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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세 리우 “가짜 뉴스 판치는 요즘, 신뢰받는 언론사엔 기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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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SCMP 게리 리우 CEO가 말하는 '디지털 시대의 뉴스'

‘언론사 경험이 하나도 없는데, 114년 된 언론사 수장이 된 34살 사나이’ ‘세계 미디어 업계 최연소 최고경영자(CEO)’
지난 1월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의 CEO로 취임한 게리 리우를 가리키는 수식어다. SCMP는 중국 최대의 전자상거래업체 알리바바가 2015년 인수해 전 세계를 놀라게 한 바로 그 언론사다.

방한 앞두고 화상통화 인터뷰 #구글·페북 온라인 독점 시장서도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 제품은 뉴스 #믿을 만한 뉴스의 가치는 올라가 #SCMP 유료 구독제 일단 없앴지만 #언젠가 다시 유료 구독 재개할 것

리우는 SCMP CEO를 맡기 전 세계 최대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 업체인 스포티파이(Spotify) 랩장, 커뮤니티 기반 뉴스 서비스업체 디그(Digg) CEO를 지냈다. 앞서 구글과 AOL(America On Line, 타임워너의 자회사인 인터넷 서비스 기업)에서 일하기도 했다. 한마디로 ‘뼛속까지 IT인’이다. 그런 그가 어떻게 100년 넘은 신문사 CEO를 맡게 됐을까? 그의 답변은 간단명료했다.

“디지털 시대에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제품(product)이 뉴스이기 때문이죠. 지금보다 뉴스가 실시간으로 유통되고 주목받았던 때가 있나요?”

리우는 오는 29일 서울 블루스퀘어에서 열리는 ‘유민100주년미디어컨퍼런스’ 개막 연사로 서울을 찾을 예정이다. 방한을 앞둔 그를 구글 행아웃(화상통화 프로그램)으로 인터뷰했다.

뉴스가 디지털 시대에서 가장 중요한 제품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구글과 페이스북이 온라인 세상을 양분하고 있다. 이 ‘듀오 폴리(duo-poly, 양자독점)’ 디지털 시장에서 가장 많이 유통되는 게 뉴스다. 그런데 요새는 ‘가짜 뉴스’가 판을 친다. 역설적으로 좋은 제품, 즉 믿을 만한 뉴스의 가치는 올라가고 있다. 여기에 언론사의 기회가 있다. 나는 ‘프로덕트 맨’이다. 언론사 경험은 없지만, 훌륭한 가치를 지닌 제품이 잘 팔리도록 만드는 방법을 안다.

게리 리우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최고경영자(CEO)는 항상 ‘사용자 경험’을 강조한다. 사용자들이 뉴스를 소비하며 ‘어떤 경험’을 하는지 미디어가 주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4월 홍콩 외신기자클럽(FCC) 콘퍼런스 강연 장면. [사진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게리 리우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최고경영자(CEO)는 항상 ‘사용자 경험’을 강조한다. 사용자들이 뉴스를 소비하며 ‘어떤 경험’을 하는지 미디어가 주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4월 홍콩 외신기자클럽(FCC) 콘퍼런스 강연 장면. [사진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요즘 사람들은 포털 등을 통해 언론 기사를 본다. 포털과 언론사의 공존이 가능할까? 언론사에 어떤 기회가 있다고 보나. 

공존이 필요하다. 단 언론사와 플랫폼업체 각자가 해야 할 일이 있다. 우선 언론사는 뉴스도 ‘제품’이라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이를 받아들이면 그 제품이 포털과 메신저, 자사 홈페이지 등 각기 다른 플랫폼에서 어떻게 유통되는지 관심을 갖게 된다. 또 사용자(독자)가 각 플랫폼에서 처음 뉴스를 골라 본 뒤 어떤 경로로 다른 뉴스들을 소비하는지도 관찰할 수 있다. 이른바 사용자의 ‘미디어 활용(media literacy)’이다. 이를 데이터베이스화해 뉴스 제품의 생산ㆍ유통 혁신에 적용해야 한다.
포털과 같은 플랫폼 기업들은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가짜 뉴스가 아니라 믿을 수 있고 퀄리티 높은 뉴스를 유통하고, 이를 통해 플랫폼 사용자들이 더 나은 미디어 활용을 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사용자는 플랫폼을 통해 뉴스를 찾기 때문이다. 언론사와 플랫폼 기업이 각자 이 두 가지를 해낼 수 있다면 공존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

가능하더라도 수익을 내야 기업을 유지할 수 있다. 언론사가 안정적인 수익을 도모할 수 있을까.

언론사가 안정적인 수익을 내는 것은 지속가능한 사업과 독립성 유지를 위해 꼭 필요하다. SCMP는 현재 일시적으로 유료 구독제(pay wall)를 없앤 상태다. 하지만 언젠가 다시 유료 구독을 재개할 것이고, 그렇게 해야만 한다. 광고만으로 수익 구조를 안정화할 수는 없다. 광고와 구독료, 그리고 콘퍼런스 같은 부대사업 등 다양한 수익 구조를 통해 안정적인 경영을 모색해야 한다. 자세한 내용은 (유민) 콘퍼런스에서 얘기하겠다.

홍콩 외신기자클럽에서 강연하는 게리 리우 SCMP CEO.

홍콩 외신기자클럽에서 강연하는 게리 리우 SCMP CEO.

리우는 취임 후 다양한 강연을 통해 “디지털 세상이 변화할 때마다 새로운 기회가 열린다. 지금까지 미디어는 계속 기회를 놓쳐왔다”고 지적했다. 제품(뉴스)의 가치만 중시하고, 사용자들이 어떤 경험을 하는지 경시해 입지가 좁아졌다는 거다. 대표적인 예로 “앱이 처음 출시됐을 때 대부분의 언론사가 웹 홈페이지를 축소해 그대로 옮긴 것”을 꼽았다. 반면 허핑턴포스트·버즈피드 같은 뉴미디어들에 대해서는 “사실과 의견을 구분해 뉴스를 제공할 줄 모른다”고 꼬집었다.

유민 100년 미디어 콘퍼런스 연사

유민 100년 미디어 콘퍼런스 연사

SCMP의 디지털 혁신은 어떻게 이뤄지고 있나?  

 SCMP의 과거 미션은 ‘홍콩에 대한, 홍콩을 위한 신문(Newspaper about Hongkong, for Hongkong)’이었다. 가장 먼저 이 미션을 ‘중국을 취재해 세계에 알리는 디지털 미디어’로 바꿨다. 취재 대상과 타깃 독자가 바뀐 셈이다. 이렇게 미션을 바꾸면 왜 우리가 디지털로 가야 하는지 명확해진다. 그 뒤 취재 내용과 기사 쓰는 방식이 모두 바뀌었다. 변하지 않은 것은 ‘퀄리티 유지’ 하나다. 우리는 가능한 모든 플랫폼을 통해 전 세계에, 제대로 뉴스를 전달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디지털 혁신 이후 트래픽(온라인 기사소비)이 늘었고, 현재 트래픽의 80%가 홍콩 밖에서 들어오고 있다.

당신이 그리는 SCMP의 미래는 무엇인가?  

 아주 구체적인 비전은 회사 기밀이다. (웃음) 농담이고, 우리가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는 없지만, 변화에 가장 빠르게 반응하고 움직일 수 있도록 회사를 바꾸고 있다.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크게 두 가지다. 우선 회사 ‘문화’를 바꾸는 데 가장 많은 에너지와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새 비전을 달성하려면 일하는 방식과 결과물이 달라져야 한다. 이런 ‘변화의 방향’을 조직 구성원들이 저마다 다르게 이해하지 않도록, 용어의 통일에 심혈을 기울였다. 구성원들이 같은 말을 쓰면 목표를 딱 집어내고 집중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원래 1년마다 이뤄지던 회사의 주요 의사결정 주기도 더 빠르게 바꿨다. 구조적 변화도 있었다. 데이터시스템을 구축했고, IT 업계에서 능력 있는 인재들을 영입했다. 지난 9월엔 신문전담팀(dedicated print team)을 만들었다. 종이신문 제작은 이 팀에 소속된 20명이 책임진다. 나머지 250명의 기자는 디지털 기사만 생각한다.

게리 리우 SCMP CEO

게리 리우 SCMP CEO

나머지 250명 기자들은 반응은 어떤가. 신문을 만들던 사람들에게 어느 날 갑자기 ‘디지털 미디어’를 만들라고 하니 반발이 컸을 텐데.  

우선 무척 어려웠다는 점을 꼭 기억해달라(웃음). 자, 상식적으로 문화를 바꾸려고 하는데 일하는 사람들이 모두 그대로면 어려울 수밖에 없다. 사실 기업 입장에서 문화를 가장 빠르게 바꾸는 법은 기존 직원을 모두 해고하고 다른 사람들을 채용하는 거다. 그러나 나는 SCMP가 100년 넘게 지켜 온 전통과 신념을 유지하면서 디지털 미디어로 변화할 수 있다고 믿었다. 또 뉴스를 생산하고 유통하는 방식은 바뀌어야 하지만, 뉴스가 지녀야 하는 가치와 독립성은 유지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런 일은 지금 있는 기자들이 가장 잘할 수 있다. 해고 대신 공통의 '언어’를 만드는 데 가장 힘을 쏟았던 이유다.

10년 뒤 플랫폼은 어떻게 변할 것으로 전망하나?  

웹에서 앱으로 간 디지털은 점차 메신저로 방향을 틀고 있다. 디지털 시대에는 플랫폼이 기사의 형태를 결정한다. 종이신문에서는 ‘기사가 몇 면에 실리느냐’ ‘톱기사냐 사이드 기사냐’ 등에 따라 기사 형태가 달라졌다. 제목이 기사를 볼지 말지를 결정했다. 앱에서는 어떤가? 기사에 달린 사진과 그 밑에 뜨는 설명 몇줄로 사용자 클릭 여부가 판가름난다. 정확한 예측은 불가능하지만, 메신저에서는 좀 더 짧은 형태의 기사가 나오지 않을까 싶다. 비디오 콘텐츠도 점점 늘어날 거다.

‘뉴스는 제품’이라고 냉정하게 말하는 ‘IT맨’ 리우에겐 한 가지 반전이 있다. 그는 "매일 아침 WSJ 온라인판과 함께 SCMP와 뉴욕타임스 등 종이신문 4개를 챙겨본다"고 했다. 한 콘퍼런스에선 “비디오 콘텐츠가 날이 갈수록 증가하겠지만, 우리는 문자 기반 뉴스가 인류 지성 발전에 기여해왔다는 걸 잊으면 안 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뉴스에 대한 애정이 아주 큰 것 같은데 

맞다. 사실 어릴 적부터 신문을 챙겨봤고, 항상 뉴스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관심이 있었다. 그렇게 보면 내가 언론사에 온 게 전혀 생뚱맞은 일이 아니다. 앞으로 플랫폼이 어떻게 변하더라도, 믿을만한 뉴스를 생산하는 언론사 브랜드를 가지고 변화에 잘 대처한다면 반드시 더 큰 기회가 올 거다.

조혜경 기자 wiselie@joongang.co.kr

게리 리우(Gary Liu)는?

게리 리우 SCMP CEO

게리 리우 SCMP CEO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나 대만과 뉴질랜드에서 자랐다. 미국으로 돌아와 하버드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에는 줄곧 뉴욕에서 일했다. 자신은 스스로의 정체성을 '뉴요커'라고 말한다. 현재는 치과의사인 아내와 함께 홍콩에서 살고 있다. 디그 CEO 시절 단순한 뉴스 모음 서비스를 데이터 기반 뉴스 플랫폼으로 재탄생시켜 매출을 세 배로 끌어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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