츠센터에서 화재가 발생한 것은 21일 오후 3시53분. 1층 주차장에서 시작(추정)된 불이 외벽을 타고 위층으로 삽시간에 번졌다. 이로 인해 2∼3층 사우나와 4∼8층 헬스장과 레스토랑에 있던 시민의 피해가 컸다.

21일 오후 충북 제천시 하소동 9층짜리 스포츠센터 건물에서 화재가 발생해 최소 29명이 사망하고 29명이 다쳤다(오후 11시 현재). 긴급 출동한 119 소방대가 지붕까지 번진 불을 끄고 있다. [연합뉴스]

21일 오후 충북 제천시 하소동 9층짜리 스포츠센터 건물에서 화재가 발생해 최소 29명이 사망하고 29명이 다쳤다(오후 11시 현재). 긴급 출동한 119 소방대가 지붕까지 번진 불을 끄고 있다. [연합뉴스]

이날 불이 삽시간에 9층까지 번졌던 이유는 건물 외벽의 마감재가 ‘드라이비트’였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실제 119 소방대원들이 7분만인 오후 4시에 현장에 도착했지만 불은 건물 전체를 뒤덮은 뒤였다고 한다. 제천시도 해당 건물의 도면상, 최종 마감재로 드라이비트 공법이 사용됐다고 밝히고 있다.

드라이비트는 외벽에 스티로폼을 붙이고 그 위에 시멘트를 덧바르는 방식이다. 가격도 대리석 등과 비교해 3분의 1수준이다. 비용이 저렴하고 단열성능이 뛰어나다 보니 많이 쓰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화재가 발생할 경우 상황이 달라진다. 시멘트 안쪽에 붙은 스티로폼에 불이 붙으면서 유독가스와 함께 삽시간에 불이 번진다.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사고에서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양의 연기와 유독가스가 발생, 건물 9층까지 불길이 번지게 된 주범으로 지목되는 이유다.

21일 오후 충북 제천시 하소동 피트니스센터에서 불이 나 소방대원들이 화재 진압을 하고 있다.

21일 오후 충북 제천시 하소동 피트니스센터에서 불이 나 소방대원들이 화재 진압을 하고 있다.

문제는 이번 제천 화재사고가 2년여 전 발생한 의정부 도시생활 주택 화재와 똑같았다는 점이다. 의정부 화재는 2015년 1월 도시생활형 주택에서 발생, 5명이 숨지고 125명이 다쳤다. 300여 명의 이재민도 냈다. 당시 불은 1층 필로티 주차장에서 시작됐지만, 불이 외벽을 타고 위층과 옆 건물로 옮겨붙으면서 인명피해를 키웠다. 당시 소방당국은 해당 주택의 외벽 마감재가 ‘드라이비트’ 공법으로 돼 있다 보니 불이 순식간에 위층으로 번졌다고 밝혔었다.

2015년 의정부 화재 직후인 같은해 10월부터 6층 이상 고층 건축물은 가연성 외장재를 사용하 수 없도록 한 소방법이 개정됐다. 하지만 제천 스포츠센터 건물은 2012년 3월 사용승인 받아 이 개정법에는 해당되지 않았다.

필로티 구조와 드라이비트로 인해 대형참사가 날 뻔한 사고는 또 있었다.
지난 11일 천안시 서북구 두정동 한 원룸 화재가 그랬다. 소방당국이 도착했을 때는 화마와 연기가 이미 건물을 집어삼키고 있었다고 한다. 화재 발생 직후 저층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신속히 몸을 피할 수 있었지만, 고층에 있던 주민은 대피하지 못한 채 유독가스를 흡입했다. 다행히 사망자는 없었지만 12명이 부상을 당했다.
한 주민은 불길을 피해 3층(12m)에서 뛰어내리고도 했다고 한다. 소방당국은 건물의 외벽이 ‘드라이비트’ 공법으로 제작, 스티로폼이 타면서 유독가스와 함께 불이 번진 것으로 추정, 화재 원인을조사하고 있다.

2015년 의정부 한 아파트에서 발생한 화재가 바로 옆 아파트로 옮겨붙으면서 외벽이 무너져 내렸다.[중앙포토]

2015년 의정부 한 아파트에서 발생한 화재가 바로 옆 아파트로 옮겨붙으면서 외벽이 무너져 내렸다.[중앙포토]

백동현(62) 가천대 설비소방공학과 교수는 “다중이용시설에 대해서는 높이와 상관없이 내·외부 모두에 불연재를 사용하도록 더 강화할 필요가 있다”며 “특히 건물주 없이 개별 상가들이 소유권자인 경우 안전책임자의 말을 안 듣는 경우가 많은 만큼 안전책임자의 권한을 확대하는 방안도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의정부=임명수 기자 lim.myoungs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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