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참을 수 없는 우리 정치의 천박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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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대한민국의 정치는 아직도 이 수준인가. 지난달 28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진행된 대정부 질문을 지켜보면 기가 막힌다. 이해찬 총리와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의 대정부 질문.답변은 서로가 상대의 약점을 물어뜯는 광기와 치졸함으로 넘쳐났다. 그것이 이 나라의 국무총리와, 서울시장 후보로 나서려는 야당 중진이 국정을 논의하는 현장의 수준이다.

야당 의원은 "총리가 희대의 브로커와 놀아나지 않았느냐"고 몰아세우고, 총리는 "당신은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까지 박탈당하지 않았느냐"고 맞받아친다. 큰 소리로 호통을 치는 것으로 자신을 과시하려는 의원이나 자극적인 언쟁으로 맞대응하는 총리나 어느 누구도 국민이 바라는 공직자의 모습은 아니다. 이런 인신공격으로 국민에게 무슨 생산적인 정책을 내놓기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선거법 위반으로 선관위의 경고를 받은 이재용 환경부 장관도 비판여론에 대한 소회를 묻는 질의에 사과는커녕 "대구시민이 정작 고발하고 싶은 것은 오랜 세월 대구를 좌절과 비탄으로 몰아넣고 있는 사람들"이라며 오히려 큰소리를 쳤다. 선관위의 솜방망이 경고쯤에는 콧방귀도 뀌지 않겠다는 말이다. 야당의 수준이라고 다르지 않다. 전직 대통령을 '치매' 운운하며 모욕하고, 총리 답변에 '눈을 부라리고 쫑쫑쫑 토를 단다'고 윽박지르는 수준이다. 이게 21세기에 들어선 지도 6년이 지난 지금, 대한민국 정치의 모습이다.

17대 국회는 낡은 정치의 청산과 선진정치를 내세우며 출범했다. 과거 정치에 대한 국민의 불만으로 초선의원만 60%가 넘었다. 국회도 이런 국민의 뜻을 잘 받아들이는 듯했다. 상생정치를 약속하고, 생활밀착형 의정활동과 입법 활동을 강화하는 등 달라지려는 노력도 보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 시간이 갈수록 낡은 정치의 못된 버릇만 닮아가고 있다. 날치기가 다시 살아나고, 국회의원이 물의를 일으켜 윤리위에 제소돼도 번번이 시한을 넘겨 묵살하고 있다. 이런 구태에 회초리를 들 수 있는 것은 국민의 여론과 선거를 통한 심판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