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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집권 16년, 디지털 콘서트홀 남기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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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7호 06면

ⓒJohann Sebastian Haen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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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ika Rittersha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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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일 사이먼 래틀(62)의 지휘로 베를린 필하모닉의 여섯 번째 내한공연이 예술의전당에서 열린다. 1984년 카라얀과 처음 내한한 베를린 필은 이후의 모든 방한(2005·08·11·13·17)을 금세기 첫 예술감독과 함께했다. 래틀은 2018년 여름 베를린 필에서 떠나 런던 심포니 음악감독에 전념한다.

내년 베를린 필 떠나는 사이먼 래틀

2002년 가을 베를린 필에 부임했을 때, 래틀이 15년 넘게 장기집권하리라 확신한 전문가는 드물었다. 그가 조직에 16년간 머물며 남긴 최대 업적을 꼽는다면 베를린 필 공연의 생중계 플랫폼 ‘디지털 콘서트홀’의 구축과 안정화다.

양질의 콘텐트를 값싸게 보급한다는 감독의 철학이 없었으면 지금의 디지털 콘서트홀은 불가능했다. 서비스가 일정 수준에 도달하기까지 필요한 재원을 악단은 독일 금융권의 펀딩과 세계 각지의 투어로 충당했다. 래틀의 재임 기간 동안 일본에 일곱 차례, 한국에 다섯 차례 찾게 된 내부 요인이다.

돌이켜보면 베를린 필은 도시가 처한 시대상과 음악 감독의 성향이 중첩됐다. 2차 대전 기간 나치의 공격성은 푸르트뱅글러의 진취성과 맞물렸고, 전후 고도 성장기의 독일 발전은 카라얀의 첨단 감각과 일체감을 이뤘다. 통독 후 독일 사회의 좌충우돌만큼이나 아바도는 단원들과 불화했다. 오케스트라가 사회의 반영이라는 고전적 맥락을 여러 번 증명한 셈이다.

래틀이 베를린 필에서 걸어온 자취는 2010년대 유로존에서 유일한 경제 대국의 입지를 확고히 한 독일과 국제도시 베를린의 위상과 궤를 같이한다. 이제 베를린 필 단원들은 자신들의 수장을 뽑을 때 조직의 자존 범위를 벗어나 클래식의 미래를 먼저 내다본다는 점에서, 의외의 선택이 계속 될 수 있다. 래틀도 현실성은 낮았지만 카라얀 후계자 그룹의 일원이었다.

러시아 출신이지만 독일 국적인 키릴 페트렌코(45)가 래틀에 이어 디지털과 교육 프로그램 강화에 신경을 쓸지는 미지수다. 베를린 필 단원들이 래틀의 성향을 존중하되 그 외 지휘자들과의 만남에서 추구하려 한 ‘오스트로-저먼(Austro-German)’의 가치를 페트렌코와 성공적으로 일궈나갈지는 탐색의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몇 년 전 베를린 필 객원 지휘자로 리허설을 했다가 정작 본 공연에는 무단하차한 바 있는 페트렌코다.

악단과 감독이 작별하는 투어는 보통 좋은 추억을 회고하는 작품들로 채워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베를린 필은 다르다. 현대 음악에 대한 애정을 공공연히 드러내온 래틀은 20일 연주에는 진은숙이 올해 11월 내놓은 따끈따끈한 신곡 ‘코로스 코르돈’을 연주한다. “현시대의 청중은 진은숙 곡을 들어야한다”는 강력한 권유다. 래틀은 자신의 재임 기간 진은숙의 주요 작품을 정기 연주회에 배치하면서 남다른 연대감과 우정을 쌓았다. 이날의 ‘정찬’은 스트라빈스키의 ‘페트루슈카’와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3번이다.

19일에는 당초 협연자로 내정된 랑랑 대신 조성진이 대체 공연자로 나서 라벨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한다. 이미 베를린 현지에서 합을 맞췄고 조성진에 대한 국내 팬의 관심도 뜨겁다. 다만 베를린 필은 어떤 투어에서도 협연자가 메인 프로그램 위로 부각되는 걸 희망하지 않는다. 2013년 프로코피예프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한 다이신 가시모토의 조용한 처신이 대표적이다. 슈트라우스의 ‘돈 후안’과 2008년 내한 곡목인 브람스 교향곡 4번이 연주된다.

글 한정호 음악 칼럼니스트 imbreeze@naver.com, 사진 베를린 필·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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