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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음으로 갈수록 열리는 목소리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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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9호 06면

[THIS WEEK HOT] 첫 내한공연 소프라노 디아나 담라우

지금 현재 메이저 중 메이저 오페라극장인 메트·바이에른 슈타츠오퍼·빈 슈타츠오퍼를 지배하는 소프라노는 안나 네트렙코와 디아나 담라우(Diana Damrau) 다. ‘라보엠’ 미미에 소냐 욘체바(1981년생), ‘나비부인’에 크리스틴 오폴라이스(1979년생)가 주목받지만, 경륜과 캐스팅에 따른 흥행 결과를 보면 아직 선배들과 대적하긴 어렵다. 미모만으론 메이저 오페라극장에서 오래 버티긴 어렵고, 테크닉이 좋아도 존재감을 얻기까진 시간이 걸린다.

지난 10월 네트렙코 방한에 이어 21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담라우의 첫 내한 공연이 열렸다. 2011년 메트 오페라 일본 투어 이후 6년 만의 아시아 공연이었고, 부군인 베이스바리톤 니콜라 테스테와 함께 하는 콘서트 리사이틀 형태였다.

1971년 독일 남서부 소도시 귄츠부르크에서 태어난 담라우는 20대를 독일권 중소 도시 오페라단의 조역으로 활동하면서 세상이 자신을 알아볼 세기를 다듬었다. 예전의 조수미가 그랬듯, 담라우도 ‘마술피리’ 중 밤의 여왕역으로 조명 받았다. 2002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을 시작으로 2003년 영국 로열 오페라, 2004년 메트가 담라우를 내세웠다. 2010년대 초반까지 세계 주요 메이저 오페라에서 ‘밤의 여왕’ 넘버 원 캐스트는 바로 그녀였다.

세계를 호령한 콜로라투라(꾸밈음과 트릴로 고음 기교를 장식) 소프라노들이 그렇듯, 서른 중후반을 넘어가면서 조금 더 목소리를 무겁게 가져가거나, 갖고 있는 핵심적인 고음 기교를 온전히 간직하는 과제가 담라우에게도 닥쳤다. 복서가 체급을 올릴 때 마주하는 불안처럼, 담라우는 자신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정확한 판단과 현명한 예측이 동시에 요구되는 시점이다. ‘밤의 여왕’을 중단한지 5년이 넘었고, ‘피가로의 결혼’에서도 라이트 리릭인 스잔나 대신 이제 풀 리릭인 알마비바 백작부인을 맡는다.

콘서트 곡목들은 구노·벨리니·마이어베어의 대표적인 리릭 콜로라투라 아리아들이었다. “디아나 담라우가 이런 가수였다”는 것을 보이는 회고전의 의미였고, 5년 전이나 10년 전에 들었다면 더 놀라웠을 기량이다. 목 상태가 쾌적하지 않아 기침이 나왔지만, 연기의 일부로 눙치는 노련함이 베테랑다웠다. 섹스 어필은 존재하지 않았고 자리를 맴돌면서 고음을 퍼올리는 스킬은 음역의 최고점에 도달하기 위한 기술 중 하나였다. 고음의 종지를 길게 뽑는 대신 스타카토로 마무리하면서 목 부담을 줄이는 것도 위기를 수습하는 살아있는 교과서였다.

이날 담라우가 본연의 모습을 보인 건 마지막 곡인 베르디 ‘라 트라비아타’ 중 비올레타 아리아 ‘아 그대인가’이다. ‘람메르무어의 루치아’와 함께 드라마틱 콜로라투라의 확고한 입지를 지금도 단단히 하는 이 작품부터 담라우의 진실한 현재가 흘러 나왔다. 가녀림 대신 볼륨을 흉성으로 담아내는 독특한 접근이 기존의 비올레타상과는 한참 동떨어졌다. 독특한 타격폼으로 찬스마다 타점을 올리는 타자처럼, 처음엔 익숙하지 않지만 볼수록 빠져드는 캐릭터다.

가벼운 소리를 어떻게 무겁게 가져갈 것인가의 또 다른 해답은 앙코르, 우리 가곡 ‘동심초’에서 나왔다. 테너 이용훈이 밝혔듯 초일류 가수 여부는 내지름이 아니라 두성과 흉성의 성구(聲口) 경계를 자연스럽게 오가는 파시지오(Passagio)에 있다. 담라우의 고음은 올라갈수록 소리가 점점 더 열려서 결국 극치를 발현했다. 조수미가 20년 전 한국 가곡 녹음 작업에서 행했던 그 시도다. 어디서 오페라를 부르냐로 자신의 성장을 확인했던 담라우가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부를 것인가의 힌트를 2017년 서울에서 찾은 듯 하다.

글 한정호 음악평론가 imbreeze@naver.com, 사진 Jürgen Fr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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