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리트윗에 절대 우방 美·英 동맹 금 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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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부적절한 리트윗으로 가장 가까운 우방인 미국과 영국 사이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

트럼프, 영 극우당 대표 트위터 영상 리트윗 #메이 총리 비판에 “영국에나 집중하라” 맞불 #영국서 트럼프 방문 취소하라 요구 봇물 #브렉시트 앞두고 미국 절실한 메이 총리 #국내 반발과 대외 관계 사이 사면초가 # #

지난 29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이 영국의 원외 극우정당 ‘브리튼 퍼스트(Britain First)’ 제이다 프랜슨 대표의 트위터 동영상 3건을 자신의 계정으로 리트윗한 게 발단이다.
무슬림들이 소년을 지붕에서 떨어뜨리고, 성모 마리아상을 던져 깨뜨리며, 무슬림 이민자가 네덜란드 소년을 폭행하는 장면이 담긴 영상이다.

무슬림에 대한 증오와 혐오·차별을 조장하는 영상을 리트윗한 데 대해 트럼프 대통령에게 비난이 쏟아졌다. 영상이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미국 주재 네덜란드 대사관은 트위터를 통해 “영상 속에서 네덜란드 소년을 때리는 사람은 네덜란드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이며, 법에 따라 처벌받았다”고 밝혔다. 폭력 가해자가 무슬림 이민자라고 적시한 영상 제목이 거짓이라고 공식 발표한 것이다.

무엇보다 영국이 가장 분노했다. 영국을 분열시키는 ‘브리튼 퍼스트’에 트럼프 대통령이 힘을 실어줬기 때문이다.
테리사 메이 총리는 대변인을 통해 “영국인들은 품위와 톨레랑스·존중이라는 국가 가치에 반하는 극우의 편견 가득한 레토릭을 거부한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그렇게(리트윗) 한 것은 잘못됐다”고 이례적으로 직접 비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메이 총리의 실명을 거론하며 맞대응해 영국의 분노에 불을 지폈다.
“나한테 집중하지 말아라. 영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파괴적인 급진 이슬람 테러리즘에나 집중해라. 우리는 잘하고 있다”고 트위터에 글을 올린 것이다.

킴 다로치 미국 주재 영국 대사는 트위터에 메이 총리의 발언을 재언급하면서 “백악관에 우려를 전달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의 리트윗이 양국의 공식적인 외교 분쟁으로 비화한 셈이다.

사디크 칸 런던 시장도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로 국가에 증오를 심는 불쾌하고 극단적인 집단을 홍보했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영국 방문은 환영받지 못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야당인 노동당의 주요 의원들도 트럼프 대통령의 영국 국빈방문을 취소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요르단을 방문 중인 메이 총리는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리트윗은 잘못됐다고 분명히 밝혔다”고 거듭 비판하면서도 국빈방문 연기나 취소는 고려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앰버러드 내무장관도 “미국과의 관계는 중요하다”면서 “전체적인 상황을 고려해야 하며, 이를 유념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결정에 따라 EU 회원국 지위와 혜택을 모두 잃게 될 영국에 미국은 절실한 대상이다.

이 때문에 메이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 취임 1주일 만에 해외 정상으로는 처음 백악관을 찾아가는 등 미국에 적극적으로 손을 내밀었다.

트럼프 대통령과 테리사 메이 총리. [중앙포토]

트럼프 대통령과 테리사 메이 총리. [중앙포토]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리트윗에 대한 영국 내 반발이 더욱 거세지면서 메이 총리는 난처한 입장이 됐다.
지난 6월 총선에서 과반 확보에 실패하며 입지가 좁아진 보수당 내부에서도 메이 총리의 대응이 약하다는 비난이 나오고 있다.

영국의 싱크탱크 채텀하우스의 레슬리 빈자무리 연구원은 미 시사주간지 타임에 “EU를 탈퇴하려는 영국에 미국의 지원은 매우 중요하다”며 “메이 총리는 미국을 버릴 수 없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는 “외교는 동맹과 파트너를 존중하는 장기적 관계”라며 “만약 이를 벗어난다면 관계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홍주희 기자 hongh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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