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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앤디 워홀, 재클린 케네디도 함께한 그의 순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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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스 메카스의 작품을 선보이는 전시장 모습. 사진=이후남 기자

요나스 메카스의 작품을 선보이는 전시장 모습. 사진=이후남 기자

 22세에 고국 리투아니아를 떠난 청년은 나치의 강제노동수용소 등을 거쳐 27세였던 1949년 미국 뉴욕으로 이주했다. 그리고는 몇 달 뒤 주변에서 돈을 빌려 16mm 영화 카메라를 샀다. 이후로 카메라는 그의 분신과도 같았다. 그와 가까웠던 동시대 예술가들의 모습을 비롯해 일상의 무수한 순간을 동영상에 담았다. 할리우드 영화와 크게 다른 방식으로 영화라는 매체의 예술적 가능성을 추구해온 그의 이름은 요나스 메카스(95). ‘아방가르드 영화의 대부’로 불리는 그의 전시가 ‘요나스 메카스:찰나, 힐긋, 돌아보다’라는 제목으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리고 있다.

요나스 메카스. 사진=국립현대미술관

요나스 메카스. 사진=국립현대미술관

 영상작품을 비디오 설치 등의 형태로 미술관 전시장에 선보이는 것은 흔한 일. 이번 전시는 그 반대의 방식이 눈길을 끈다. 14점의 전시작 중에는 메카스가 동영상으로 촬영한 순간을 정지된 프레임이나 이를 큼직하게 인화해 사진처럼 선보이는 작품이 여럿이다. 각각 40장의 큼직한 인물 이미지로 구성된 ‘앤디 워홀에 관한 기록’(2007), ‘플럭서스 가족’(2007), ‘국가의 탄생’(2007) 같은 작품은 1960~70년대 미국 독립영화계는 물론이고 미술계를 포함해 새롭고 전위적인 흐름을 이끈 예술가들과 깊은 교류를 나눈 면모와 당시 분위기를 짐작하게 한다. 각 작품에는 앤디 워홀·록그룹 벨벳언더그라운드의 루 리드·니코, 플럭서스 운동을 주창한 조지 마키우나스·젊은 백남준, 영화감독 스탠 브래키지·피터 쿠벨카 같은 ‘뉴 아메리칸 시네마 그룹’의 인물 등이 등장한다.

요나스 메카스의 작품을 선보이는 전시장 모습. 사진=국립현대미술관

요나스 메카스의 작품을 선보이는 전시장 모습. 사진=국립현대미술관

 특히 768개의 작은 프레임을 고르고 모아 큼직한 유리패널로 만든 ‘한순간에 모든 기억들이 돌아오다’(2015)는 메카스가 60년 간 촬영한 숱한 작품에서 추출한 이미지라는 점에서 한층 다채롭다. 여러 풍경과 인물 속에서 그와 각별했던 오노 요코와 존 레논 같은 예술가는 물론 재클린 케네디 같은 유명인의 모습을 찾아보는 게 어렵지 않다. 흥미로운 건 이런 프레임이 모두 편집 과정에서 쓰지 않았던 부분이란 점. 메카스의 90세 생일을 앞두고 완성된 동영상 작품 ‘행복한 삶의 기록에서 삭제된 부분’(2012) 역시 그의 이전 작품에서 쓰지 않았던 장면들로 구성돼 있다.

전시장에 선보이고 있는 요나스 메카스의 작품. 사진=국립현대미술관

전시장에 선보이고 있는 요나스 메카스의 작품. 사진=국립현대미술관

요나스 메카스의 작품 '한순간에 모든 기억들이 돌아오다'가 설치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전시장 모습. 사진=이후남 기자

요나스 메카스의 작품 '한순간에 모든 기억들이 돌아오다'가 설치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전시장 모습. 사진=이후남 기자

전시장에 선보인 요나스 메카스 작품의 부분 모습. 사진=이후남 기자

전시장에 선보인 요나스 메카스 작품의 부분 모습. 사진=이후남 기자

전시장에 선보인 요나스 메카스 작품의 부분 모습. 사진=이후남 기자

전시장에 선보인 요나스 메카스 작품의 부분 모습. 사진=이후남 기자

 이처럼 삶의 다양한 순간을 담아온 그의 작품은 흔히 ‘필름 다이어리’라고 불린다. 이렇다 할 내러티브가 없는 대신 그 시적인 순간이 추상적인 예술로 평가받곤 한다. 메카스는 스스로를 '영화감독' 대신 '찍는 사람(filmer)'으로 불러왔다. 그에 대한 국제 미술계의 관심은 2000년대 들어 부쩍 높아져 이름난 갤러리와 미술관, 베니스비엔날레와 카셀 도큐멘타 등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작품을 전시해왔다. 국립현대미술관 김은희 학예연구사와 함께 이번 전시를 준비한 이탈리아 출신 2인조 큐레이터 프란체스코 우르바노·프란체스코 라가치는 ‘아방가르드’의 의미와 관련해 새로운 미디어에 대한 접근도 강조한다. “유튜브가 출범한 게 2005년인데 메카스는 2006년 비디오 다이어리를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디지털 매체를 활용한 면모는 2007년 시작한 ‘365일 프로젝트’에도 확인된다. 새로이 촬영한 일상과 과거의 기록을 포함해 매일 한 편씩의 비디오 다이어리를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점에서 일종의 퍼포먼스라고도 할 수 있다. 이번 전시에는 이를 12개의 모니터를 통해 소개한다.

요나스 메카스의 작품 '파괴 사중주'를 선보이는 전시장 모습. 사진=이후남 기자

요나스 메카스의 작품 '파괴 사중주'를 선보이는 전시장 모습. 사진=이후남 기자

 메카스의 좀 더 다양한 면모를 보여주는 영상 작품도 자리했다. ‘영창’(1964)은 미국 뉴욕 극단 리빙씨어터가 동명의 연극을 연기하는 모습을 관객 없이, 무대 위에서 카메라를 밀착해 실시간으로 찍은 작품. ‘파괴 사중주’(2006)는 베를린 장벽 붕괴, 피아노를 부수는 백남준의 퍼포먼스, 메카스가 뉴욕 자신의 집에서 촬영한 9·11테러 당시 월드 트레이드 센터의 모습 등 각기 다른 시간과 장소의 영상을 4개로 나뉜 화면에 보여준다. 메카스는 50~60년대부터 잡지 '필름컬처'를 창간하고, 지금도 뉴욕의 명소로 꼽히는 실험영화·고전영화 상영장이자 자료원 '앤솔로지 필름 아카이브'를 만들고, 때로는 표현의 자유에 관한 법정 투쟁을 벌이며 아방가르드 영화운동을 이끈 인물인 동시에 리투아니아 시절부터 시를 써온 시인이다. 이번 전시의 제목(영어로 'Again, Again It All Comes Back To Me in Brief Glimpses')도 그가 붙였다고 한다. 전시장 밖에는 저서, 독특한 포즈의 사진이 붙은 영화제 취재용 프레스 카드를 포함한 문헌 자료도 선보인다.

전시실 밖에는 요나스 메카스와 관련된 문헌자료 등을 선보인다. 앞쪽에 보이는 것은 올해 9월 중순 발행된 '빌리지 보이스'의 마지막 종이판에 역대 필자로서 실려 있는 메카스의 모습. 메카스는 이 매체에 1958년부터 1977년까지 '무비 저널'이란 제목으로 영화비평을 기고했다. 사진=이후남 기자

전시실 밖에는 요나스 메카스와 관련된 문헌자료 등을 선보인다. 앞쪽에 보이는 것은 올해 9월 중순 발행된 '빌리지 보이스'의 마지막 종이판에 역대 필자로서 실려 있는 메카스의 모습. 메카스는 이 매체에 1958년부터 1977년까지 '무비 저널'이란 제목으로 영화비평을 기고했다. 사진=이후남 기자

 이와함께 서울관 내부에 자리한 MFV영화관에서 11월 22일부터 ‘요나스 메카스 회고전’이 열린다. 필름 다이어리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월든’을 비롯, 그의 장·단편 38편과 다른 이들의 연계작품 10편을 상영하는 점에서 회고전으로는 전시 자체보다 한층 본격적이다. 상영회는 내년 2월 25일까지. 전시는 내년 3월 4일까지.
 이후남 기자 hoonam@joongang.co.kr

'요나스 메카스:찰나, 힐긋, 돌아보다' #미국 아방가르드 영화의 대부 #시적인 순간이 추상적 예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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