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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북춤클럽’은 안 되나요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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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2호 29면

[CULTURE TALK] 한국무용도 TV예능으로 보고 싶다 

다시 TV에 춤바람이 분다. ‘최초의 발레 예능’을 표방한 KBS의 ‘발레교습소-백조클럽’ 얘기다. 박주미·오윤아·김성은 등 연예인들이 본업을 제쳐두고 발레에 도전 중인데, 연말 부산 공연을 목표로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발레리나 출신의 배우 왕지원, 무용을 전공한 아이돌 성소, 리듬체조 요정 손연재 등 ‘선수급’ 출연자들도 저마다 사연을 어필하고 있지만, 결국 무용과 거리가 먼 아줌마 배우들의 좌충우돌 성공기가 될 것 같다. 발레복을 처음 입어보는 아줌마들이 자아실현을 위해 일생일대의 용기를 내고, ‘절친’을 만나 동기부여도 받는 흐름이 딱 ‘아줌마판 빌리 엘리어트’다.

발레팬들에겐 뜻밖의 ‘깨알 재미’도 있다. 쟁쟁한 발레 스타들이 보조 출연자로 투입되기 때문이다. ‘예술감독’ 김주원을 비롯해 국립발레단 주역무용수 김지영·김기완, 근황이 궁금했던 김현웅·이승현 등이 화려한 무대의상을 벗고 친절한 선생님으로 연습실에 강림하는 것이다. 이래저래 고상한 발레를 확 가깝게 끌어오는 ‘대중화’ 코드인 셈이다.

그런데 왜 발레일까. 발레란 팔다리가 긴 서구적 체형이 미적 기준이 되는 장르다. 아줌마라도 몸이 예쁘기로 유명한 연예인들이 선을 드러내는 발레 연습복을 입은 모습에 다이어트 욕구가 불타는 한편, 대중매체가 여전히 서구적 미의 기준을 확대하는데 머물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사실 발레는 이미 꽤 대중화됐다. 국립발레단·유니버설발레단의 공연은 거의 매진사례고, 주변에 운동삼아 하는 여성들도 적지 않다. ‘백조클럽’에 자극받은 젊은 엄마들이 자녀의 몸매 교정을 위해 발레를 가르치는 흐름도 더 굳건해질 것 같다.

반면 한국무용은 어떤가. 대중매체에 노출되는 일도 없고, 어린 아이에게 한국무용을 가르치겠다는 엄마도 없다. 소수 전문가의 영역일 뿐인 것이다.

며칠 전 국악 전공 학생들의 공연에 갔다가 ‘부채입춤’을 추는 무용과 아이들의 고운 자태에 홀딱 반했다. 세련된 색감으로 톤을 맞춘 때깔 고운 한복은 탐이 날 정도였고, 일정한 틀 속에서 은근히 자유로운 춤사위도 멋스러웠다. ‘진도북춤’의 화끈한 스펙터클에 이르자 ‘나도 좀 두들겨 보고 싶다’는 욕망까지 일었다. 중학생들의 실력이 이 정도다.

느리고 지루하다 여기지만, 한국무용은 원래 꽤 재미있다. 이번 주 공연된 국립무용단의 ‘향연’(17일까지 국립극장)은 2015년 초연 이후 만 2년간 4회 공연 연속매진에 20~30대 관객이 60%라고 한다. 연출과 무대 디자인에 ‘디스플레이의 천재’ 정구호의 손길을 거쳤을 뿐, 최근 ‘대한민국 최고무용가상’을 수상한 조흥동 선생의 전통 안무에 요즘 사람들도 충분히 호응한다는 얘기다.

특히 소고춤과 오고무·장구춤 등 타악기를 동반한 춤은 세상 어떤 춤 못잖게 스펙터클하고 테크닉도 화려하다. 해외 유명 안무가들도 ‘한국 무용수들은 댄서이자 악사’라며 감탄하곤 한다. 아이돌이나 유명 연예인이 TV채널 돌리는 속도를 능가하는 박진감 넘치는 한국춤에 땀흘려 도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아름다운 한복을 입고 공연까지 한다면 어떨까. 우리만 몰랐던 한국적인 아름다움에 눈뜨는 일도 있지 않을까. TV예능의 영향력이 막강한 시대에 문득 든 생각이다.

글 유주현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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