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씨 왕조 끝나고 대만인 시대로|장경국 총통 사후의 대만 어디로 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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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홍콩=박병석 특파원】장경국 총통의 사망은 강력한 권한을 행사해온 장개석 총통으로부터 내려온「장씨 왕조」의 종언이자 국민당의 중국공산당에 대한 뼈에 사무친 원한에 전환점을 가져오는 계기가 된다.
1927년 고 장개석 총통이 중국대륙의 대권을 잡은 시점부터 계산하면 장경국 총통으로 이어진 장씨 가문의 세습통치는 이미 39년이나 됐으며 국민당이 공산당에 패해 대만으로 옮겨온 49년부터 계산해도 이미 39년이나 된다.
장 총통의 사망으로 비록 헌법규정에 따라 부 총통인 이등휘(오)가 총통 직을 계승하기는 했으나 그동안 이가 제2인자로서의 실권을 행사할 수 있는 정치적 기반을 갖추지 못했다는 점등에서 힘의 갑작스런 공백에 따른 후계자의 문제가 관심을 모은다.
자유중국의 앞날은 힘의 재편성에 의한 명실상부한 최고통치자가 결정되기까지 이등휘 총통을 포함해 국민당중앙상무위원들을 주축으로 하는 집단지도체제가 끌고 갈 것으로 판단된다.
그간 대만정치는 조직과 체제를 초월한 장경국이라는 개인인물이 당·정·군 일체를 장악하는 특징을 보였으나 앞으로는 국민당 중앙상무위를 중심으로 하는 힘의 분산과 협의에 의한 체제가 등장하게될 것 같다.
대만의 정부형태는 국민당이라는 당이 정부를 끌어가는 1당 통치국가로서 권력구조의 핵심은 당에 있고 당 중앙위가 정책결정기구가 된다.
당 중앙위 중에서도 두각을 나타내는 인물은 당내 서열 3위인 이 총통을 포함해 행정원장 유국화(75), 국방부참모총장 ??기백촌(69), 국민당비서장(사무총장) 이환(71), 총통부 비서장을 지낸 심창환(75) 등을 꼽을 수 있는데 이 총통을 제외한 나머지 4인을「4대 킹콩」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총통의 임기는 장 총통의 잔여임기기간인 90년2월까지로 그때까지는 ??형 참모총장 등을 위시한 보수·강경파와 이환 등 개혁·개방파들의 권력투쟁이 예상되며 장 총통의 이복동생이며 국가안전회의 비서장인 장위국의 동태도 주목된다.
그러나 고 장 총통이 85년8월 미 시사주간지 타임과의 인터뷰를 통해 장씨 가족 중에는 후계자가 나올 수 없다고 밝힌데 이어 85년12월25일 헌법제정 38주년 기념연설에서 장씨 가족의 승계와 군정가능성을 배제했다.
고 장 총통은 그 후 몇 차례 이런 원칙을 재확인했으며 이와 같은 흐름은 변동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학참모총장을 비롯한 군 고위장성들이 대부분 대륙출신의 보수강경파로 구분되나 대만의 역사를 보면 군이 정치일선에 등장한 예가 없고, 또 실제 군의 일선 지휘관들은 대부분 정치에서 제외된 대만출신이 담당하고 있다.
장 총통사후 자유중국 정치의 가장 큰 변화와 특징은「대만화」의 물결에서 비롯될 것 같다.
대만이 추진하고 있는 개방·민주화의 앞날도, 중공과의 장래도, 사회·경제적 변화도 바로 대만 인에 의한 대만통치를 주장하는 대만화에서 출발한다.
이에 대한 본토출신의 반발이 어떤 형태로 타협을 이루느냐가 앞으로의 과제다.
49년 국민당정부가 대만으로 쫓겨온 후 대만의 권력 핵심은 거의 모두 중국대륙에서 건너온「외성인」들이 차지했다.
인구비례로 보아 15% 미만의「외성인」들이 전 인구의 85%를 차지하는 대만출신인「본성인」들을 통치해 온데 따른 모순과 불만은 대단한 것이었다.
76년의 중????1만인 폭동사건, 78년의 고웅 폭동사건(일명 미려도 사건)을 비롯해 최근에 일고있는 입법위원 등 국민대표선출제도개혁요구 데모들도 바로 소수 외성인의 정치적 독점으로 인한 대만 본성인의 갈등이 야기한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는 대만 인들의 중용이 현저해질 것이며 이러한 대만화는 곧바로 민주화로 직결될 것이다.
대만 인들의 한결같은 요구가 외성인을 우대하기 위해 만들어진 불합리한 각종 제도를 합리적으로 뜯어고치자는 것이었다.
앞으로 국내정치의 초점은 민주화개혁과 함께 대륙출신에게 종신제라는 특혜를 규정한 모순된 입법원(국회) 구성 등 정치구조를 개혁하는 작업에 쏠리게 될 것이다.
중공과의 문제는 장경국 총통 등 국민당 수뇌부가 공산당에 품어왔던 뼈에 사무치는 원한의 세대가 사라지고 있다는 점등으로 미뤄보아 현재보다 교류가 확대된다는 예측이 유력하다.
대만의 대만화에 편승해 대만의 독립을 요구하는 소위 대독(대만독립) 분자들의 목소리가 높아질 것이나 자유중국이나 중공이나 모두 대독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있다는 점에서 대만화와 대만독립은 구분된다.
그러나 권력이 재편성되기까지 민주화나 대 중공개방정책 등 미묘한 문제들은 될 수 있는 대로 덮어둔 채 집단지도체제에 의한 협의 형태로 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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