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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명의 붓끝에서 부활한 고흐 '러빙 빈센트' 뒷이야기

중앙일보

입력

'러빙 빈센트'

'러빙 빈센트'

[매거진M] 믿을 수 없을 만큼 놀랍다. ‘러빙 빈센트’(원제 Loving Vincent, 11월 9일 개봉, 도로타 코비엘라·휴 웰치맨 감독)를 보다 보면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이다. ‘러빙 빈센트’는 네덜란드에서 태어나 프랑스에서 활동한 화가 빈센트 반 고흐(1853~1890)가 남긴 명작 130점을 바탕으로 만든 세계 최초 유화 애니메이션. 그야말로 스크린에서 살아 숨 쉬는 고흐의 명화를 만나볼 기회다. 과연 ‘고흐를 가장 고흐답게’ 보여주는 이 놀라운 작업은 어떻게 시작됐을까.

'러빙 빈센트'

“우리는 오직 자신의 그림을 통해서만 말할 수 있다.” 고흐가 사망할 당시 지니고 있던 편지에 적힌 말이다. ‘러빙 빈센트’는 고흐의 마지막 말대로, 그림을 통해서만 화가 고흐를 이야기한다. 다만 영화가 보여주는 건 고흐의 일대기가 아니다. 살아생전 단 한 점의 그림밖에 팔지 못한 화가 고흐의 죽음을 추적해가는 미스터리 구조를 취한다.

'러빙 빈센트'

'러빙 빈센트'

영화의 내용은 이렇다. 1981년 여름, 청년 아르망 룰랭(더글라스 부스)이 우체부인 아버지 조셉 룰랭(크리스 오다우드)으로부터 편지 한 통을 받는다. 그것은 1년 전 자살한 고흐(로버트 굴라직)가 동생 테오(세자리 루카스제위츠)에게 남긴 편지. 고흐와 친구였던 아버지는 아들 아르망에게 그 편지를 테오에게 전하라고 말한다. 편지를 가지고 파리로 간 아르망은 테오가 형을 따라 죽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아르망은 고흐의 마지막 여정을 따라 가보기로 한다. 그리고 고흐가 죽기 전 머물렀던 마을 오베르쉬아즈을 찾아, 그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고흐의 죽음은 자살일까, 타살일까. 영화는 그의 마지막 이야기를 강렬한 붓의 터치와 색채의 향연으로 펼쳐낸다.

고흐를 향한 아름다운 헌사 

'러빙 빈센트' 작업 과정

'러빙 빈센트' 작업 과정

'러빙 빈센트' 작업 과정

'러빙 빈센트' 작업 과정

‘유화로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을 하게 된 코비엘라 감독. 그는 당시 고흐와 테오가 주고받았던 편지를 보며, 주변인들이 보는 고흐의 삶을 이야기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고민 끝에 2분짜리 단편을 만들었고, 영상은 전 세계 제작자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었다. 이후 단편이 장편영화로 기획되며, 유화로 그림을 그리는 거대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이 프로젝트에 함께하고 싶어 오디션에 지원한 화가만 전 세계적으로 4000여 명. 이 중 고흐의 스타일을 훈련해 그릴 수 있는 107명의 화가가 최종 선발됐다.

제작과정에 참여한 화가는 전문 유화 화가뿐만 아니라 요리사, 스페인어 교사, 클래식 자동차 복원가, 미술학도 등 아마추어 화가들까지 포함돼 있었다. 이들은 2년 동안 자그마치 1009개의 장면, 움직임을 위해 총 6만2450여 점의 유화를 그렸다. 제작에 참여한 유화 화가들은 “고흐의 작품들로 애니메이션을 만든다는 건 소름이 돋을 만큼 멋진 일”이라며 “항상 멋진 그림을 영화로 만들고 싶었는데, 이 프로젝트를 통해 이룰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배우의 연기 그림이 되다 

실제 배우들의 촬영 장면

실제 배우들의 촬영 장면

화가들이 유화로 그린 장면

화가들이 유화로 그린 장면

그림은 영화와 다르다. 그림이 특정 순간을 잡아낸 것이라면, 영화는 시간과 공간이 계속해서 흐른다. 이 때문에 모든 제작진은 촬영에 앞서 1년 동안 고흐의 그림을 영화에 맞는 형식으로 재구성하는 것에 집중했다. 바로 스페셜 페인팅 애니메이션 워크 스테이션(PAWS)을 개발해 애니메이션 프로세스를 단순화하도록 한 것. 고흐 그림 스타일을 프레임으로 변환시켜 생명력을 불어넣는 작업을 쉽게 진행할 수 있었다.

또한 모든 장면은 실제 배우가 연기했다. 배우들은 고흐의 그림 속 인물처럼 보이도록, 혹은 고흐 그림이 합성될 수 있도록 그린 스크린 앞에서 연기했다. 이후 화가들은 각자의 스타일대로 배우가 연기한 화면 위에 덧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촬영 영상에 컴퓨터로 생성된 애니메이션을 덧입혔다. 이어 화가들은 움직이는 장면을 구현하기 위해 똑같은 스타일의 그림을 그리는 작업을 계속했다.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건 캐릭터를 한 가지 스타일로, 서로 다른 고흐의 그림에 녹여내는 것이었다. 캐릭터 디자인을 맡은 화가들은 배우의 얼굴 특징을 살리는 동시에 초상화와 비슷하도록 재구성해야 했다.

또한 스토리가 바뀜에 따라 낮 장면의 그림과 밤 장면의 그림들, 가을에 그려진 그림, 겨울에 그려진 그림 등을 영화의 배경인 여름에 맞도록 바꾸는 작업도 함께 했다. 코비엘라 감독은 “그 어떤 화가도 고흐만큼 매력적이지 않다. 그의 삶과 그림이 영화에 잘 보일 수 있도록 기술과 스타일을 최대한 비슷하게 살리는 데 집중했다”고 강조했다.

오프닝과 엔딩

빈센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

빈센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

영화에서 눈여겨봐야 할 장면 중 하나는 고흐의 작품으로 만든 오프닝 시퀀스. ‘별이 빛나는 밤’의 일렁이는 구름과 달의 장면으로 시작해 어두운 밤이 배경이 된 ‘아를의 노란 집’을 지나 ‘즈아브 병사의 반신상’의 혼란스러운 얼굴로 끝난다. 이 장면을 완성하는데 걸린 시간은 1년. 총 729장의 유화가 제작되었다. 그리고 엔딩엔 영화에 나온 1009점의 그림이 등장하는데, 각각 장면의 마지막 프레임을 모아놓은 것이다. 영화는 마지막까지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이지영 기자 lee.jiyoung2@joongang.co.kr 사진=퍼스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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