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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석의 Mr. 밀리터리] 미국의 대북 최후통첩, 다음은 해상차단과 선제공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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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미국이 한반도에서 대북 군사옵션을 위한 모든 군사훈련을 마친 가운데 북한에 대해 최후통첩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는 조치에 들어갔다. 한·미는 지난주까지 최대 규모의 연합공군훈련을 마쳤다. 한반도에 집결했던 항공모함 3척도 해상훈련 뒤 잠시 휴식 중이다. 이제 북한 핵·미사일 위기는 네 번째 위기 봉우리인 클라이맥스를 향하고 있다. 북한이 끝내 대화에 나오지 않으면 미국은 무력충돌을 야기할 수 있는 군사옵션인 해양차단에 들어갈 조짐이다.

미 “충돌 피할 시간 얼마 없다” #북, 공해에서 선박 통해 불법 거래 #북, 해상봉쇄하면 “무자비 대응” #해양차단 과정서 교전도 가능 #한국 해양차단 참가 미지수 #중국이 나서야 효과적 차단

미국의 북한에 대한 최후통첩성 메시지는 미 국무부와 백악관에서 거의 동시에 나왔다. 얼핏 들으면 대화의 창을 연 것으로 보일 수 있지만 뒤집어 보면 영락없는 최후통첩 메시지다.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은 지난 12일 애틀랜틱 카운슬 토론회에서 “우리는 (북한과) 전제조건 없이 북한과 대화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그동안 중국이 미국과 북한에 조건 없이 대화하라는 주문대로 틸러슨 장관이 북한에 대화를 요청했다. 맥매스터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워싱턴DC에서 열린 영국의 싱크탱크 ‘폴리시 익스체인지’ 주최 행사에서 “지금이 (북한과의) 무력충돌을 피할 마지막 최고의 기회”라고 말했다. 이에 미 백악관 세라 허커비 샌더스 대변인은 14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북한 비핵화) 견해는 바뀌지 않았다”며 선을 그었다. 결국 틸러슨 국무장관이 마지막 대화의 여지를 북한에 던진 뒤에 백악관은 북한 비핵화 의지를 다시 밝혔고, 맥매스터 보좌관은 “북한과의 무력충돌을 피하기 위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취지의 말로 북한에 대해 마지막 기회임을 통보한 것이다.

여기에서 맥매스터의 이어지는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정제연료 제품이 (공해에서) 선박 대 선박으로 (북한으로) 전달되고 있는데 여기에 관여한 기업은 가장 가혹한 경제적 제재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국제법 전문가인 이창위(법학전문대학원) 서울시립대 교수는 “북한이 대화에 나오지 않으면 미국은 자위권 차원에서 북한에 대한 해양차단을 실시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대북 해양차단은 중요한 군사옵션 가운데 하나다. 이에 대해 북한은 “해상봉쇄는 선전포고”라며 “무자비하게 대응하겠다”고 나오고 있다. 미국과 우호적인 유엔 회원국이 북한에 대해 해양차단 또는 해상봉쇄를 시행하는 과정에서 충돌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해양차단을 위해서는 미 해군 함정, 해상헬기, 특수부대 등을 투입해 일단 북한 선박을 장악한다. 그런데 북한 선박에는 대부분 무장요원들이 승선하고 있어 대응할 경우 교전이 불가피하다. 이 과정에서 사상자가 나올 수 있다. 북한이 북측 요원의 피해를 빌미로 도발하면 국지전으로 발전될 수 있고, 이는 미국의 대북 선제공격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북한에 대한 해양차단(Maritime Interdiction)은 일반적으로 인식하는 해상봉쇄(Naval Blockade)보다는 소극적 조치다. 해상봉쇄는 전시에 적국을 출입하는 모든 선박을 차단하는 것이다. 1793년 프랑스가 영국에 선전포고하면서 나폴레옹이 몰락할 때까지 영국 해군이 프랑스에 해상봉쇄를 실시했다. 제1차 세계대전 때는 연합국이 독일의 해상을 봉쇄하자 독일이 이를 타개하기 위해 잠수함으로 무제한 작전을 감행했다. 1962년에는 미국이 쿠바에 해상봉쇄를 실시했다. 적국을 고사시키는 작전이다. 그러나 해양차단은 불법 물품을 운송한다고 의심되는 선박을 검색하는 행위다. 미국의 해양차단작전(MIO)은 1991∼2003년 이라크에 대해 실시됐다. 당시 미국은 페르시아만을 통해 이라크를 출입하는 3000여 척의 의심선박을 검색했다.

그렇지만 우리 정부가 북한에 대한 해양차단작전에 참여할지는 미지수다. 정부는 평창 겨울올림픽을 앞두고 북한과 마찰을 피하려는 입장이다. 최근 미 측이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반·출입을 차단하는 훈련을 한·미·일이 함께 실시하자는 요청을 해왔으나 정부의 반대로 무산된 적이 있다고 한다. 일본 외에 다른 나라가 끼어야 한다는 게 조건이었다. 한·미·일이 지난 4월 9차 안보회의(DTT)에서 해양차단 훈련의 성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도 사실상 거부한 것이다.

해군에 따르면 대북 해양차단작전에 대한 미 측의 제의는 아직 없다. 이런 분위기를 보면 미국은 한국을 배제한 상태에서 북한에 대한 해양차단작전을 실시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동안 실제로는 한국도 매년 대북 해양차단 훈련을 실시해 왔다. 이런 차원에서 한국이 자가당착에 빠질 수도 있다. 한국은 2009년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에 가입한 이후 미국·일본·호주·뉴질랜드·싱가포르 등과 수차례 해상차단 훈련을 실시했다. 대량살상무기를 실은 의심선박이 북한을 오가는 것을 해상에서 차단하기 위한 것이다. 대량살상무기를 적재한 것으로 가상한 선박에 헬기로 공중침투하는 훈련도 있었다. 지난 11월에도 한·미·호주 해군이 제주 인근 해상에서 다국적 연합 해양차단 훈련을 실시한 바 있다.

북한에 대해선 대량살상무기의 거래를 막기 위한 PSI가 아니라도 해양차단의 국제적 근거는 충분하다. 북한의 핵 개발과 미사일 발사에 따른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결의안(1718, 2270, 2375호)에 따라서다. 지난 9월 북한의 6차 핵실험 이후 나온 안보리 결의안 2375호는 북한의 유류 반입, 석탄 수출을 포함한 귀금속 등 다양한 물품의 수출입을 금지했다. 지난 11월 29일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인 화성-15형 발사에 따라 더 강력한 안보리 결의안이 나올 전망이다. 이러한 결의안에 따라 해경은 지난해 3월 금지화물을 적재한 것으로 의심되는 제3국 선박을 차단하고 검색하는 훈련을 남해에서 실시했다. 당시 북한 남포항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가상한 화물선을 부산항 인근에서 해경 함정 10척과 헬기 4대를 동원해 차단했다. 해경은 특공대를 투입해 공포탄을 쏘아 의심선박을 정지시키고 정밀검색을 실시했다.

미국이 조만간 대북 해양차단작전을 실시할 경우 문제는 중국과 러시아다. 한국군사문제연구소 김열수 안보전략실장은 “북한 선박이 대부분 중국·러시아로 물동량을 이동하기 때문에 발해만을 통해 중국으로 오가거나 청진에서 곧바로 블라디보스토크를 출입할 수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미국이 중국과 러시아 연안에까지 함정을 투입해 차단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북한이 중국 영해에 가까운 발해만 공해상에서 선박 대 선박으로 금지물품을 교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중국 정부가 강력하게 나서야 북한에 대한 해양차단이 가능하다. 이번 한·중 정상회담에서 이런 문제가 논의됐는지 궁금하다.

김민석 군사안보연구소장 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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