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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년 만의 단죄…‘드들강 여고생 살해범’ 무기징역 확정

중앙일보

입력

16년 전 여고생을 성폭행하고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범인에게 무기징역이 확정됐다. 살인죄 공소시효를 없앤 이른바 ‘태완이법’을 적용한 첫 판결이다.

2001년 여고생 꾀어 성폭행 후 살해 #증거 없어 미궁 빠졌다 2년 전 재수사 #살인죄 공소시효 폐지 '태완이법' 첫 적용

대법원 1부(주심 김신 대법관)는 22일 강간‧살인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된 김모(40)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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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는 2001년 2월 4일 새벽 인터넷 채팅을 통해 만난 피해자 박모(당시 17세)양을 승용차에 태워 전라남도 나주로 데려가 성폭행하고 살해한 혐의를 받았다. 박양의 시신은 나주의 드들강에서 발견됐다.

이 사건은 자칫 영구 미제로 남을 뻔했다. 사건 발생 당시 경찰이 대대적인 수사를 벌였지만 범인을 잡는 데 실패했다. 이후 2012년 8월 대검찰청 유전자 데이터베이스에 보관된 박양의 몸에서 검출된 DNA와 일치하는 사람이 나타나면서 수사가 다시 시작됐다.

그러나 DNA의 주인공인 김씨는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다. 그의 DNA가 박양의 몸에서 발견되긴 했지만 살해까지 했다는 증거가 없었다. 검찰은 그를 불기소 처분했고 사건은 다시 미궁으로 빠져드는 듯했다. 이후 2015년 살인죄 공소시효(25년)가 폐지되면서 박양 가족의 탄원으로 재수사가 시작됐다.

박양의 사망 시점을 밝히는 게 관건이었다. 이때 결정적인 증거가 발견됐다. 박양의 체내에서 채취한 용의자의 정액과 박양의 생리혈이 섞이지 않은 상태였던 것이다. 법의학자이면서 대검 법의학자문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정빈 단국대 법학과 석좌교수는 자신의 피를 뽑아 직접 실험한 끝에 정액과 혈액이 섞이지 않은 것은 성폭행 직후 곧바로 살해됐기 때문이란 사실을 입증해냈다. 검찰은 김씨가 박양을 성폭행한 직후 목을 졸라 살해한 것으로 보고 그를 기소했다.

이정빈 단국대 법학과 석좌교수. 이 교수는 2001년 나주 드들강 여고생 살해사건의 결정적 단서를 발견했다. [중앙포토]

이정빈 단국대 법학과 석좌교수. 이 교수는 2001년 나주 드들강 여고생 살해사건의 결정적 단서를 발견했다. [중앙포토]

재판 과정에서 김씨는 꾸준히 무죄를 주장했다. 그는 “박양과의 성관계가 기억나지 않는지만 DNA가 검출됐다고 해서 성관계는 가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그렇다고 박양을 살해한 건 아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김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해자는 성관계를 가진 뒤 빠른 시간 내에 신체기능이 정지됐고, 결국 성관계 강제 후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며 “검찰의 압수수색으로 확보된 김씨와 옛 여자친구가 찍은 사진 등도 기소될 것에 대비해 치밀하게 범행 직후의 행적을 조작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이 교수의 실험 결과는 김씨의 범행을 뒷받침할 증거로 인정됐다.

김씨는 불복했지만 2심 재판부는 그의 항소를 기각했다. 2심 재판부는 “1심 판단과 증거를 종합하면 유죄로 인정한 1심 판단은 정당하고, 양형도 부당하지 않다”고 밝혔다. 김씨는 다시 불복해 대법원에 상고했다. 검찰도 “죄질이 극악해 무기징역도 가볍다”며 같이 상고했다.

대법원은 “원심이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고, 형량에도 문제가 없다”며 양쪽의 상고를 모두 기각해 무기징역형이 확정됐다.

유길용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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