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은 김대중 씨에게 넘어 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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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김영삼씨가 8일 돌연 민주당 총재직을 사퇴함으로써 정국은 아연 긴장에 휩싸였고 과연 야권 통합이 총선거 전에 이루어질지가 초미의 관심사로 부각되고 있다.
어떤 형대로든 대통령선거 이후 갈기갈기 찢어진 야권이 「하나」가 될 수 있다면 이는 선거법 협상 및 총선 정국에 새 국면을 조성할 뿐만 아니라 제6공화국 정계구도에도 심원한 영향을 미칠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야권통합의 장애요인이 돼온 두 김씨 중 한 당사자가 후 선으로 물러난 지금 볼은 김대중씨에게 넘어간 형국이어서 그의 거취가 주목의 대상이 되고 있다.
또 민주당은 야권 통합을 어떻게 추진해갈 것이며 김영삼씨는 완전히 손을 떼는지, 그리고 평민 당 의원들과 신당 추진 파들은 어떤 태도를 보일지가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김 전 총재의 전격적 사퇴선언에 대해 민주당의원들 대부분은 김씨가 일단 야권통합의 물꼬를 터 주었다는 점에서「살신성인」(박종률 사무총장)등의 표현으로 전폭적으로 환영했다.
의원들은 사퇴가 워낙 급작스레 이루어져 한동안 당 진로에 대해 갈피를 못 잡는 형국이었으나 대체로 두 가지 시각에서 야권통합에 접근하고 있다.
첫째는 이번 기회에 명실상부한 야권통합운동을 벌여야하고 이를 위해선 전권을 행사할 수 있는 수권기구가 「참신한」인사들로 구성돼야 한다는 것.
중진인 P·K·H 의원 등은 『현 지도부를 중심으로 「적당히 넘어가려 해서는」안되고 의원들의 총의에 따라 「비상대책위」가 구성, 가동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다른 흐름은 총선도 얼마 남지 않았으므로 직무대행체제로 가되 야권 통합추진 위를 재 구성, 적극적으로 활성화시켜야 한다는 다소 소극적인 의견이다.
결국 이 문제는 항간에 나도는 김 전 총재의 수렴청정 설에 대한 수용태세의 차이로 볼 수 있는데 앞으로의 결과가 주목된다.
당 지도부가 어떻게 구성되든 민주당은 당내에 야권 통합추진 위를 설치, 통합방안을 강구하고 적극 추진한다는 자세는 불변이다.
추진위원으로는 최형우 전 부총재·박종률 사무총장·김현규 총무·김창근·황명수 씨 등이 유력하게 나돌고 있는 상태.
민주당은 통합추진 위 인선을 확정하고 평민 당·신당추진 의원·재야 신당추진 파에 나름의 「통합추진기구」를 구성하라고 제의하고 그 결과 이들을 하나의 「범 야 통합 위」기구로 발전시키겠다는 복안을 갖고 있다.
통합방법은 지금까지의 「민주당 중심」이라는 개별적 통합방식도 제시하되 당 대 당 통합방식도 전향적으로 수용한다는 방침이다.
통합대상도 김 전 총재가 「모든 민주세력의 대동단결」을 고창한 만큼 광범위하게 잡아 고흥문씨, 유치송 민한당· 이만섭 국민당 총재와도 교섭할 적극적 자세다.
민주당 측은 김대중씨가 김영삼씨처럼 2선으로 후퇴하는 것이 통합의 절대조건이 될 것으로 보며 「선 통합, 후 당론」식으로 되어야 하는데 평민 당 측이 소선거구제 회귀를 전제조건으로 내세워 통합가능성을 흐리는데 대해 우려하고 있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총선거 이전까지는 결국 통합논의만 하다가 민주당중심의 부분 통합으로 끝나지 않을까 소극적으로 전망하기도 한다.
야권통합의 「장애요인」의 한 당사자 (?) 인 평민 당 김대중 총재는 김영삼씨의 사퇴선언을 접하고 그의 「진의」가 뭘까를 골똘히 생각하는 태도에서 보듯 그 자신의 거취와 통합추진에 다같이 유보적이고 다소 미온적인 자세다.
평민 당은 『민주당이 종래의 당론인 소선거구제로 돌아갈 것인지를 주목한다』고 말해 통합추진의 전제조건으로 일단「소선거구제」를 내세워 발걸이 하면서 김영삼씨의 진의 파악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평민 당은 김영삼씨의 총재직사퇴선언을 △서명 파 및 재야 신당 파를 흡수하고 평민 당 일부의원을 「유인」해 야권을 민주당중심으로 「단일화」하고△민정당의 「방어본능」을 자극해 소선거구제 회귀가 아닌, 동반 당선체제의 선거구제 관철△선거구제 당론변경, 「색깔론」등으로 실추된 인기를 만회, 총선 후 복귀를 위한 전략적 제스처로 파악하고 있다. 간단히 말해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의 계산된 몸짓으로 보고있는 것이다.
김영삼씨의 진의야 어떻든 김대중 총재도 영향을 받게되어 조만간 어떤 결단을 내려야 할 처지인데 민주당 측이 김영삼씨의 수렴청정에서 완전 벗어나고, 소선거구제로 다시 환원할 경우 김대중총재의 입장은 더욱더 곤경에 빠질게 분명하다.『김대중총재도…』하는 「당내압력」도 거세어질 것은 불을 보듯 훤하기 때문이다.
김 총재는 그러나 9일 일단 당 체제를 정비하고 당분간 관망한다는 소극적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당내 일부 반발과 여론에 따라 김대중총재도 조만간 결단을 내릴 것으로 점쳐지고 있는데 그 결단 역시 결국은 「총재직 사퇴」의 범주 외에 다른 길이 없지 않나 싶다.
한편 「서명파」와 「민중의 당」등 재야 신당그룹들도 충격적 소식을 접하고 일면 환영, 일면 의혹의 눈초리 속에 부산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서명 파 6인 의원들은 신당 창당보다 양당통합에 더 관심이 있었던 만큼 「반가운 탈출구」를 찾은 셈이 됐고, 그에 따라 창당 주비위구성을 일단 중지하는 한편 분당 이전 상태의 「합동의총」을 열어 소선거구제까지도 받아들이자는 입장이다. 재야 신당파도 서명 파 의원들의 이 같은 움직임에 동조, 9일로 예정됐던 창당주비위를 일단 연기했다.
재야 일부에서는 아직도 김영삼씨의 결단을 제1야당의 「쟁탈」을 위한 당리당략적 제스처로 보려는 부정적 시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박형규·계훈제·이효재·홍성우 씨 등 「민주국민회의」소속 13인 재야인사들은 9일 회견을 갖고 야권통합의 중재에 나설 방안을 발표해 여론의 기류는 통합추진 쪽으로 강하게 흐르고 있다.
따라서 야권통합은 각 정파가 원하든 원치 않든 간에 새 바람을 타고 정계의 새 「변수」로 작용할 것만은 틀림없는 것 같다. <고도원· 안희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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