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지진과 AI 사태 … 시험대 오른 ‘안전 대한민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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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안전 대한민국’을 표방한 문재인 정부가 시험대에 올랐다. 역대 두 번째로 강력했던 엿새 전 포항 강진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조류인플루엔자(AI)가 급습했다. 천재(天災)인 지진과는 달리 AI는 그간 정부 부실 대응이 부른 인재(人災)에 가까웠다. 그래서 국민은 불안해한다.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는 안심 사회를 국정과제로 내건 정부의 위기대처 능력이 절실한 상황이다.

AI 첫 발생, 총리가 컨트롤타워 맡아 #총력 대응해 평창올림픽 차질 없애야 #지진 복구와 수능도 만반의 대책을

정부의 AI 초기 대응은 일단 평가할 만하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어제 긴급 AI 대책회의를 주재하고 총력 방역체계를 가동했다. 전북 고창에서 발생한 AI가 이번 겨울의 첫 고병원성 H5N6형 바이러스로 확진된 데 따른 조치다. AI 위기경보를 ‘주의’에서 최고 단계인 ‘심각’으로 높이고, 48시간 가금류 일시 이동중지 명령을 발동한 것도 적절해 보인다. 어수선한 촛불 정국 속에서 정신을 놓고 있다가 3800만 마리 살처분이란 재앙을 키운 지난해 11월 AI 사태 때와는 대조적이다.

하지만 이 정도 조치로는 어림없다. 이번 바이러스는 전염성과 폐사율이 강력한 H5N6형이다. 전남 순천만 야생조류 분변에서도 같은 바이러스가 검출됐다. 이마저도 어젯밤 고병원성으로 확진됐다. 본격적인 철새 이동 시기에 그 파장을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다. 더 큰 걱정은 내년 2월 평창 겨울올림픽이 80일 앞으로 다가왔다는 점이다. 가뜩이나 국민적 관심이 시들한 마당에 AI가 창궐하면 행사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 살충제 계란 파동 이후 겨우 안정세로 접어든 계란값 상승 우려도 있다. 그런 불안감을 해소하려면 이 총리가 직접 AI 컨트롤타워를 맡아야 한다. 이 총리가 강조했듯 초동 대응과 현장에 그 답이 있다. 물샐틈없는 방역망을 가동해 또 다른 인재를 막아야 한다.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긴밀한 공조와 농가의 협력도 필수다.

한편으로 포항 지진 복구에 속도를 내야 한다. 이재민이 1000여 명, 건물 피해 7000여 건, 부상자가 80명을 넘었다. 경주 지진 때보다도 피해 규모가 크다. 정부가 특별재난구역으로 선포한 만큼 강추위가 오기 전에 복구를 서둘러야 한다. 구멍 뚫린 재난 대비 시스템 정비도 절실하다. 기둥이 무너져 폐쇄가 결정된 흥해초교가 정부의 공식 지진대피소였던 사실까지 드러났다. 정부 매뉴얼조차 믿을 수 없는 게 아닌가. 종합대책에 대피소 문제도 꼭 포함해야 할 것이다.

일주일 연기돼 오는 23일 치르는 수능도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교육부는 지진 피해가 컸던 포항의 4개 고사장을 옮기고 12개의 예비 시험장을 마련했다. 하지만 60차례 가까운 여진이 이어져 안심할 수 없는 상태다. 만일의 경우까지 염두에 두고 대비책 마련에 한 치의 오차도 없어야 할 것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안전 대한민국’은 저절로 구축되지 않는다. 정부가 지진·AI·수능 대책에 모든 힘을 기울여 국민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 말만 앞세운다면 역대 정부나 세월호와 다를 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