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지진 수능'이 우리 사회에 남긴 교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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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포항 강진으로 일주일 연기됐던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무사히 끝난 것은 천만다행이다. 수능의 변별력도 어느 정도 확보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혼란 속에 불안한 마음을 누르고 시험을 치른 수험생들에게 격려를 보낸다. 오늘 시작되는 수시 논술·면접에서도 좋은 성과를 거두기 바란다.

이번 ‘지진 수능’은 우리 입시제도에 큰 교훈을 남겼다. 수험생·학부모가 인생을 거는 수능의 취약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경종을 울렸다. 수능은 한날한시에 전국 60만 명이 동시에 치르는, 세계에서도 드문 우리만의 독특한 제도다. 그런 만큼 지진 같은 천재지변 비상대책은 필수다. 그런데 남의 나라 일로만 여기고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이다. 더 걱정인 것은 앞으로 규모 6.0 이상의 강진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전문가들의 경고다. 지진 종합대책에 수능도 반드시 포함해야 하는 이유다.

우선, 과하다 싶을 정도의 지진 수능 매뉴얼이 필요하다. 이번에 교육부는 지진이 심해 운동장에 대피하는 수험생은 시험을 무효처리한다는 즉흥적인 대책을 내놓았다. 수능 점수가 없으면 대부분 대학에 갈 수 없는데 얼마나 불안했겠는가. 그런 ‘지진 트라우마’를 없애려면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둔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수능 연기 기준이 될 지진 규모를 명시하고, 예비 수능일을 정해 놓는 것이 그 방법이다. ‘지진의 나라’ 일본은 그런 방식으로 수험생을 안심시키고 있다고 한다.

재시험 대책도 고려해야 한다. 매년 수능 문제를 한 세트만 준비했다가 시험 도중 강진이 급습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재시험에 대비해 수능 여벌 세트까지 고민해야 한다. 그러려면 10년 전 논의했던 문제은행식 출제를 다시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 어찌 지진이나 대입 수능뿐이겠는가. 언제 닥칠지 모를 다양한 천재지변에 대비해 국가 주요 사업들은 미리부터 긴급 대응 매뉴얼을 마련해 놓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