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보도 개입' 이정현 불구속 기소...보도 개입 기소 첫 사례

중앙일보

입력

지난 10월 16일 국회 국방위 국정감사에 참석한 이정현 의원. 임현동 기자

지난 10월 16일 국회 국방위 국정감사에 참석한 이정현 의원. 임현동 기자

세월호 참사 당시 KBS 뉴스 보도에 개입한 혐의로 고발된 이정현(59) 무소속 의원이 재판에 넘겨졌다. 서울중앙지검 공공형사수사부(부장 김성훈)는 이 의원을 방송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고 19일 밝혔다. 이 의원이 재판을 거쳐 처벌될 경우 방송법상 보도개입 혐의로 처벌되는 첫 사례가 된다.

KBS 세월호 보도 수정 ·삭제 요구 #검찰 시민의원회 '기소 의견' 반영돼 #"단순 항의 넘어 강력한 보도 개입" #함께 고발된 길환영 전 사장은 '혐의없음'

박근혜 정부 청와대 홍보수석으로 일한 이 의원은 2014년 KBS가 세월호 참사 당시 해경 구조활동의 문제점을 비판하는 보도를 하자 김시곤 당시 KBS 보도국장에게 보도 자제를 요구한 의혹을 받고 있다. 앞서 전국언론노동조합(언론노조) 등이 공개한 녹취록에 따르면 이 의원은 2014년 4월 21일 김 전 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10일 후에 정리된 뒤에 (보도)해달라“ ”이렇게 중요할 때 해경, 정부를 두들겨 패는 게 맞느냐.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같은 달 30일엔 “‘KBS 뉴스9’을 대통령이 봤다”며 비판적인 보도를 심야뉴스에서 보도하지 말아 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검찰 관계자는 “이 의원의 발언을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정부 비난 여론을 의식해 해경 비판 보도를 중단하고, 보도 시기를 조절하게 하는 한편 보도 내용을 변경하고 대체할 것을 강력히 요구한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했다. 또 “홍보수석의 업무 범위를 고려하더라도 단순 항의나 의견 제시를 넘어 방송 편성에 대한 직접적인 간섭에 해당한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방송법 제4조와 제105조는 방송 편성의 자유·독립을 침해한 경우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검찰은 앞서 검찰 시민위원회에 사건을 회부해 시민 위원들의 의견을 청취하고, 자율 토론 뒤 모인 의견을 존중해 처분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시민 위원 9명 중 대부분이 이 의원을 기소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고 한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동 KBS 사옥 [중앙포토]

서울 영등포구 여의동 KBS 사옥 [중앙포토]

법조계 안팎에선 검찰의 이번 기소가 이례적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청와대 홍보수석의 특성상 언론을 접촉하는 일이 많은 데다 보도 개입 혐의로 특정인이 기소된 것이 처음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검찰 관계자는 “단순히 청와대 측 의견을 방송사에 전달하는 차원을 넘어 특정 보도를 뉴스 프로그램에서 빼거나 편성을 바꿀 것을 요구하는 등 혐의가 가볍지 않다고 봤다”며 “최상위 국가 기관인 청와대 차원에서 이뤄진 방송사에 대한 압박인 데다 당시 녹음파일 등 구체적인 증거가 남아 있다는 점도 고려했다”고 말했다.

검찰은 이 의원의 직권남용 혐의에 대해선 공소장에 반영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검찰 관계자는 “일부 보도가 연기되고 수정이 됐지만 보도 자체는 이뤄졌기 때문에 직권남용 혐의 적용은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같은 혐의로 고발된 길환영(63) 전 KBS 사장에 대해선 혐의없음 처분을 내렸다. 정부 등 외부 권력이 아닌 방송사에서 일하는 내부 종사자 사이에서 벌어진 방송 편성 규제, 간섭 행위를 처벌할 규정이 없다는 이유다. 검찰 관계자는 “신문사 발행인과 편집인의 관계에 있어 법적 논의가 정리되지 않아 처벌 규정이 없다고 판단한 헌법재판소의 결정례를 참고했다”고 말했다.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와 언론노조 등은 2016년 6월 16일 이 의원을 방송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검찰은 지난 8월 이 의원을 불러 조사한 뒤 기소 여부를 검토했다.

손국희 기자 9key@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