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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끝마을 달마산에 '치유의 달마고도’ 만든 미황사 금강스님

중앙일보

입력

미황사 주지인 금강 스님이 달마고도를 기획한 배경과 길을 만든 과정들을 설명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미황사 주지인 금강 스님이 달마고도를 기획한 배경과 길을 만든 과정들을 설명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달마대사의 법신(法身)이 모셔진 산자락 곳곳이 철심과 말뚝·밧줄 때문에 신음하는 것을 더는 지켜만 볼 수 없었습니다.”

‘땅끝’에 달마고도(達摩古道) 만든 금강 스님 #‘천년고찰’ 미황사 일대 17㎞ 도는 ‘치유의 길’ #올 초부터 250일간 연인원 1만명 투입해 조성 #“자연훼손 안돼”…삽·괭이·호미 이용해 공사 #6시간 동안 땅끝 풍광과 동백 군락지 등 체험 #“천년옛길을 남도의 명품 '치유의 길'로 조성”

'땅끝마을'인 전남 해남의 미황사(美黃寺) 주지 금강(52) 스님은 ‘달마고도(達摩古道)’라는 길을 만든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스님은 “1000년이 넘은 옛길을 자연 친화적인 치유의 길로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미황사 주지인 금강 스님이 기존 바위와 나무 등을 최대한 살린 달마고도를 만든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미황사 주지인 금강 스님이 기존 바위와 나무 등을 최대한 살린 달마고도를 만든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그는 ‘땅끝마을’ 인근인 해남 달마산을 한 바퀴 도는 달마고도를 기획한 설계자다. 그의 감독 아래 지난달 18일 개통된 트레킹 코스에는 연일 탐방객들이 몰리며 남도를 대표하는 명품 길로 자리 잡고 있다. 달마산은 ‘천년고찰’인 미황사를 병풍처럼 안고 있는 모습이 아름다워 일찍부터 ‘남도의 금강산’으로 불렸다.

달마고도는 미황사를 출발해 큰바람재~노시랑골~몰고리재 등 17.7㎞를 도는 길이다. 6시간 동안 남해·서해의 풍광과 땅끝마을의 논밭들을 감상하며 산행을 할 수 있다. 길 곳곳에 있는 동백나무와 산벚나무·엄나무 군락지 등을 체험하는 것도 달마산 등반의 묘미다.

기암괴석이 일품인 달마산 능선에서 바라본 땅끝마을 일대의 전경. 프리랜서 장정필

기암괴석이 일품인 달마산 능선에서 바라본 땅끝마을 일대의 전경. 프리랜서 장정필

달마고도는『신증동국여지승람』에 ‘달마산은 달마대사의 법신이 늘 상주하는 곳’이라고 적혀 있는 점에 착안해 만든 명칭이다.금강 스님은 “달마고도는 인도불교가 들어온 ‘전례의 길’이자 고려 때 달마산에 있던 암자 12개를 연결하는 ‘수행의 길’, 땅끝마을 사람들이 산길을 걸어 장에 갔던 ‘삶의 길’을 연결했다는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금강 스님은 산악사고가 잦은 달마산 등반객의 안전과 천혜의 자연환경을 보존하기 위해 달마고도를 착안했다. 그는 “달마산의 뒤편은 워낙 경사가 심하고 산세가 험한 데다 바위가 많아 매우 위험한 구간”이라며 “산에 오르려는 사람들이 바위에 철심을 박거나 함부로 계단을 깎는 등 산을 망가뜨리는 게 안타까워 길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미황사 주지인 금강 스님이 기존 바위와 나무 등을 최대한 살린 달마고도를 만든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미황사 주지인 금강 스님이 기존 바위와 나무 등을 최대한 살린 달마고도를 만든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달마고도는 연인원 1만 명이 최소한의 장비만을 이용해 만든 친환경 트레킹 코스다. 하루 40여 명의 작업자들이 250여 일 동안 곡괭이와 삽·호미만을 이용해 길을 냈다. 산 뒤편의 경우 대부분의 구간이 기존 산비탈을 깎아야 하는 난코스였지만 중장비는 일절 사용하지 않았다. 때문에 기존 옛길과 새로 길이 난 산비탈 등에 놓여있던 바위와 돌·흙무더기 등은 모두 맨손이나 지게를 이용해 운반해야 했다.

작업자들은 큰 바위들이 많거나 위험한 코스를 만나면 “이곳만이라도 중장비를 쓰자”고 호소했지만, 금강 스님은 이것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금강 스님은 “달마산은 돌이 많고 흙은 적어 돌과 흙을 일일이 져 나르며 길을 내는 게 가장 힘들었다”며 “산이 높지 않으면서도 기암괴석으로 이뤄진 달마산 산행의 즐거움을 높이기 위해 많은 사람이 고생을 했다”고 말했다.

미황사 주지인 금강 스님이 기존 바위와 나무 등을 최대한 살린 달마고도를 만든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미황사 주지인 금강 스님이 기존 바위와 나무 등을 최대한 살린 달마고도를 만든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기존 옛길에 있던 나무나 돌들을 최대한 살린 것도 이 길의 특징이다. 달마산자락에 있는 20여개의 너덜겅(돌밭)을 관통하는 길은 모두 큰 바위와 돌을 일일이 옮겨 만든 작품이다. 너덜겅을 통과하는 달마고도는 기존 큰 바위들 사이에 돌을 채워 길을 만들었는데 긴 곳은 200m에 달한다.

코스 곳곳에 남아있는 큰 바위나 나무·바위에 파고든 나무들의 모습을 보는 것도 산행의 묘미다. 금강 스님은 “나무데크나 출렁다리 같은 시설물들은 당장 공사 때는 편리하지만, 자연을 훼손할 가능성이 크고 보수를 잘 하지 않으면 쓰레기가 된다”며 “흙과 돌로만 이뤄진 길을 불편하지 않게만 걸을 수 있도록 돌이 많은 곳은 돌로, 흙이 많은 곳은 흙길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미황사 주지인 금강 스님이 기존 바위와 나무 등을 최대한 살린 달마고도를 만든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미황사 주지인 금강 스님이 기존 바위와 나무 등을 최대한 살린 달마고도를 만든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달마고도의 탄생은 2012년으로 올라간다. 금강 스님이 당시 미황사를 방문한 이낙연 국무총리에게 “옛길을 이용한 순례길을 만들고 싶다”고 제안한 게 계기였다. 달마산의 경우 워낙 산세가 험한 탓에 등반객들이 부상을 입는 경우가 많은 데다 정상에 오르려는 욕심에 산을 훼손하는 것을 막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금강 스님은 “위험을 무릎 쓰면서 산꼭대기를 오르기보단 8~9부 능선인 달마고도에서 정상을 바라봤으면 하는 마음에 길을 제안했다”고 말했다.

당시 국회의원이던 이낙연 총리는 전남지사가 된 후 달마고도 조성을 위한 지원에 나섰다. 이 총리는 길 조성을 위한 지원을 시작하면서 금강 스님에게 “공사감독을 맡아 달라”고 요청했다. 달마고도의 총감독직을 맡은 그는 꼼꼼하게 길을 설계하기 시작했다. 지리산 둘레길을 샅샅이 돌아다니며 달마고도의 코스나 테마 등을 기획했다. 전남도·해남군 직원 등과 수십차례 회의를 통해 사전 계획을 세운 것도 친환경적인 길을 완성하는 데 도움이 됐다.

해남 달마산의 바위와 나무 등을 최대한 살린 달마고도 모습. 프리랜서 장정필

해남 달마산의 바위와 나무 등을 최대한 살린 달마고도 모습. 프리랜서 장정필

금강 스님은 달마고도를 한국을 대표하는 ‘수도의 길’로 만들기 위한 향후 계획도 밝혔다. 달마산 앞·뒤편으로 난 지선(支線) 8곳을 정비함으로써 등산로 곳곳을 세밀하게 연결하는 일이다. 몇몇 구간에는 화장실을 설치할 생각이지만 벤치나 휴게시설 등 다른 시설물은 일절 만들지 않을 계획이다. 내년 초부터는 달마고도 입구에 길이 만들어진 과정과 산행하는 요령 등을 담은 안내판도 설치한다.

미황사 주지인 금강 스님이 달마고도를 기획한 배경과 길을 만든 과정들을 설명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미황사 주지인 금강 스님이 달마고도를 기획한 배경과 길을 만든 과정들을 설명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해남이 고향인 금강스님은 1989년 11월부터 미황사에서 수행해왔으며, 2000년 2월부터 주지를 맡고 있다. 미황사 부임 이후 사찰 재건과 템플스테이 등을 적극 추진했다. 이를 통해 신라 경덕왕 8년(749년)에 세워진 천년고찰의 명성을 회복하는 데 앞장섰다.
금강 스님은 “수행하는 마음으로 돌 하나하나를 나르다 보니 자연과 가장 친한 길이 만들어졌다”며 “수행의 길을 찾은 탐방객들이 삶의 지혜를 깨달을 수 있도록 길을 걸을 때의 마음가짐과 호흡방식, 걸음걸이 요령 등을 설명하는 방법도 찾고 있다”고 말했다.
해남=최경호 기자 ckhaa@joongang.co.kr

해남 달마산의 명소 중 한 곳인 도솔암 전경. 프리랜서 장정필

해남 달마산의 명소 중 한 곳인 도솔암 전경. 프리랜서 장정필

유난히 바위가 많은 해남 달마산 너덜겅 모습. 프리랜서 장정필

유난히 바위가 많은 해남 달마산 너덜겅 모습. 프리랜서 장정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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