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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차 시트로 만든 가방의 반란…사회적 기업 '모어댄' 뜬 비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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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2호 15면

모어댄 최이현 대표(앞줄 가운데)와 회사 직원들이 자사 제품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제품들은 모두 폐 자동차에서 나온 가죽을 활용해 만든 것이다. [사진 모어댄]

모어댄 최이현 대표(앞줄 가운데)와 회사 직원들이 자사 제품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제품들은 모두 폐 자동차에서 나온 가죽을 활용해 만든 것이다. [사진 모어댄]

‘모어댄’ 연매출 4억 돌파 눈앞

사회적 기업이 빠르게 늘고 있다. 12월 현재 사회적 기업 수는 1856곳(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기준)을 헤아린다. 사회적 기업의 전체 매출이 2조원 선에 이른다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먼 것도 사실이다. 인재난을 겪는 것은 물론 근근이 명맥만 이어가는 곳도 상당수다.

지갑 등 패션용품 업사이클링 #가죽 세척 세제 개발에만 1년 반 #4개월간 공정 거쳐 재료 완성 #명품업체 장인에게 생산 맡겨 #‘한 달 3일 근무’로 인재 영입도 #가방 브랜드 ‘컨티뉴’ 20만원대 #‘엘카’는 주문 밀려 40일 기다려야

모어댄은 폐자동차에서 수거한 가죽시트와 에어백 등을 이용해 가방과 지갑 같은 패션용품을 만드는 업사이클링(Up-cycling) 사회적 기업이다. 연 매출 4억원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이 회사가 생산한 제품은 ‘컨티뉴(Continew)’란 브랜드로 판매된다. 기술력과 폐자동차에서 나온 가죽 등을 활용한다는 아이디어의 독창성 등을 인정받아 SK이노베이션의 프로보노 활동인 사회적 기업 발굴 지원사업에 선정되기도 했다. 모어댄 최이현(36) 대표를 14일 만나 사회적 기업으로서 생존하는 데 필요한 조건들이 무엇인지 물었다.

사회적 기업이기 때문에 품질 더 신경 써야

모어댄 직원들이 폐차에서 제품 제작에 필요한 가죽을 뜯어내고 있다. [사진 모어댄]

모어댄 직원들이 폐차에서 제품 제작에 필요한 가죽을 뜯어내고 있다. [사진 모어댄]

최 대표가 자사 백팩을 들고 있다. 가방을 만드는 데에는 4개월가량의 시간이 걸린다. [사진 모어댄]

최 대표가 자사 백팩을 들고 있다. 가방을 만드는 데에는 4개월가량의 시간이 걸린다. [사진 모어댄]

사회적 기업인임에도 그는 가장 먼저 사회적 기업이라는 울타리에 기대지 말 것을 주문했다. 최 대표는 “사회적 기업 역시 영업활동을 하는 기업인 만큼 ‘사회적’이란 단어보다는 ‘기업’이라는 말에 방점을 두고 활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개별 사회적 기업들이 각자의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는 얘기다.

그가 사업을 시작한 계기는 우연에 가깝다. 최 대표는 영국 유학 시절 타고 다니던 차가 폐차당할 정도의 사고를 경험한 일이 있다. 아꼈던 차라 가죽시트를 뜯어 왔는데 패션을 공부하는 친구들이 그에게 가죽으로 소파를 만들 것을 권유한 게 그 시작이다. 그는 “그 일을 계기로 자동차 강국인 우리나라에서는 자동차 시트용 가죽을 재활용하는 일이 얼마든지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2015년 6월 창업을 했다”고 말했다.

현재 그가 만드는 제품은 가방과 지갑류 등 51가지. 내년에는 재활용 가죽으로 신발류까지 만들겠다는 포부다. 주재료인 가죽은 폐차장 등에서 얻는다. 폐차장 역시 기존에는 가죽을 별도의 비용을 내고 처분했던 터여서 재료를 얻는 데는 문제가 없다.

재료는 무료이지만 컨티뉴 가방 가격은 20만원에 이른다. 제품 중 ‘엘카’란 모델은 지금 주문해도 40일가량 뒤에야 받을 수 있다. 그만큼 주문이 밀려서다. 모어댄은 사회적 기업이지만 제품력은 업계 최고라고 자부한다. 다른 사회적 기업들에는 가장 약점으로 꼽히는 부분이다. 모어댄은 자체 공장을 갖고 있지 않다. 대신 전량 명품 업계의 가방 장인이 만든다. 최 대표는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명품 가방을 만드는 장인들에게 우리 제품의 생산을 맡겼다”며 “품을 많이 들이는 만큼 경쟁업체 가방보다 원가가 2배 이상 든다”고 말했다. 그가 가방 장인에게 제품 생산을 맡긴 건 역설적으로 원재료인 가죽이 무료여서다. 최 대표는 “폐차 가죽으로 대충 만들었다는 소릴 듣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폐차 가죽으로 만드는 만큼 꼼꼼한 세척 등은 기본이다. 가장 공을 들이는 부분이기도 하다. 가죽에 배어 있는 담배 냄새나 방향제 냄새를 제거하기 위해 물 세척은 기본이다. 가죽이 상하지 않도록 자체 개발한 세제를 사용한다. 세제 개발에만 1년 반의 시간이 들었다. 세척 이후 특수코팅 등 여러 단계를 거친다. 이렇게 가방용 가죽을 만드는 데만 4개월가량의 시간을 쏟는다.

덕분에 모어댄 제품은 반품이 거의 없다. 제품에 불만이 있는 소비자에게는 무조건 교환해 주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최 대표는 “한 번은 구입한 지 1년쯤 된 가방을 수선해 달라고 보내 주신 분이 있었는데 오히려 오랫동안 잘 사용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기분이 들더라”며 “당연히 무료로 애프터서비스(AS)를 해 드렸다”고 소개했다.

최 대표는 무리한 판매 목표를 세우지 않는다는 걸 원칙으로 삼고 있다. 모어댄 제품은 자체 인터넷 홈페이지와 경기도의 스타필드 고양, 교보문고 핫트랙스 등에서 판매된다. 종종 추가로 점포를 내라는 제안을 받지만 아직은 시기상조란 생각이다. 여기엔 사업 초기 경험이 작용했다. 모어댄이 처음 제품을 선보인 건 지난해 2월. 당시 시장 반응을 보기 위해 가방 100개와 지갑 500개를 내놓았다가 4일 만에 완판됐다. ‘재활용되지 않는 가죽 자원을 활용한 가방’이란 콘셉트가 제대로 먹힌 덕분이다.

하지만 그는 여세를 몰아 생산량을 키우기보다는 7개월 동안 제품 생산을 중단하고 내실을 다졌다. 자금력이나 생산력이 완전히 다져지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생산 규모를 확대하는 일은 되레 독이 될 거란 생각에서였다. 그래서 본격적인 제품 출시는 같은 해 9월부터 이뤄졌다.

최 대표는 또 “쓴소리를 듣는 일을 피하지 않으려 한다”고 말했다. 제품 출시 초기인 만큼 적극적으로 소비자들의 의견을 반영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그래서 그는 매장을 찾는 소비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할 뿐 아니라 온라인 설문조사업체 등을 통해 제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목소리를 꾸준히 파악한다.

유연한 인재 채용도 모어댄의 특징이다. 특히 모어댄은 전일제 근로자가 아닌 파트타이머(Part-timer) 고용에 적극적이다. 그래서 현재 11명인 모어댄의 직원 중 절반가량이 경력단절 여성이다. 최 대표는 “사회적 기업에 가장 필요한 건 능력 있는 인재지만 대기업과 달리 많은 돈을 지불하긴 어렵다”며 “대신 능력은 있지만 개개인의 사정으로 직장을 그만둬야 했던 분들을 중심으로 영입했다”고 말했다. 일종의 틈새 전략이다. 한 예로 모어댄의 제품 라인업을 짜는 이는 국내 대형 명품업체에서 상품기획본부장으로 일했던 여성이다. 그는 육아를 위해 이전 회사에서 퇴사했다. 최 대표는 그에게 ‘한 달에 3일만 출근해 달라’고 요청해 영입에 성공했다. 매장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근무시간도 제각각이다. 평일과 주말 근무자도 다르다. 각자 사정에 맞춰 근무할 수 있도록 해서다.

“대기업·유통업체 냉대에 무뎌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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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대표는 사업 도중 발생하는 난제들은 주변에 적극적으로 알리고 의견을 구한다. 불리한 일은 일단 감추고 보는 관행과는 반대다. 모어댄뿐 아니라 다른 사회적 기업들 역시 조직 규모가 작은 데서 오는 한계도 분명하다. 규모가 작은 만큼 조직 전반에 쌓여 있는 암묵지도 부족하다. 모어댄이 한 백화점에 팝업 스토어(pop store·짧은 기간 일시적으로 운영하는 상점) 형태로 입점할 당시 어느 정도 입점 수수료를 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도 끊임없이 유통 업계를 찾아다닌 덕에 합리적인 선에서 해결할 수 있었다.

모어댄을 지원 중인 SK이노베이션 관계자들에게도 수시로 경영 현안과 관련한 의견을 구한다. 그는 또 다른 사회적 기업인에게 “무뎌지라”고 조언했다. “스타트업은 대기업이나 대형 유통업체가 볼 때는 발에 차이는 사람들인 만큼 그 부분에 일일이 상처를 받다 보면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이라며 “물어보는 게 흉도 아니고 조금 냉대를 당하더라도 더 떳떳하게 묻고 찾아갈 수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사회적 기업에 대한 지원이 실효가 없는 경우가 많다는 점은 큰 아쉬움이다. 최 대표는 “사회적 기업 지원단체에서 유통 기업과 사회적 기업을 이어 주는 매칭데이(Matching) 행사가 열려 갔더니 나에게 배정된 대기업 관계자는 된장이나 간장 같은 전통 장류를 취급하는 바이어였다”며 “필요한 일을 핀셋처럼 집어 처리하는 대기업과는 큰 차이”라고 말했다. 또 사회적 기업에 대한 지원이 형식 요건에 치중한 부분이 많아 실질적인 도움을 받기는 어렵다고 했다. 그는 경력단절 여성 고용 문제를 예로 들며 “사회적 기업이 경력단절 여성 고용과 관련한 지원을 받으려면 해당 경력단절 여성이 소정의 교육 과정을 이수한 분이어야 한다”며 “경력단절 여성 중 교육 프로그램을 이수할 여건이 안 되는 분은 취업하기 더 어렵게 만드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모어댄의 내년도 매출은 올해보다 2배 이상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의 목표는 국내 시장만이 아니다. 최 대표는 “회사를 세울 때 전 세계 어디를 가든 우리 제품을 가진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시작했다”며 “가죽 폐기물로 인한 고민이 우리만의 문제가 아닌 만큼 한곳에서 많이 파는 것 못지않게 전 세계에서 사랑받는 브랜드로 키워 내고 싶다”고 했다. 내수시장만 바라보는 대부분의 사회적 기업과 또 다른 차이다.

이수기 기자 retali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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