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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에 중독된 영혼 깨워줄 ‘미래의 연극’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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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7호 30면

지난달 광주아시아문화전당에 오른 베를린 코미쉬 오페라의 ‘마술피리’(2012)는 올해 공연된 오페라 중 가장 돋보인 무대였다. 복잡한 세트 없이 싱어들만 오른 빈 무대가 오페라 월드 어워드(Opera World Awards)의 ‘최고 무대 디자인상’까지 수상한 건 세트 대신 감각적인 애니메이션으로 끝없이 변화하는 창의적인 무대를 연출했기 때문이다.

애니메이션과 결합한 신개념 연극 ‘골렘’ #기간: 11월 16~19일 #장소: LG아트센터 #문의: 02-2005-0114

이 무대를 디자인한 극단 ‘1927’의 최신작 ‘골렘’(11월 16~19일 LG아트센터)이 온다. 2014년 런던 영 빅에서 8주간 전석 매진을 기록하며 “연극의 미래”(이브닝 스탠다드), “21세기 프랑켄슈타인”(더 타임스) 등의 극찬을 받은 이래 파리 테아트르 드 라 빌·베이징 국가대극원·뉴욕 링컨센터 페스티벌 등 세계 정상의 극장과 페스티벌만 골라 돌고 있는 가장 ‘핫’한 연극이다.

2006년 애니메이터 폴 배릿과 작가 겸 연출가 수잔 안드레이드, 배우 애즈머 애플턴,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 릴리안 헨리 등이 모여 창단한 ‘1927’은 독특한 인적 구성만큼이나 독보적인 스타일을 선보이는 극단이다. 총천연색 애니메이션과 배우들의 라이브 퍼포먼스가 완벽한 합을 이루는 새로운 형식과 냉소적인 유머 속 현대사회를 향한 묵직한 경고를 던지는 내용이 바로 그것. 즐거운 동화처럼 친근하게 다가와 심오한 깨달음을 주는 방식으로 전 세대 관객에게 고루 어필 중이다.

극단 ‘1927’의 작가 겸 연출 수잔 안드레이드(위)와 애니메이터 폴 배릿.

극단 ‘1927’의 작가 겸 연출 수잔 안드레이드(위)와 애니메이터 폴 배릿.

e메일로 만난 폴과 수잔은 “우리 작품은 비주얼이 강하고 독특한 꿈처럼 보이기에 디지털 기기 중독에 빠진 아이들까지 유혹한다고 생각한다”면서 “반쯤은 만화고 반쯤은 공연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언가를 얻어 간다. 8살 아이와 80살 노인이 함께 즐거워하지만 그들이 이해하는 것은 완전히 다를 것”이라고 했다. “‘1927’이란 극단명은 최초의 유성 영화 ‘재즈 싱어’가 나온 해에서 따왔죠. 당시 유성 영화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예술 형식이었거든요. 우리 작업도 그런 것이죠.”(수잔)

‘골렘’은 데뷔작 ‘비트윈’(2007)과 ‘동물과 아이들이 거리를 점거하다’(2010) 이후 ‘1927’의 고작 세 번째 작품이지만 그간의 스타일을 집대성해 이들을 “런던에서 가장 섹시한 극단”(이브닝 스탠다드)에 등극시켰다. 소심한 주인공 로버트가 말하는 점토인형 골렘을 갖게 되면서 점차 골렘의 지배를 받게 되는 이야기다. 서양에서 전해져 오는 영혼 없이 움직이는 점토 인형 ‘골렘’ 신화를 가지고 스마트폰과 디지털 기기에 길들여진 현대 사회를 날카롭게 풍자하고 있는 것이다.

“골렘 이야기는 살아있는 배우와 애니메이션을 통해 공연을 만드는 우리 작업과 매우 잘 맞는다고 생각했어요. 사람이 애니메이션이 되고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사람이 되는 작품을 만들어보고 싶었거든요.”(수잔) “우리 작품에서 배우는 늘 인형처럼 보이거나 그 세계 속에 어우러진 애니메이션처럼 보이죠. 하지만 애니메이션은 모두 수작업이기 때문에 그 조잡한 형태에서 인간성을 느낄 수 있을 거예요.”(폴)

폴의 화려한 애니메이션 기술과 배우들의 정교한 연기는 정확히 동화돼 마치 그 자체로 하나인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관객이 다섯 명의 배우들과 애니메이션 배경 사이의 구분을 점차 잊어버리게 되는 과정은 인간과 기계가 서서히 하나로 수렴되고 있는 현대상에 다름 아니다. 이런 형식과 내용의 일치를 위해서는 일반적인 공연과 차원이 다른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클레이 애니메이션의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구현하는데 2~3년이 걸렸고, 애니메이션과 배우의 움직임을 빈틈없이 맞추는 리허설 과정도 험난했다. 심지어 끊임없이 들리는 라이브음악까지 배우들이 직접 연주해야 하는 ‘노동집약적’인 무대다.

“리허설만 9~10개월이 걸렸어요. 음악과 영상의 타이밍을 맞추는 것도 매우 복잡한 과정이죠. 오랜 시간이 걸리는 건 맞지만 매우 협동적인 과정이고, 많은 것을 경험하게 되는 재미있는 작업입니다. 수많은 리허설 끝에 관객이 오면 비로소 마법이 시작되는 거죠.”(수잔)

이들은 ‘골렘’이 기술지배를 넘어 끝없이 팽창하는 소비주의와 신자유주의에 대한 경고라고도 했다. “지난 수십년간 대세였던 신자유주의가 이제 끝날 때가 되었다는 바램”(폴)  이 늘 자신들이 품고 있는 테마라는 것이다.

“‘골렘’은 스마트폰에 대한 이야기지만 사람이 기계처럼 행동하고 자동화되는 미래 디스토피아에 대한 상상이자 경고이기도 합니다. 무비판적으로 새로운 기술을 사용하고, 거대 기술 기업이 우리를 제조하도록 내버려 둘 때 말이죠. 우리는 이 세계가 가고 있는 방향과 신자유주의의 멈출 수 없는 진화에 대해서 늘 토론해왔어요. 예술가로서 우리는 세계를 해부하고 그것에 답해야 하니까요.”(수잔)

“우리가 신자유주의라는 세계에 살고 있으니 그에 관한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죠. 지금은 온통 신자유주의가 만연해 있지만 서서히 대안들이 나타나고 있어요. 흥미롭게도 신자유주의 기업들이 사용하는 바로 그 기술들로 현재의 불평등하고 비민주주의적인 시스템이 전복될 것 같습니다. 그게 우리가 하려는 이야기기도 하죠.”(폴) ●

글 유주현 객원기자 yjjoo@joongang.co.kr,  사진 LG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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