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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까지 쓸 수 있는 월성 1호, 정치 논리에 내년 문 닫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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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정부가 2030년 최대 전력수요를 100.5GW로 전망했다. 2년 전 예상보다 10% 이상 줄었다. 현재 11.3GW 규모인 신재생에너지 발전 설비는 2030년까지 58.5GW로 크게 늘린다. 신규 원전 백지화 등으로 원자력의 발전량 비중은 30.3%(2017년)에서 23.9%로 줄어든다. 월성 1호기의 조기 폐쇄도 공식화했다.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정부안] #2030년 최대전력수요 100.5GW #7차 계획보다 12.7 GW 줄어 #신재생에너지 비중 현재의 5배로 #삼척석탄발전소는 그대로 짓기로 #검토도 없이 월성 1호기 수급계획에서 제외 #사실상 정치가 원전 폐쇄 결정하는 꼴

산업통상자원부가 2017년부터 2031년까지 15년간의 전력수급 전망과 설비 계획 등을 담은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정부안을 발표했다. 이는 국회 상임위원회 보고와 공청회, 전력정책심의회를 거쳐 확정된다. 2030년 목표수요인 100.5GW는 7차 계획(2015년)보다 12.7GW(11%) 감소한 수치다. 성장률 둔화와 함께 에너지관리시스템(EMS) 보급 확대 등으로 효율을 높이면 전체 수요를 줄일 수 있으리란 판단이다.

[최대전력수요 전망치] 

자료:산업통상자원부

자료:산업통상자원부

논란이 있었던 적정 설비예비율은 2030년 22%를 유지하기로 했다. 지난 8월 11일 전력정책심의위원회는 8차 기본계획에 담길 적정 설비예비율을 22%에서 20%로 낮추겠다고 발표했다. 설비예비율은 전력 수요가 최대일 때도 가동하지 않고 예비로 남겨두는 설비의 비중이다. 설비예비율이 낮아지면 그만큼 발전설비를 덜 지어도 된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수요예측에 오차가 있을 수 있고, 발전소 건설이 지연될 확률 등을 감안해 이전과 같은 22%로 두기로 했다.

[발전원별 설비계획]

자료:산업통상자원부

자료:산업통상자원부

2030년 발전원별 발전량은 2030년 석탄화력(36.1%), 원전(23.9%), 신재생(20%), LNG(18.8%) 순이 될 전망이다. 지난 10월 발표한 에너지전환 로드맵에 따라 신재생에너지 발전설비는 지금의 약 5배로 늘린다. 태양광(33.5GW)과 풍력(17.7GW)이 대부분이다. 액화천연가스(LNG)도 37.4GW에서 44.3GW로 늘린다.

아직 허가를 받지 못한 석탄화력발전소 4기 중 삼척화력 2기는 원안대로 짓되, 당진에코파워 2기는 LNG 발전소로 바꿔 짓는다. 박성택 산업부 에너지산업정책관은 “삼척 예정지는 폐광산지역이라 비산먼지가 많이 발생하는 탓에 내버려 두느니 발전소라도 지어달라는 지역사회의 요구가 강했다”며 “지리적으로 수요지와 멀리 떨어져 LNG로 전환할 경우 효율이 떨어지는 점도 감안했다”고 말했다.

[발전원별 발전량]  

자료:산업통상자원부

자료:산업통상자원부

산업부는 이러한 에너지 전환에 따른 전기요금 인상요인은 거의 없다고 밝혔다. 박 정책관은 “2030년까지 전기요금 인상률은 10.9%(연료비와 물가 요인 제외) 정도로 과거 13년간 실질 전기요금 상승률(13.9%)보다 다소 낮은 수준”이라며 “미세먼지 감축, 기후변화 대응 등 환경 개선을 위한 추가조치를 반영하더라도 인상요인은 미미하다”고 말했다.

원전은 현재 24기(22.5GW)에서 2030년 18기(20.4GW)로 줄인다. 그러면서 월성 1호기(679MW)는 아예 전체 발전용량에서 빼버렸다. 2022년까지 가동할 수 있는 원전을 일찌감치 폐쇄한다는 의미다. 박 정책관은 “현재로썬 월성 1호기가 어느 정도 공급에 기여할 수 있을지 판단이 불확실해 전력수급계획에서 반영하기 어렵지 않겠느냐는 의견이 있어 제외했다”며 “내년 상반기 중 경제성과 지역 수용성 등을 종합적으로 따져 폐쇄 시기를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전기요금 전망]

자료:산업통상자원부

자료:산업통상자원부

결론을 먼저 내놓고 검토는 나중에 하겠다는 설명이다. 당장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자신들의 판단을 3년도 안 돼 뒤엎어야 할 처지가 됐다. 2015년 2월 27일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제 35회 회의를 열고 ‘월성 1호기는 원자력안전법령에 따른 기술기준을 만족하고, 대형 자연재해에 대해서도 대응능력을 확보하고 있다. 계속 운전 심사 및 스트레스테스트 결과를 수용해 최종적으로 계속 운전을 허가한다”고 결정했다. 당시 위원 9명 중 야당(더불어민주당) 추천 위원 2명이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가운데 7명이 이같이 결정했다. 안전에 문제가 없으니 10년 더 운영해도 된다는 뜻이다.

그러나 현 정부 들어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월성 1호기 폐쇄는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다. 당선 이후에도 문 대통령은 세 차례나 폐쇄를 언급했다. 지난 6월 19일 고리원전 1호기 영구정지 행사에 참석해 “월성 1호기는 전력수급 상황을 고려해 가급적 빨리 폐쇄하겠다”고 말했다. 7월 21일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중단을 시사한 데 이어 10월 22일에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의 ‘공사 재개’ 권고를 받아들인다는 내용의 입장문을 통해서도 “에너지 수급의 안정성이 확인되는 대로 월성 1호기의 가동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1982년 11월 발전을 시작한 월성 1호기는 국내 최초의 가압중수로형 원전이다. 당초 설계수명(30년)에 따라 2012년 11월 허가가 종료됐다. 이에 한국수력원자력이 계속 운전을 신청했고, 3년간의 찬반 논란 끝에 2015년 2월 원안위가 연장을 승인했다. 갈등은 계속됐다. 일부 주민과 시민단체가 수명연장 허가 무효처분확인 소송을 냈다. 1심을 맡은 서울행정법원은 지난 2월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원안위와 한수원이 항소하면서 전력 생산은 계속됐다. 원고 측이 즉시 가동중지 가처분 신청도 제기했지만 법원은 기각했다. 지금은 정비를 이유로 12월 말까지 가동이 중단된 상태다.

월성원전 1호기 전경. [중앙포토]

월성원전 1호기 전경. [중앙포토]

당초 계속 운전 결정에 따른 월성 1호기의 수명 만료 시점은 2022년 11월이다. 아무리 대통령의 공약이라도 정부가 원전 폐쇄를 명령할 권한은 없다. 법으로 해결하려면 법원이 최종적으로 계속 운전을 불허하거나, 원안위가 항소를 취하하는 방법이 있다. 더 쉬운 방법도 있다. 운영사인 한국수력원자력이 스스로 가동을 포기하는 것이다.

정부가 생각하는 방향도 후자다. 박 정책관은 “(중단에 대한) 의사결정은 한수원의 자율적인 결정에 따라야 한다”며 “그 판단에 따라 영구정지를 위한 운영 변경 허가(원안위) 조치를 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말은 자율이지만 사실상 공기업인 한수원을 압박해 이사회에서 중단을 결정하도록 유도하겠다는 의미다. 그러나 가동 중단은 회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법적 판단을 거쳐야 하고, 배임 문제도 따를 수 있다. 이관섭 한수원 사장은 지난 국정감사에서 “월성 1호기 발전단가는 정산단가보다 높아서 가동하는 게 단기적으로 손실이지만 그 전에 투자한 부분의 감가상각 문제가 있어 플러스, 마이너스는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원안위가 항소를 취하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면 1심에서 내려진 무효 확인의 효력이 확정된다. 자연스럽게 폐쇄 수순을 밟을 수 있다. 한수원의 결정에 따라 영구정지 허가를 내려도 체면을 구기는 건 마찬가지다. 원안위는 2015년 안전하다는 판단으로 계속 운전을 결정했다. 이 결정을 뒤엎고 폐쇄하려면 최소한 안전하지 않다는 근거가 필요하다. 그러나 현재까지 그런 근거는 없다.

그런데도 독립성이 없는 원안위가 압력을 버텨내긴 어려워 보인다. 원안위는 위원장을 포함해 위원 9명 중 7명을 정부와 여당이 추천한다. 아직 전 정부에서 임명한 위원들의 임기가 남아 있지만 머지않아 바뀐다. 지난 정부에서 임기를 시작한 김용환 위원장 역시 이미 힘을 잃었다. 지난 2월 무효처분확인 소송에서 패소한 뒤 즉각 직권으로 항소를 결정하던 결기는 사라졌고, 환경단체의 사퇴 압박에 시달리는 처지다.

월성원전 1호기 전경. [중앙포토]

월성원전 1호기 전경. [중앙포토]

10월 24일 정부가 탈(脫)원전 로드맵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에 홍남기 국무조정실장,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함께 참석했던 최종배 원안위 사무총장은 백 장관이 바로 옆에서 월성 1호기 폐쇄를 언급하는데도 단 한마디도 하지 않고 회견장을 떴다.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원자력 안전 규제란 원자력 발전을 한다는 전제하에 안전하게 전력을 생산할 방안을 찾는 것”이라며 “그게 원안위의 역할인데 지금은 탈원전 정책의 실행기구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문재인 정부는 이런 원안위를 대통령 직속 기구로 승격시키고, 위원장을 장관급으로 격상한다는 구상이다. 주한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반대로 안전하지 않은데 정부가 전기가 모자란다며 가동을 압박하면 원안위가 들어야 하느냐”며 “국민 안전을 마지막까지 챙겨야 할 최고의사결정기구가 권력에 따라 흔들리는 것은 안될 일”이라고 말했다.
세종=장원석 기자 jang.won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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