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건강철학(5)-이시형 <고려병원·신경정신과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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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자기를 돌아본다>
무엇이 그로 하여금 이리도 깊은 생각을 하게 했을까.『죄와 벌』『카라마조프의 형제』 를 읽으면서 나는 줄곧 작가「도스토예프스키」의 생애를 생각하곤 했다.
그는 가난과 방황 속에 음울한 한 시대를 살아야 했다. 혁명의 물결 속에 체포되어 사형선고까지 받았다. 특사로 사형은 면했으나 고독하고 힘든 시베리아 유형생활까지 했어야 했다. 운명의 신은 그도 모자라 고질인 간질까지 안겨주었다. 발작이 올 때마다 삶의 행진을 멈춰야 했다. 그때마다 좌절과 실의 속에 빠지곤 했지만 줄기찬 생애의 정열은 식지 않았다. 쓰러지면 생각하고 일어나면 다시 붓을 잡았다.
그러한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겪으면서 그의 내면세계는 더욱 성숙되어갔다. 신과 인간의 문제에까지 깊은 사색을 할 수 있었다. 그는 이윽고 어떤 이데올로기나 혁명적 투쟁보다 종교에의 귀의만이 러시아, 아니 인류의 평화를 가져다준다는 걸로 확신하게 된다. 그의 작품세계는 이러한 정신적 체험을 바탕으로 펼쳐진다.
그가 간질환자였기에 그런 불후의 명작을 쓸 수 있었던 건 물론 아니다.
하지만 그는 고질병에도 굴하지 않았다. 발작이 있을 때마다 포기하지 않고 깊은 사색에 빠졌다.
여기에 그의 위대성이 있는 것이다.
살다보면 누구나 아플 수 있다. 안 아프면 좋겠지만 병이 날수도 있다는 걸 외면할 순 없다. 아픈 거야 괴롭겠지만 그렇다고 끙끙 앓기만 해야 하는 게 투병의 자세는 아니다. 우선 왜 이 지경까지 되었나 부터 생각해봐야 한다. 병이 난다는 건 내 생활 어딘가에 허점이 있다는 증거다. 교통사고를 당한 것도 조심 없이 길을 건넜기 때문이다. 아니 처음부터 비오는 휴일이면 집에서 쉴 것이지 굳이 소풍을 간답시고 길을 나선게 잘못이었다.
어디 이뿐이랴. 만용을 부리다 깡패에게 얻어맞은「돈·키호테」도 있을 것이다. 멋 부린답시고 한 겨울에 셔츠바람으로 돌아다나다 폐렴에 걸린 청년도 있을 게다.
과로에, 술에 강행군이 빚은 몸살, 단것을 못 참아 당뇨병을 악화시킨 딱한 신사도 있다.
이 좋은날 병석에 누워야하는 심경은 서글프고 처량할 게다. 다시는 그러지 말아야지, 무 리도 않고 과음도 않을 것이다, 조심성 없는 성격도 좀 고쳐야겠다….
하지만 앓고 일어나면 그뿐, 언제 그랬느냐는 듯 까맣게 잊고 또 옛날생활로 되돌아간다. 이게 보통사람의 마음이다.
이건 불행이다. 앓고도 얻는 교훈이 없다. 2중의 손해다. 기왕 앓을 바엔 얻는 게 있어야한다. 병석에 누워 책 한 권이라도 읽어야 한다. 인간의 문제, 운명이라는 것, 신의 존재까지 물어야한다.
참으로 좋은 기회다. 별로 찾아오는 이 없는 병실생활. 이제사 내가 나를 만나게 되는 순간이다. 많은걸 생각하게 될 것이다. 앓게된걸 계기로 자기의 운명이 바뀌었다는 사람도 있다. 아프다는 건 인격수양이다. 오랜 투병생활을 거친 사람은 그만큼 인격적으로 성숙되는 것도 사실이다.
건강하게 뛰어다닐 적엔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내가 어디로, 어떻게 가고있는지도 의식 못한다. 병석에 누워야 비로소 자기를 돌아보게 되는 기회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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