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단독] 존엄사 합법화 후 연명의료 첫 중단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6면

지난달 23일 연명의료결정법 시범사업이 시작된 이후 연명의료를 하지 않고 임종한 환자가 처음 나왔다.

지난달 등록한 암환자 세상 떠나 #병세 악화에도 심폐소생술 등 안 해 #시범사업 후 신청자 10명도 안 돼 #법 개정해 환자 선택폭 넓히기로

지난해 2월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연명의료결정법)을 제정한 이후 법적 절차에 따라 존엄사를 선택한 첫 사례다.

21일 보건복지부와 의료계에 따르면 연명의료결정 시범사업 의료기관에 입원한 한 암 환자가 최근 병세가 악화돼 숨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 환자는 임종 시기에 접어들었을 때 의료진이 심폐소생술·인공호흡기 등의 연명의료를 하지 않았다. 의료진은 “심폐소생술을 하게 되면 환자에게 득이 되는 게 아니라 해를 끼치게 된다. 환자가 고통을 받지 않고 자연스럽게 임종했다”며 “병세가 악화돼 자연사(自然死)한 것으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이 환자는 지난달 23일 연명의료결정 시범사업이 시작된 후 의료진에게 연명의료계획서(POLST)를 작성하겠다는 뜻을 밝혔고, 의사의 설명을 충분히 들은 뒤 서명했다. 심폐소생술·인공호흡기·혈액투석·항암제투여 등의 네 가지 연명의료 행위를 모두 받지 않겠다고 체크했고 임종 상황이 되자 본인의 뜻에 따라 연명의료 없이 편하게 임종했다.

연명의료계획서는 환자의 뜻을 받들어 의사가 네 가지 연명의료를 시행하지 않겠다는 뜻을 담은 문서다. 의사가 환자를 설득해 작성할 수도, 반대로 환자가 의사에게 요청할 수도 있다. 이번에 존엄사(자연사)를 택한 환자는 평소 ‘연명의료가 불필요하다’는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지난달 23일부터 이달 20일까지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한 사람은 10명을 넘지 않는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자는 1648명이다. 사전의향서는 주로 건강한 사람이 작성했다. 반면 연명의료계획서는 말기나 임종기 환자가 작성할 수 있어 대상이 제한돼 있다. 의사가 환자에게 먼저 설명하는데 이게 쉽지 않다. 허대석 서울대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는 “환자한테는커녕 가족에게 연명의료계획서 작성을 설명하기 어렵다. 어떤 가족은 ‘환자에게 말기 상황을 알려주면 자살할지 모른다’며 화를 냈다”면서 “현실과 잘 맞지 않아 작성자가 많지 않다”고 말한다.

시범사업에서 이런 문제가 드러나자 정부와 국회가 법령 개정을 서두르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김상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다음달 초 연명의료결정법 개정안을 발의할 예정이다.

말기·임종기 환자뿐 아니라 수개월 내 임종과정에 들 것으로 예상되는 환자도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할 수 있게 대상자를 넓힌다. 예를 들어 암 진단을 받을 때 작성할 수 있게 된다. 또 중단 가능한 연명의료 행위에 승압제(혈압을 올리는 약)나 에크모(체외막산소화장치) 등을 추가할 수 있는 근거가 담긴다.

이윤성 국가생명윤리정책연구원장(서울대 의대 법의학 교수)은 “연명의료 제도를 계속 홍보하고 법을 일부 보완하면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하는 사람이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ssshi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