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대통령이 남긴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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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퇴임 나흘을 앞두고 가진 전두환 대통령의 고별기자회견은 여러 가지로 깊은 감회를 느끼게 한다. 건국 후 40년 만에야 비로소 집권자의 고별회견이란 것을 보게 되는 것도 그렇고, 지난 세월 그토록 염원해오던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제야 과연 눈으로 보게 된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이제 이틀후면 전 대통령은 헌법규정에 따라 청와대를 자기발로 걸어나가는 우리나라 최초의 대통령이 된다. 그는 7년전의 단임 약속을 지킨 것이다. 7년 단임이 헌법사항인 이상 약속여부가 어디 있느냐고 할는지 모르나 지난 헌정사의 경험은 헌법조문이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한 두 번도 아니게 교훈하고 있다.
전 대통령 스스로 단임 약속 이행을 가장 큰 보람으로 여긴다고 술회한 것은 공감이 간다. 이로써 우리는 헌정사에 하나의 큰 획을 긋는 선례를 갖게 되었고, 이것은 전 대통령 재임기간에 대한 평가가 어떻든 전 대통령에 의해 이룩된 우리나라 최초의 업적이라고 할 수 있다.
돌이켜 보면 전 대통령의 재임 7년반은 풍운의 시대였다. 80년초의 혼란과 광주사태, 물리력에 의한 집권과 일련의 인위적인 개혁조치, 비정상적 정계구성과 끊임없는 정통성 시비, 대형사건· 사고 등 이루 열거하기 어려운 파동과 곡절을 겪었고 개헌, 호헌하다가 마침내 대통령직선제 개헌과 선거를 치르고 오늘에 이르게 됐다.
고별회견에서 전 대통령은 여러 가지 보람있었던 일도 얘기했지만 미흡하고 어려웠던 일도 술회했다. 무엇보다 광주사태에 대해 전 대통령은 우리 근세사의 가장 불행한일이었다고 지적하면서 만족스런 해결을 못한데 대해 유감을 표명했다.
또 단임 약속을 했는데도 믿지 않은 불신풍조를 개탄하면서 전임자들이 이래서 권력을 내놓고 나가기가 어려웠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도 했다. 대통령이 된 후 고민도 많고 이를 악물고 참아야할 일도 많다보니 안경도 끼게 되고 어금니도 닳아 치료를 받아야 했다는 대목은 그야말로 인간적인 토로다. 이런 전 대통령의 술회는 우리의 정치발전을 위해 몇 가지 생각케 하는 점이 있다. 우선 어떤 정치인이라도 언젠가는 고별회견을 할 생각을 갖고 정치를 해야겠구나 하는 절실한 생각이 드는 것이다. 언젠가는 물러가야 하는 이상 평소부터 그 준비를 하고 물러갈 때의 심정이 홀가분하도록 평소 자기관리를 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정치인의 모든 일은 종국에 가서는 모두 평가의 대상이 된다는 생각도 하게된다. 그 일이 설령 오랜 세월 전에 있었던 일이라도 물러갈 때면 하나하나 되돌아오고 그 잘 잘못을 가리게 마련이라는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일을 무리 없이 합리적으로 처리해야지 물러갈 때도 홀가분할 수 있으리라는 점을 늘 염두에 둬야 할 것이라는 점이다.
회견에서 전 대통령이 가장 고민했다고 털어놓은 일은 대부분 국민과의 간격에서 빚어진 것이었다. 자기 주변에 대한 유언비어나 단임 약속에 대한 불신풍조, 가장 어려웠다고 한 4·13 호헌조치 이후의 시위 사태 등은 모두 국민과의 간격 때문에 일어난 일들이다. 이렇게 볼 때 정치인이라면 국민과 일치되는 정치를 또 한번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전 대통령의 시대는 이제 곧 막이 내린다. 그와 제5공화국에 대한평가는 국민과 역사가 하겠지만 전 대통령 자신이 말한 것처럼 그 동안의 성취와 좋은 전통은 계속 발전시켜 나가되 청산해야할 것은 과감히 개혁해 나가는 것이 앞으로의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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