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뒷전 명분싸움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여당이 「새 총리」의 인선 등 제6공화국 정부조각에 분망한 가운데 야권도 통합 협상을 본격화해 국민의 마음을 훈훈하게 했다.
그러나 11, 12일 이틀간 민주·평민 양당의 통합대표 합동회의를 지켜보면서 뭔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어 답답하기 짝이 없다.
양측은 통합의 당위성이나 현실적 절박성을 도외시 한 채 끝없는 명분싸움을 계속했다. 상대방이 쉽게 방아들일 수 없는 조건만 상대측에 풀어 먹이려거나 하찮은 문제로고경만 주고받았다.
12일의 합동회의는 더욱 그러했다. 민주당 측이 「선통합원칙합의」를 주장하면 평민당 측은 즉각 「선통합조건합의」로 되받아 쳤고, 평민당 측이 「선재야참여」 주장을 하면 민주당 측은 「선양당통합 합의, 후재야포용」으로 맞받아치는 등 장군멍군 식으로 일관했다. 심지어 13일의 제3차 회의 개최시간 및 장소 결정문제까지 시비와 격론의 대상이 됐다.
국민의 80%가 야당이 「하나」로 돼야한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굳이 들지 않더라도 야권통합은 야측 스스로를 위해 절대절명의 지상과제일터인데 통합의 당위성은 팽개쳐둔 채「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식의 끝없는 요설만 별이고 있는 게 야권통합 협상의 현실이다.
어쩌면 그렇게도 안되는 쪽으로만 몰고 가려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양자가 야권통합이라는 생산적 결론의 도출은 포기한 채 이미 「통합부가」「통합부원」 의 「결론」을 내려놓고 이를 상대방에 뒤집어씌우기 위해 버티기 전술로 전환한 게 아니냐는 의심이들 정도다.
그러나 양측은 총재직을 사퇴한 김영삼씨에 대한 여론의 지지가 호의적인 것과 정비례해서 「조건부 2선 퇴진」을 고수중인 김대중씨에게 비난의 공세가 가중되고 있는 가시적 교훈을 명심해야한다.
이 교훈이 냉엄하게 시사하듯 야권통합도 자당의 「기본방침」을 털어 버리고 타당의 주장을 흔쾌히 수용하는 것이 결국 민심을 얻는 길이란 걸 알아야할 것이다.
야권통합협상이 대통령후보 단일화실패의 재판으로 허무하게 끝나서는 절대로 안될 것이다. 고도원<정치부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