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작 지시 거부, 『매춘』 공연 말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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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매춘이 어떻게 생성되고 창녀가 사회에서 어떤 취급을 받는가를 파헤쳐 매춘을 통해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지적한 연극 『매춘』(오태영 극본·채승훈 연출)이 공연윤리위원회(회장 이영희)의 대본 수정지시를 정면으로 거부, 공연 허가를 받지 않고 지난 4일부터 공연되고 있어 연극계에 또 한번의 「표현 자유」 파문이 일고 있다.
연극 『매춘』은 지난해 7월 르포 작가 윤일웅 씨가 펴낸 책 『매춘』을 토대로 극단 바탕골(대표 박의순)이 무대에 올린 것. 극단 측은 이 작품의 각색을 오태영·이병도씨 등 두 극작가에게 의뢰, 서로 다른 시각에서 매춘 행위의 사회적 의미를 파헤쳐 보겠다는 기획의도를 가지고 오씨의 작품은 4∼22일에, 이 씨의 작품은 24일∼2월 11일까지 공연할 예정이었다.
이번에 문제가 된 작품은 오씨의 작품으로 공륜 측은 대본을 심의한 결과 ▲「콘돔」 「옷을 벗어라」 등 저속·외설 대사 ▲창녀를 채찍으로 학대하는 장면 ▲우리 나라 최초의 양공주는 미국 「셔먼」호 사건 당시 미국인을 접대하기 위해 동원된 평양 기생이라는 등의 반미 성향이 문제가 있다고 판단, 극단 측에 내용 수정을 요구했다.
그러나 극단 측은 이에 불복, 서울시에 공연 신고 없이 공연을 강행하고 있다.
현행 공연법에 따르면 공륜의 심의필증과 서울시의 공연 신고필증 없이 극장에서 공연하면 공연단체 등록취소나 정권, 작품의 공연정지·공연장 허가취소 또는 폐쇄를 명할 수 있게 되어 있다.
한편 공륜 측은 극단 측이 공륜의 심의필증 없이 공연을 강행하려는 자세를 보이자 구랍 24일 서울시에 행정 계도를 요청했고 서울시는 극단 측에 『일단 공연을 정지하고 행정절차를 밟으면 공연을 계속할 수 있게 해주겠다』고 종용하고 있으나 극단 측은 『차제에 예술 작품에 대한 공륜의 지나친 표현 자유 침해 문제를 본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 『당국에서 행정조치를 내린다면 사법부의 판단에까지 맡겨 보겠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서울시가 공연작품·단체에 행정처분을 한 경우는 84년 극단 연우무대의 공해풀이 마당굿 『나의 살던 고향은』이 공연 2개월 후에 공륜 심의대본과 실제 대본이 다르다는 이유로 6개월간 극단 공연 활동 정지를, 지난해 5월 극단 시민의 세대 풍자극 『팽』이 고문을 빗댄 대사를 임의로 삽입했다는 이유로 1개월간 활동 정지 처분을 한 것 등 이 있다.<강영진 기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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