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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에 사는 것, 저에게는 퍼포먼스였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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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욕에 살며 그림, 사진, 퍼포먼스 등의 작업을 해온 작가 김미루.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미국 뉴욕에 살며 그림, 사진, 퍼포먼스 등의 작업을 해온 작가 김미루.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제가 찍은 사진작품을 설명하는 책이 아니에요. 전혀 다른 독립적인 작품으로, 제가 이런 곳을 다니면서 현지인들과 생활하고 다른 문화에 들어가서 경험한 스토리 자체로 읽어줬으면 좋겠어요."

중앙일보 스튜디오에서 포즈를 취한 김미루 작가.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중앙일보 스튜디오에서 포즈를 취한 김미루 작가.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미국 뉴욕에 살며 그림·사진·퍼포먼스 등의 작업을 하는 작가 김미루(36)는 사막체험을 담아 쓴 책 『김미루의 어드벤처』(통나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도올 김용옥의 막내딸인 그는 강렬하고 도발적인 작품으로 20대 시절부터 국내외의 주목을 받아왔다. 뉴욕 등 대도시의 낯설고 인적없는 공간을 자신의 나체와 함께 찍은 ‘벌거벗은 도시의 우울(Naked City Spleen)‘, 미국 중부의 대규모 축산농장에 잠입해 맨몸으로 돼지들과 뒤섞인 '돼지, 고로 존재한다(The Pig That Therefore I Am)' 같은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돼지, 고로 존재한다(The Pig That Therefore I Am)'프로젝트 중 한 사진 작품. 사진 김미루

‘돼지, 고로 존재한다(The Pig That Therefore I Am)'프로젝트 중 한 사진 작품. 사진 김미루

 이런 작품을 보면 무척 대담하고 저돌적인 예술가가 떠오르지만 이번 책에선 사뭇 다르다. 도시의 편리와 호사에 익숙한 젊은이, 해외 곳곳을 다녀봤어도 예방주사가 필요한 지역은커녕 호스텔이나 캠핑조차 가본 적 없던 젊은이가 사막이란 낯선 환경에서 크고 작은 좌절을 겪는 모습이 드러난다. 예컨대 아흐레 일정으로 처음 찾은 북아프리카 말리의 사막에선 음식이 안 맞고 화장실이 불편해 속을 끓인다. 조력자로 섭외한 현지인에게는 '기부' 명목으로 바가지를 쓰며 "가난한 예술가" 대신 "걸어 다니는 ATM(자동현금인출기)"이라고 자조한다. 이 모든 고생을 사서 하는 이유는 사막에서 낙타와 함께 작품을 찍으려는 것. 하지만 순탄할 리 없다. 그래서 이 책은 일종의 실패담 같다. 사막에서 찍은 사진 등으로 이미 '낙타의 길(Camel's Way)' 프로젝트를 선보였던 걸 떠올리면 좀 의아하다.

'낙타의 길(Camel's Way)' 프로젝트 가운데 한 작품. 2014년 트렁크 갤러리 전시 때 선보였다. 사진 김미루

'낙타의 길(Camel's Way)' 프로젝트 가운데 한 작품. 2014년 트렁크 갤러리 전시 때 선보였다. 사진 김미루

 지난주 한국을 찾은 작가를 만나고 의문이 풀렸다. 그는 "'1권'이라고 하진 않았지만 2권, 3권을 더 쓸 것"이라며 "작업하는 과정이 아니라 작업 때문에 다니면서 했던 체험, 그리고 현지인들과 같이 살아가면서 느꼈던 점을 포함해 앞으로 계속 쓸 책"이라 말했다. 월간중앙에 연재 중인 글을 묶은 이번 책은 2012년부터 3년에 걸친 사막 체험 중 말리와 몽골을 다룬다. 이후 그는 이집트·인도·모로코 등의 사막을 누볐다. 특히 요르단은 1년 반을 머물며 사막에서 10개월쯤 살았다고 한다.

김미루 작가. 중학교 때 미국으로 건너가 이후 줄곧 미국에서 공부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김미루 작가. 중학교 때 미국으로 건너가 이후 줄곧 미국에서 공부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사막에서 생활하며 계속 블로그를 썼어요. 사정이 생겨 온라인으로 해두진 않았지만. 사막에서 살아가는 것 자체가 퍼포먼스 아트라고 생각하면서 일상생활과 경험을 글로 썼죠." 현지인과 함께 생활하려 한 동시에 좀 다른 생활도 시도한 모양이다. "사막의 동굴 안에 책상도 들여놓고 사무실처럼 꾸미고 태양열로 불도 썼어요. 근데 오래 있으니까 '아트'라는 개념이 없어지더라고요." 사막에 오래 머물다 잠깐 뉴욕으로 돌아갔을 때는 "백지가 된 것 같았다"고 돌이켰다. "모든 걸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경험을 했어요."

새로 펴낸 책 '김미루의 어드벤처' 표지. 그는 2권, 3권을 더 쓸 것이라고 했다.

새로 펴낸 책 '김미루의 어드벤처' 표지. 그는 2권, 3권을 더 쓸 것이라고 했다.

 사막 체험을 글로 정리하는 것과 함께 새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다. 도시·돼지·낙타에 이어 이번엔 식용벌레다.  2014년 중국을 여행하다 식용벌레를 처음 먹어본 경험이 계기가 됐다. "벌레를 사람들이 먹는단 사실이 충격으로 다가오는 건 제 개인적 공포감과 관련 있겠죠. 애벌레는 어려서부터 공포증이 굉장히 심했어요. 충격이 오면 일단 리서치를 많이 하게 돼요.” 식용벌레는 문화권에 따라 징그럽게 여기기도 하지만 식량문제의 대안으로, 환경문제를 유발하지 않는 단백질 생산방식으로 세계적 주목을 받고 있다. 그는 "고갱의 회화에 등장하는 이국적인 여성들처럼 제가 작품 속에 들어가 과일 대신 식용벌레를 쓰기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미루 작가. 아버지의 바람대로 의학 공부를 마치는 대신 서양화를 전공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김미루 작가. 아버지의 바람대로 의학 공부를 마치는 대신 서양화를 전공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매번 작품에 직접, 또 나체로 등장하는 이유는 이렇게 말했다. "처음 도시 시리즈를 했을 때 아무것 없는 공간에 살아있는 형상을 넣고 싶었는데 제가 직접 하는 게 제일 말이 됐어요. 퍼포먼스 요소도 있고. 사람 몸이 들어가니 공간이 변화하는 것 같아요. 옷을 걸치지 않으면 시간적, 문화적 요소가 다 제거가 되니까 유니버설하고 원초적인 모습이 되고요. 그게 제가 하는 퍼포먼스가 되고, 낯선 곳도 친근한 곳이 되고, 작가가 바라보고 느끼는 공간이 되죠. 사막처럼 사람이 살기 힘든 곳도 몸으로 들어가서 경험을 해보는 과정이 중요하게 돼요."

김미루 작가. 새로운 프로젝트로 식용벌레에 대한 작업에 착수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김미루 작가. 새로운 프로젝트로 식용벌레에 대한 작업에 착수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책 출간을 비롯한 다양한 활동에 대해서는 "원래 어렸을 때는 글을 쓰는 게 소원이었는데 미술 쪽을 하게 됐다"며 "전공은 회화인데 사진 작업도 하고 비디오 퍼포먼스도 하는 것처럼 여러 분야를 조금씩 넓게 해보는 게 재미있다"고 말했다.
 이후남 기자 hoon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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