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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report] 음란물 쏟아내는 미국 ‘텀블러’ … 한국선 왜 처벌 못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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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소셜미디어 ‘텀블러’에 나온 한국 사용자들의 적극적인 사용을 권장하는 메시지와 텀블러 로고를 합성한 이미지. 텀블러 내에는 각종 성인물과 성범죄를 조장하는 게시물이 미성년자에게도 그대로 노출돼 있지만 텀블러는 게시물에 대한 규제와 심의를 거부하고 있다.

소셜미디어 ‘텀블러’에 나온 한국 사용자들의 적극적인 사용을 권장하는 메시지와 텀블러 로고를 합성한 이미지. 텀블러 내에는 각종 성인물과 성범죄를 조장하는 게시물이 미성년자에게도 그대로 노출돼 있지만 텀블러는 게시물에 대한 규제와 심의를 거부하고 있다.

e메일 주소와 ID, 비밀번호를 입력한다. 휴대폰 등을 통한 인증 절차도 없고 미성년자라도 본인 마음대로 나이를 입력하면 가입할 수 있다. ‘커플’, ‘여자’와 같은 일반 명사를 검색창에 쳤는데 곧바로 음란 게시물이 나온다.

유해성 게시물 방치해 논란 확산 #‘여자’‘커플’ 검색하면 야동 수두룩 #네티즌 5만명 청와대에 처벌 청원 #외국 사이트라 국내법 제재 안 받아 #회사 측 ‘문제 콘텐트’ 그대로 방치 #방통위 마땅한 처벌 수단 없어 고민 #“가입 인증, 나이 제한 등 규제 강화를”

미국산 소셜미디어 ‘텀블러’가 유해성 게시물을 방치하는 것을 놓고 논란이 커지고 있다. 텀블러는 외국 사이트라는 이유만으로 국내법 제재를 받지도 않고, 미국 텀블러 본사에서는 각종 문제가 되는 콘텐트에 대한 규제와 관리를 하지 않고 있어서다.

6일 현재 청와대 홈페이지 내 ‘국민 청원’ 코너에는 네티즌 5만4000명이 “텀블러 같은 해외 사이트들이 음란물 등 유해 게시물을 무단으로 배포하는 것을 처벌해달라”는 청원 글에 서명했다. 지난달 30일에 올라온 이 글은 현재 가장 빠른 속도로 청원 요청 수가 늘어나고 있다. 만약 한 달 내 국민 20만 명 이상이 이 글을 추천하게 되면 정부 및 청와대 관계자가 직접 이번 문제에 대해 응답해야 한다.

2007년 미국의 21세 청년 데이비드 카프가 만든 텀블러는 소셜미디어와 블로그를 합친 서비스다. 자신이 원하는 사진이나 짧은 글을 간편하게 올리고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다. 서비스를 시작하자마자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 수 있었던 것은 예술이나 디자인 계통에서 일하는 종사자들이 특색 있는 자신의 작품 사진들을 올리면서부터다. 텀블러는 페이스북·트위터의 인기 속에서도 매니어층을 형성하며 전 세계적인 인기를 얻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3억4500만 명이 가입했으며 지난 10년간 올라온 게시물 숫자만 1540억 건이 넘는다.

창업자 겸 텀블러의 CEO였던 카프는 2013년 야후에 텀블러를 약 11억 달러(약 1조2000억원)에 매각했다. 이후 야후의 인터넷 사업본부가 버라이즌에 매각되면서 텀블러는 버라이즌의 자회사가 됐다. 카프도 지난달 말 텀블러 창업 10년 만에 물러났다.

텀블러

텀블러

카프가 사임한 것도 텀블러가 미국 내에서도 각종 유해성 게시물을 방치하고 범죄를 조장한다는 논란에 휩싸인 것과 무관하지 않다. 미국에서도 지난해 12월 미성년자 성관계 동영상이 유통되면서 뉴욕 맨해튼 주 법원이 “영상을 유포한 281명의 개인 신상을 공개하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플랫폼 사업자인 텀블러는 법적 처벌을 피해 가면서 윤리적인 비판이 거세졌다.

국내에서도 텀블러 가입자 수가 늘어날수록 성매매나 성범죄 등을 암시하거나 미성년자들에게 유해한 성인용 게시물들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5일 서울에 미성년자 성폭행을 모의하는 글이 텀블러에 올라와서 서울 영등포경찰서에서 수사에 나섰으나 게시물 속 학생을 찾을 수 없다는 이유로 수사를 곧바로 종료했다.

허술한 가입 절차와 더불어 유해 게시물을 거를 수 있는 안전장치가 없다는 것도 문제다. ‘여자’, ‘커플’과 같은 단어만 검색해도 성매매를 알선하는 게시글과 사용자가 수백여 건 검색된다. 텀블러는 인터넷 사업자라면 법적 고지 의무가 있는 개인정보보호방침과 이용약관도 모두 영어로만 제공하고 있다. “텀블러는 미국 회사이기 때문에 미국 법과 관할권을 따른다”며 “모든 서비스 약관은 영어로만 제공한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텀블러에 올라온 게시물로 피해를 보았거나 사생활을 침해당했을 때 신고하는 메뉴도 무용지물이다. 애플리케이션(앱)에서 ‘피해 신고’를 눌렀더니 피해 유형을 ‘Malicious or hate speech’(증오 발언), ‘Self-harm’(자해) 등 영어로만 표시되어 있다.

피해 사항을 적는 칸에도 “한국어로 보내주시는 문의 사항은 아직은 처리할 수 없다. 이 양식을 반드시 영어로 작성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정작 국내 사용자들이 텀블러로 인한 피해를 겪었을 때 실질적으로 이용자들을 구제할 의지가 없는 것이다.

지난 10월 국회에서 열린 국정감사에서도 텀블러 등 외국 인터넷 사이트들에 대한 처벌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국감에 앞서 8월 미국 텀블러 본사에 e메일을 통해 불법 콘텐트에 대한 심의 협력을 요청했다. 그러나 텀블러 측은 “텀블러는 대한민국에 실제 존재하지 않는 미국 회사”라며 한국 정부의 요청을 거부했다.

이런 온라인 게시물에 대한 규제를 사실상 기업의 자율적으로 맡겨둔 시스템도 문제로 지적된다. 방심위는 2002년부터 주요 포털을 포함한 국내외 인터넷 사업자들이 직접 참여하는 ‘자율심의협력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이 시스템에 가입한 네이버·카카오를 비롯해 구글·트위터·페이스북 한국 지사들은 음란물·장기매매·자살 등 명백한 불법 정보들에 대해서는 방심위가 심의하기 전 사업자들이 알아서 자율적으로 삭제하고 조처를 해야 한다. 방심위 측은 텀블러에 자율심의협력시스템에 가입하라고 요청했으나 텀블러가 거절했다. 가입을 강제할 법적 구속력이 없기 때문에 방심위도 손을 놓고 있다.

이효성 방송통신위원장도 6일 정책 비전을 발표하면서 “텀블러가 자율협력시스템 참여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방통위는 이날 주요 정책 과제를 발표하면서 유해 정보에 대한 유통을 차단하기 위해서 ▶법령을 개정하고(2017년) ▶경찰청과 공조 시스템을 구축하고(2018년) ▶인공지능(AI)을 활용한 기술을 개발(2019년)하겠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같은 실행 방안을 외국 기업들에 실제로 강제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현재는 없다. 이 위원장도 “규제에 대한 실행력을 높이기 위해서 법을 개정해야 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한 국내 포털 관계자는 “외국 사이트에 대한 콘텐트를 정부가 규제하지 않는 것도 일종의 역차별에 해당한다”며 “정부가 더욱 적극적으로 외교부나 방통위의 협조를 얻어서 미국 본사에 찾아가는 등의 적극적인 행동을 보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소셜미디어 ‘텀블러’는

■ 고등학교 중퇴 후 프로그래밍 독학한 데이비드 카프가 2007년 설립
■ 현재 회원 수 3억4500만명, 게시물 약 1540억건 넘어
■ 짧은 글과 사진을 간편하게 올리고 공유 가능
■ 예술·디자인 계통 종사자들 사이에서 인기 얻으면서 급성장
■ 카프, 2013년 11억 달러(약 1조2000억원)에 텀블러를 야후에 매각
■ 미국서도 음란·유해 게시물 온상으로 비난받아

하선영 기자 dynami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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