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병우(50)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29일 검찰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했다. 오전 9시50분쯤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 나온 그는 “지난 1년 사이 포토라인에 네 번째 섰다. 이게 제 숙명이라면 받아들이고, 또 헤쳐 나가는 것도 제 몫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착잡한 표정으로 ‘숙명’을 언급할 때엔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했다. 그는 자신의 혐의에 대한 여러 질문에 “검찰에서 충분히 밝히겠다”고만 답하고 청사 안으로 들어갔다.
이번엔 불법사찰 혐의로 검찰 조사 #사찰동향 보고한 최윤수 영장 청구 #우병우 영장도 청구 가능성 커져
우 전 수석을 수사하는 서울중앙지검 국가정보원 수사팀은 그가 박근혜 정부 청와대 민정수석 재직 당시 국정원에 지시해 이석수 전 대통령 직속 특별감찰관, 이광구 우리은행장, 김진선 전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 등을 불법 사찰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검찰은 국정원이 이 전 특별감찰관의 뒷조사에 나선 것은 정상 업무가 아니라 우 전 수석 비위 감찰을 방해할 목적이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 관련해 추명호 전 국정원 국장은 앞선 검찰 조사에서 “우 전 수석이 지시해 이 전 특별감찰관 등을 감찰하고 우 전 수석 측에 비선으로 보고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했다. 우 전 수석과 서울대 법학과 동기(84학번)인 최윤수(50) 전 국정원 2차장도 우 전 수석에게 사찰 동향을 보고한 사실을 일부 시인했다.
우 전 수석은 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인 지원 배제 명단(블랙리스트) 운영에 개입한 혐의도 받고 있다. 국정원 적폐청산 태스크포스(TF)는 최근 그의 지시를 계기로 문화체육관광부가 지원사업 예정 대상자 명단을 국정원에 보냈고, 국정원은 허가 여부를 결정해 통보하는 방식의 업무 협조 관계가 구축됐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검찰은 이날 불법 사찰과 블랙리스트 운영에 관여해 국정원법을 위반(직권남용)한 혐의로 최 전 차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우 전 수석이 국정원을 동원해 이 전 감찰관의 뒷조사를 지시하고 블랙리스트를 관리하는 과정에 최 전 차장이 적극 관여했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검찰이 최 전 차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그의 혐의에 연루된 우 전 수석도 구속영장 청구 대상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수사팀 내부에서는 우 전 수석이 혐의를 부인해 왔기 때문에 구속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다고 한다.
우 전 수석은 지난해 11월 검찰 특별수사팀에, 올해 2월엔 박영수 특별검사팀에, 4월엔 검찰 특별수사본부에 출석했다. 넥슨과의 서울 강남땅 고가 거래 의혹, 아들 운전병 특혜 의혹을 비롯한 개인 비리 의혹과 국정 농단 관련 혐의 등이 조사 대상이었다. 두 차례 청구된 구속영장은 법원에서 모두 기각됐고, 개인 비리 의혹과 관련해서는 대부분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우 전 수석은 최순실씨의 국정 농단 진상 은폐에 가담하고, 이 전 특별감찰관의 감찰을 방해한 혐의 등으로 지난 4월 불구속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현일훈·박사라 기자 hyun.ilhoo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