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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강철비' 곽도원은 궁금하다

중앙일보

입력

‘강철비’ 곽도원 / 사진=전소윤(STUDIO 706)

‘강철비’ 곽도원 / 사진=전소윤(STUDIO 706)

 [매거진M] 곽도원(44)에게 ‘강철비’는 호기심이었다. 핵전쟁을 둘러싼 남과 북의 아슬아슬한 긴장 관계, 그 정점의 두 남자가 마주 선 구도가 과연 어떻게 그려질까.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이 영화에 관객은 뭐라고 답할까. 지금 곽도원은 많이 궁금하다.



━양우석 감독 말이 처음부터 곽도원을 생각하며, 시나리오를 썼다더라.
“초기 단계에선 캐릭터 이름이 아예 곽병규(곽도원의 본명)였다. 전작을 함께한 감독이 잊지 않고 불러준 것도 그렇고 여러모로 고마웠다.”

━원작 웹툰 ‘스틸레인’(글 양우석, 그림 제피가루)도 봤나.
“앞부분만. 캐릭터가 나랑 너무 다르게 생겨서 도저히 감정 이입이 안 되더라고(웃음).”

━검사, 선거대책본부장 등에 이어 또 한 번 전문직 캐릭터를 연기했다. 한데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인 곽철우는 기존 캐릭터와 닮은 듯 많이 다르다. 훨씬 더 친근해 보인다고 해야 하나.
“동네 아저씨지 뭐. 중대한 일을 처리하는 고위직이지만, 일상적인 모습을 드러내는 것도 내겐 중요했다. (김정숙) 영부인이 재래시장에 간 걸 TV에서 본 적 있는데, 눈빛이 막 초롱초롱해져서 해산물을 고르더라. 마치 우리네 어머니처럼. 그런 거다. 외교안보수석이든, 국회의원이든 그들도 집에선 평범한 부모거든.”

━곽철우의 인간적인 면에 끌려서 ‘강철비’를 택한 건가.
“그보단 영화가 가진 메시지 때문이다. 이런 영화가 세상에 나온다면, 대중은 내게 어떤 이야기로 질문을 던질까. 이런 호기심이 가장 컸다. 계속 궁금하게 만드는 영화를 만난다는 게 배우한테도 굉장히 중요한 일인데, ‘강철비’엔 그게 있었다.”

‘강철비’ 곽도원 / 사진=전소윤(STUDIO 706)

‘강철비’ 곽도원 / 사진=전소윤(STUDIO 706)

━‘강철비’는 남북의 이데올로기, 핵 문제 등을 건드린다. 먹고사는 이야기처럼 피부로 직접 와 닿지 않을 수도 있다. 평소 남북문제에 관심이 많나.
“나서서 행동하는 편은 아니지만, 늘 잊지 않으려고 한다. (2010년) 연평도 포격 때 뒤통수가 얼얼했다. ‘아 휴전이지, 전쟁이 완전히 멈춰진 게 아니었지’ 하는 생각이 들어서. 관객도 ‘강철비’를 보고 나면 핵 보유 문제나, 군사 자주권 같은 것에 여러 가지로 생각이 많아질 것 같다.”

━외국어 대사 때문에 고생 좀 했겠다. 미국 CIA, 중국 국가안전부 요원들과 나누는 심각한 대사들이 다 영어와 중국어던데.
“영어대로 중국어대로, 그 문화권의 미세한 손동작까지 따로 준비해서 연기하느라 정말 머리 빠개지는 줄 알았다. 특히 영어는 하아…, 말도 마라. 곽철우가 이래 봬도 옥스퍼드대학 출신이다. 영국식 영어를 능통하게 구사하는 것도 어려운데, 정치·군사적인 전문 용어까지 워낙 많았다. 평상시에 전혀 듣도 보도 못한 단어들이라, 영어가 아니라 외계 언어를 외우는 기분이었다(웃음).”

━곽철우를 어떤 사람이라고 느꼈나.
“한 단어로 말하면 ‘외로움’.”

━하긴 이혼 후 가족이랑 떨어져 홀로 사는데, 밤늦도록 술 마시고, 속 터놓고 이야기할 친구 하나가 그에겐 없다.
“내 처지랑 비슷하지. 오늘은 주변에 스태프로 바글바글하지만, 집에선 늘 혼자 쭈그려 있거든(웃음).”

━그러다 북에서 내려온 엄철우를 만난다. 영화 초반엔 두 사람의 대비가 극명해 보이더라. 정우성의 엄철우가 뜨겁다면, 곽도원의 곽철우는 차갑다.
“처음엔 달라 보이는데, 뒤로 갈수록 서로에게 닮아간다. ‘아 이놈도 나랑 감정이 다르지 않구나, 아빠의 마음은 다 비슷하구나’ 생각하며 서로에게 정이 드는 거지.”

‘강철비’ 곽도원 / 사진=전소윤(STUDIO 706)

‘강철비’ 곽도원 / 사진=전소윤(STUDIO 706)

━‘아수라’에 이어 정우성과 함께했는데.
“함께하는 배우로서 연기할 맛이 난다고 해야 하나. 배우로서도 친구로서도 좋은 사람이다. ‘아수라’ 때도 맞붙는 장면이 많았는데 죽을 듯이, 몸을 안 사리고 연기한다고 느꼈다. ‘아수라’에서 내가 스마트폰 동영상으로 정우성을 협박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때 대사 반 이상이 애드리브였다. 둘 다 완전히 몰입한 상태로 말하고 움직였다. 주변이 다 암전되고, 서로 간의 메소드만 가지고 연기하는 기분이 들 때 배우는 가장 짜릿한 기분이 든다. 일종의 카타르시스랄까. 우성이랑 연기하다 보면 그런 기분이 자주 든다. ‘강철비’에서도 그랬다. 완벽한 북한 사투리로 대사를 쏟아내는데, 얼마나 어마어마하게 고민하고 연습했는지 안 봐도 알겠더라. 저 친구가 나를 얼마나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웃음), 내겐 많은 귀감이 되는 배우다. 현장에서 촬영이 없을 때 엄철우 분량을 모니터하고 나면 되게 많은 자극이 됐다.”

━남북문제를 떼놓고 보면 ‘강철비’는 완벽한 브로맨스 영화기도 하다. 특히 두 철우가 마주하는 후반부는 꽤 찡하더라.
“그런 감정이 잘 묻어나면 좋겠는데…. 후반부 서로 감정적인 대사를 주고받는 장면이 얼마나 어려웠는지 모른다. 너무 닭살 돋아서, 죽을 것 같더라(웃음). 외국어 연기와 함께 이번 영화에서 가장 힘든 순간이었다. 그래서 내가 멜로를 못 찍나 보다.”

━곽도원에게 어려운 연기도 있나.
“코믹하고 착한 영화도 하고 싶은데, 그런 장르의 연기가 사실 되게 어렵다. 기본적으로 성격이 안 착해서 그런가. 악역은 참 편한데(웃음).”

━G-DRAGON의 ‘삐딱하게’에 맞춰 차 안에서 덩실거리는 장면. 영화에서 가장 코믹한 순간이었다. 시나리오엔 단순히 ‘꿀렁꿀렁 거린다’고만 돼 있던데, 어떻게 그런 동작이 나왔나. 
“GD 동영상 보면서 많이 연습했는데, 죽어도 안 되더라. 그런 노래를 들으면 자연스럽게 고개가 끄덕여져야 하는데, 나는 어떤 노래를 틀어도 (덩실덩실 팔을 휘저으며) 이렇게밖에 안 된다(웃음).”

'강철비’ 곽도원 / 사진=전소윤(STUDIO 706)

'강철비’ 곽도원 / 사진=전소윤(STUDIO 706)

━양우석 감독과 함께했던 ‘변호인’은 관객이 천만 명 이상 들었었다.
“영화로 감동이나 희망을 줄 순 있어도 세상을 바꿀 순 없다고 생각해 왔는데, ‘변호인’ 때 생각이 달라졌다. 미디어를 통해 불특정 다수가 하나의 주제에 관해 관심을 갖도록 하는 데 있어, 영화만큼 훌륭한 매체가 없다는 걸 알았다. ‘강철비’ 역시 주제와 메시지의 힘이 대단한데, 난 이 영화가 해결책이 아니라, 고민거리를 안겨주는 작품 같다. 관객이 어떻게 반응할지 너무 궁금하다.”

━촬영이 없을 땐 뭐 하고 사나.
“(밴드를 여기저기 붙인 손을 보여주며)골프 친다. 제주도 내려가 산 지 한 3년 되는데, 도민 할인받아서 동네 형들과 자주 간다(웃음). 처음엔 스트레스만 받고, ‘내가 저 작은 구멍에 공을 넣겠다고, 막대기 들고 뭐하는 짓인가’ 싶었는데, 점점 재미가 붙는다. 공에 집중하다 보면, 잡념이 싹 사라지거든. 정신이 아주 맑아지지. 당분간은 그렇게 고민거리들을 날려버릴 참이다.”

백종현 기자 baek.jogn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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