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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수 조작·낙하산 맞춤형·금품 수수…공공기관 채용비리 백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금융감독원과 강원랜드 등 공공기관 채용비리를 밝혀내는 검찰 수사가 반환점을 돌았다.

검찰, 공공기관 채용비리 15명 구속기소 #임원·정치인·노조 간부 등 채용비리 가세 #남자 뽑으려 여성 점수 낮춰 전원 불합격

대검찰청 반부패부는 공공기관 채용비리 수사를 벌여 15명을 구속하고 15명을 불구속기소 했다고 20일 밝혔다. 이날 발표는 감사원 감사에서 채용비리가 드러난 지난 7월 수사를 시작해 3개월간의 중간 수사 결과다.

비리 유형은 크게 4가지로 나뉜다. ▶지인 청탁형 ▶성 차별형 ▶낙하산 맞춤형 ▶금품 수수형 등이다.

김회룡 기자

김회룡 기자

서울남부지검이 수사 중인 금융감독원 채용비리의 경우 지인 청탁형에 속한다. 지난달 구속된 이문종 전 금감원 총무국장은 2015년 12월 김용환 NH농협금융지주 회장의 청탁을 받고 필기시험에 불합격한 모 국책은행 부행장 아들을 필기시험에 합격시킨 뒤 면접점수를 높게 주는 수법으로 최종 합격시킨 혐의(업무방해 및 직권남용)를 받는다.

강원랜드 채용비리의 경우 더욱 노골적이다. 2013년 4월경 강원랜드 2차 교육생 합격자가 확정된 뒤 최흥집 전 강원랜드 사장은 인사팀장 A씨에게 모 국회의원실에서 청탁한 21명의 지원자를 추가합격시키도록 지시한 혐의를 받고 있다. A씨가 이를 거절하자 해당 국회의원실 보좌관은 “두고 봅시다”라며 재차 추가합격을 강요했고, A씨는 면접 점수를 조작해 22명을 추가 합격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최종 추가합격자 중에는 노조위원장이 청탁한 1명도 포함돼 있었다.

여성 합격 인원을 줄이려고 여성 지원자의 면접 점수를 일부러 낮게 주고 남성 지원자에게는 높은 점수를 준 경우도 있었다. 대한석탄공사의 2014년 청년인턴 채용에서 벌어진 일이다. 석탄공사는 당시 여성지원자의 서류전형 점수를 고의로 낮게 주고, 서류전형을 통과한 여성 지원자의 면접 점수를 낮게 주는 방법으로 여성 지원자 142명 전원을 탈락시켰다. 반면 서류전형 점수를 높게 조작해 최종 합격한 이들도 있다. 당시 석탄공사 사장의 조카와 지인의 사위 등이다. 검찰은 청탁받은 지원자의 서류 점수를 만점으로 주고도 합격선에 못 미치자 다른 사람의 점수를 하향 조작했던 것으로 보고 있다.

10월 19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의 강원랜드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함승희 강원랜드 사장(가운데)이 강원랜드 채용비리 의혹 관련 자료의 출처 문제로 공방을 벌이는 여야 의원들을 지켜보고 있다. 박종근 기자

10월 19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의 강원랜드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함승희 강원랜드 사장(가운데)이 강원랜드 채용비리 의혹 관련 자료의 출처 문제로 공방을 벌이는 여야 의원들을 지켜보고 있다. 박종근 기자

한국가스안전공사는 2015년 신입사원 채용 시 면접 점수와 순위를 낮추는 식으로 여성 지원자 4명을 탈락시키고 남성 지원자 5명을 합격시킨 것으로 검찰 수사에서 드러났다. 남성 군필자와 지역 인재를 뽑는다는 명목이었다. 지난해 신입사원 채용에서도 면접 점수와 순위를 조작해 여성 3명을 포함해 합격 대상 11명을 탈락시키고 불합격 대상 11명을 합격시키기도 했다.

검찰 관계자는 “여성은 출산과 육아휴직 때문에 업무 연속성이 단절될 수 있다는 이유로 면접 점수를 조작해 탈락시킨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이 같은 채용비리를 지시한 혐의로 박기동 전 한국가스안전공사 사장을 구속하고 인사부장 등 간부 5명을 불구속기소 했다.

채용절차가 시작되기 전에 이미 채용 대상자를 내정해놓고 절차와 기준을 맞춰서 진행한 경우도 있었다. 한국서부발전은 지난해 10월 사장 선임 절차를 진행하면서 차기 사장으로 내정돼있던 B씨가 임원추천위원회 면접 과정에서 3배수 후보군에 포함되지 않자 B씨에게 가장 낮은 점수를 준 면접위원의 점수표와 가장 높은 점수를 준 지원자의 점수를 맞바꾸도록 해 3배수 후보를 조작한 것으로 드러났다. B씨는 결국 최종 사장으로 선임됐다. 검찰은 조작에 관여한 서부발전 기획처장과 산업부 서기관을 업무방해 혐의로 구속해 재판에 넘겼다.

김동연 부총리가 10월 2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공공기관 인사·채용 비리 근절 간담회 결과를 브리핑하고 있다. 왼쪽부터 홍남기 국무조정실장, 박상기 법무부 장관, 김 부총리,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 [연합뉴스]

김동연 부총리가 10월 2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공공기관 인사·채용 비리 근절 간담회 결과를 브리핑하고 있다. 왼쪽부터 홍남기 국무조정실장, 박상기 법무부 장관, 김 부총리,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 [연합뉴스]

교수 자리를 놓고 돈거래가 오간 경우도 적발됐다. 한국국제대학교의 학교법인 이사장 강모씨는 지난해 12월 C씨로부터 전임 조교수로 임용시켜달라는 청탁과 함께 4000만원을 받은 혐의(배임수재)로 구속기소 됐다.

이모 대구미래대 총장의 경우 자신이 교장으로 있던 경북영광학교 교사 채용 대가로 5명으로부터 1억3154만원을 받은 혐의(배임수재)로 구속됐다. 이 과정에 경북교육청 사무관도 가담해 채용 대가 4000만원을 받는가 하면 자신의 가족 3명을 영광학교와 부설단체에 취업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해당 사무관도 뇌물수수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 됐다.

공공기관 채용비리 규모는 향후 검찰 수사에 따라 더 확대될 전망이다. 검찰은 강원랜드 교육생 모집, 한국서부발전 사장 선임, 우리은행 신입사원 채용 과정의 비리 의혹을 수사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지역 정치인뿐만 아니라 임직원과 노조 간부마저 인사 청탁에 가담하는 등 구조적‧고질적 병폐가 극심했다”며 “공공성이 강한 민간 영역에서의 인사‧채용비리에 대해서도 지속적인 단속을 벌여 범행이 확인되면 지휘고하에 관계없이 엄정히 처리할 방침이다”고 말했다.

유길용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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