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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독주 … ‘紅二代’ 태자당·상하이방, 5년 후 사라질 것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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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7호 03면

[중앙SUNDAY가 만난 사람] 중국 정치평론가 장리판, 19차 당 대회 평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명·청 왕조 700년의 황궁이던 자금성에서 접대한 ‘황제 의전’이 큰 화제가 됐다. 과연 이날의 황제는 누구였을까. 중국 권력자가 자금성에서 국빈을 맞은 건 마지막 황제 푸이(溥儀)가 황위를 내놓은 이후 초유의 일이다. 시 주석이 19차 공산당 당 대회를 통해 1인 권력자로서의 위상과 기반을 굳혔기에 가능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격대지정 벗어나 후계 인선 없어 #권력 이양 않겠다는 뜻 드러내 #상하이방·공청단 출신 상무위원 #측근 경력 모자라 계파 안배한 것 #중국 지혜로 인류 문제 풀겠다 생각 #마오 공산주의 혁명 수출과 비슷 #‘중국위협론’ 용어 더 자주 나올 것

중앙SUNDAY는 중국의 정치평론가 겸 역사학자 장리판(章立凡)을 다시 인터뷰해 시진핑 ‘1인 천하’가 만들어진 배경과 전망을 들었다. 언론 자유가 통제된 중국에선 보기 드물게 당·정부의 공식 입장과 다른 시각과 입장에서 발언하고 있는 그는 당 대회 개막 전에도 중앙SUNDAY와의 인터뷰(9월 17일자 3면)를 통해 관전 포인트를 해설해 준 바 있다.


중국 공산당 총서기에 재선출된 시진핑 국가주석(가운데)의 집권 2기를 이끌 정치국 상무위원 7명. [신화=연합뉴스]

중국 공산당 총서기에 재선출된 시진핑 국가주석(가운데)의 집권 2기를 이끌 정치국 상무위원 7명. [신화=연합뉴스]

지난번 인터뷰에서 시 주석은 2기 연임을 하고도 권력을 놓지 않으려는 의지가 강하다고 얘기했다. 실제로 시 주석은 이번 당 대회에서 후계자 내정을 하지 않았다. 5년 후에도 물러나지 않겠다는 뜻인가.
“일정한 시간을 두고 후계자를 키우는 게 공산당의 전통이다. 마오쩌둥(毛澤東)조차 9차 당 대회 때 아예 당장(黨章)에다 린뱌오(林彪)를 후계자라고 명기하기까지 했다. 시 주석 자신도 상무위원이 된 뒤 국가부주석, 당교 교장 등을 겸임하다가 마지막에 모든 권력을 물려받았다. 그런데 이번에 그런 자리를 위한 인선이 없었다. 5년 후에도 권력을 물려줄 뜻이 없음이 분명하게 드러났다고 할 수 있다.”
이번에 상무위원이 못 된 후춘화(胡春華) 전 광둥(廣東)서기는 5년 후에도 어려울까.
“쑨정차이(孫政才)가 실각하는 순간 후춘화도 상무위원이 되긴 힘들다고 봤다. 시 주석이 전임자 후진타오(胡錦濤)가 정해 놓은 격대지정(隔代指定·차차기 지도자 내정)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후의 미래도 함께 날아간 것이다. 후춘화가 스스로 상무위원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했다는 말도 있는데, 그랬다면 무척 현명한 선택이다.”
당장에 ‘시진핑’ 이름 석 자가 명기됐다. 그래서 마오쩌둥의 반열에 올랐다는 평가도 나왔다. 그런데 ‘마오쩌둥 사상’이나 ‘덩샤오핑(鄧小平) 이론’과 달리 ‘시진핑 사상’에는 수식어가 길게 붙어 있다.
“덩샤오핑 이론도 처음엔 그런 명칭이 아니라 ‘덩샤오핑의 중국 특색 사회주의 건설 이론’이란 이름으로 불렸다. 나중에 그의 사후 정식으로 당장에 기입할 때 비로소 간략히 줄여 ‘덩샤오핑 이론’이 됐다. 이번에 당장에 명기된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 이론’은 모두 16자다. 명칭이 너무 길다는 건 반드시 줄이게 돼 있다는 의미다. 실제로 선전물이나 회의 등에선 약칭을 쓸 수밖에 없다. 결국엔 ‘시진핑 사상’으로 공식화할 것이다. 그런 과정을 미리 의도한 것인지 모른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16자 가운데 이름 석 자 말고는 모두 역대 지도자의 작품이다. 중국인이라면 다 아는 ‘신시대로 나아가자(走進新時代)’는 노래가 있는데 이건 장쩌민(江澤民) 시대에 만든 것이다. 또 ‘중국 특색 사회주의’는 알다시피 덩샤오핑의 창안이다. 마지막에 붙는 ‘사상’은 원래 마오쩌둥의 이름에 붙이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16자 가운데 시진핑 고유의 것은 이름 석 자뿐이다.”

이번 당 대회에서 시 주석은 “중국은 이미 시대가 바뀌었고 새로운 모순이 나타났다”며 ‘발전의 불균형과 불충분’을 신시대의 주요 모순으로 규정했다. 치밀한 이론화 작업을 한 것으로 보이는데.
“8차 당 대회의 당장은 선진공업국과 낙후한 농업국(중국) 사이의 모순, 그리고 인민의 경제·문화적 요구와 낙후된 생산력 사이의 차이를 주요 모순으로 규정했다. 그 뒤 마오쩌둥은 이를 뒤엎고 계급투쟁이 주요 모순이라고 말했다. 마오가 숨진 뒤 덩은 계급투쟁에서 경제 우선으로 되돌렸고 당이 규정한 주요 모순은 8차 당 대회 때와 대동소이했다. 내가 보기에 이번에도 혁신적인 건 없다. ‘경제·문화적 요구’가 ‘아름답고 좋은(美好) 생활에 대한 요구’란 시적 표현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하지만 중요한 게 빠져 있다. 하나는 경제의 고속발전과 현 정치체제 간의 부조화다. 둘째, 분배의 불공평 문제다. 이 두 모순을 ‘불균형·불충분 발전’이란 말로 가릴 순 없다.”
불균형 발전을 모순으로 규정한 건 바로 불공정 분배를 지적한 것 아닌가.
“아니다. 우리 모두 분배의 문제를 논할 때 ‘불공평’하다고 말하지 ‘불균형’하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불균형은 주로 지역 간 발전 격차의 문제를 말하는 것이다. 동남 연해 지역과 내륙 간 불균형의 문제가 확실히 있고 빈곤 지역은 발전이 충분치 못하다. 불균형이 가리키는 건 발전의 속도지 분배가 아니다.”
이번 당 대회 이후 시진핑 사상의 학습이 강조되고 있다. 새 지도부 선출 다음 날 인민일보 1면에 실린 시 주석 사진이 5년 전보다 7배로 커졌다. 마오쩌둥 시대의 개인숭배가 되살아나는 것 아닌지 하는 우려가 있는데 중국 국민은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나.
“마오쩌둥 시대를 경험한 사람들은 많은 것이 예전과 같거나 비슷하다고 느낀다. 그런데 그 시대를 경험하지 못한 젊은 세대는 오히려 신선감을 느끼고 격동적으로 될 수 있다. 인터넷 시대가 도래한 이래 생활은 편리해졌지만 사유가 파편화되고 감정에 빠지기 쉬워졌다. 인터넷 영향으로 포퓰리즘이 유행하고 개인숭배를 조장하기 쉬워졌다. 중국이 그런 상황 속에 있는 것 같다.”
시 주석은 문화혁명 시기 자신을 포함해 모든 가족이 피해를 봤다. 상식적으로 보면 마오를 싫어해야 하는데, 그의 행동 모델은 아주 많은 부분이 마오쩌둥식이다.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예전에 이에 관한 글을 쓴 적이 있는데 ‘홍이대(紅二代)’, 즉 혁명원로의 자녀들은 부모들이 마오에 의해 엄청난 고통을 겪고 죽다 살아나다시피 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오를 대부(代父)로 떠받드는 경향이 강하다. 그들에게 부모는 부모고 대부는 대부다. 마오의 지위는 영원히 흔들림이 없다. 마오의 권위에 의문을 품는 것은 공산당 권력의 정당성을 의심하는 것과 같다.”
시 주석은 집권 과정에서 혁명원로 2세, 즉 태자당(太子黨)의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이번에 새로 재편된 지도부 명단에서 태자당이라 부를 만한 사람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이번에 정치국원이 된 장유샤(張又俠) 중앙군사위 부주석은 태자당이라 할 수 있다. 역시 정치국원이 된 류허(劉鶴) 중앙재경영도소조 판공실 주임은 부친이 서남국(西南局) 서기를 지낸 고위 간부였는데 문혁 도중 자살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홍이대는 이미 나이가 많이 들어 물러났다. 혁명원로 3세들은 정치보다 사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훨씬 많다. 자연 소멸의 길에 있다. 신임 상무위원 중에는 한정(韓正)·왕양(汪洋)처럼 상하이방·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 출신도 일부 있다. 하지만 이는 시 주석 측근 가운데 상무위원급 경력을 쌓은 사람의 숫자가 부족해 계파 간 안배를 한 결과일 뿐이다. 정치국 구성을 보면 시진핑 인사의 특징은 더욱 분명하다. 측근이나 오래전부터 잘 아는 사람만 중용한다는 점이다. 상하이방은 이번 당 대회에서 살아남은 사람이 거의 없다. 5년 후 20차 당 대회를 거치고 나면 상하이방과 태자당은 사라질 것이다. 남는 것은 공청단뿐인데 결국은 지금의 상하이방과 비슷한 수준이 될 것이다.”
시 주석은 왜 공청단을 싫어하나.
“중국 공산당을 하나의 기업에 비유해 보자. 태자당은 창업주로부터 지분을 물려받은 대주주들이다. 그들이 볼 때 나머지 세력은 전문경영인이나 관리자에 불과하다. 처음부터 몸값이 다르다는 얘기다. 그들은 우리 손으로 공산당을 관리해야지 남의 손에 맡기면 안 된다는 의식이 강하다.”
시 주석이 2050년 세계 최강국이 되겠다는 목표를 내세웠다. 그 과정에 중국이 다른 나라와의 관계 때문에 자신의 이익을 포기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중국과 국제사회 사이의 긴장이 높아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다.
“중국위협론이란 용어가 앞으로 더 자주 오르내리게 될 것이다. 내가 보기에 시 주석은 중국식 방안(方案)과 중국의 지혜로 전 인류의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인류 운명공동체’를 만들겠다고도 한다. 이는 과거 공산주의 운동으로 전 인류를 해방시키겠다는 것과 비슷하다. 1960년대 중국은 마오쩌둥 주의를 유행시키고 혁명을 수출하려 했다. 하지만 중국의 경제력이 뒷받침되지 않아 결과는 제한적이었다. 하지만 지금 중국은 다르다. 중국 지도자는 미국을 따라잡고 중국 모델을 퍼뜨려 세계의 지도자가 되려는 충동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서방이 말하는 세계화와 중국이 이해하는 세계화는 다르다. 중국식 모델이란 뭔가. 하나는 일당체제다. 당이 모든 자원을 장악하고 사회 안정과 이데올로기도 장악한다. 이 노선은 옛 소련과 비슷하다. 이 때문에 서양 언론에서 ‘중국이 전제주의 모델을 수출하려는 것을 경계하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한 것 아닌가.”


중국의 정치평론가 겸 역사학자 장리판

중국의 정치평론가 겸 역사학자 장리판

장리판(章立凡) 1950년생. 중국 근·현대사를 전공한 역사학자로 사회과학원 연구원으로도 재직했다. 하지만 본업 이외에 정치평론가로 해외 언론에 자주 등장한다. 공산당에 비판적인 발언도 자주 한다. 30년대 ‘칠군자’ 중 한 사람으로 불린 항일·애국인사이자 비(非)공산당원으로 신중국 건국에 기여하고 식량부 부장(장관) 등을 지낸 장나이치(章乃器·1897~1977)의 아들이다. 부친 장나이치는 마오쩌둥 통치 시절인 57년 반(反)우파투쟁 때 우파로 몰려 실각했다.

예영준 베이징 특파원 yyju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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