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힘센 기관은 성희롱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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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한나라당 김기현 의원은 20일 국회 여성가족위원회에서 업무보고차 나온 장하진 여성가족부 장관을 이렇게 추궁했다.

진상은 이렇다.

남녀 차별 금지 및 구제에 관한 법률은 모든 공공기관이 연 1회 이상 의무적으로 성희롱 예방 교육을 실시하도록 하고 있다.

직장 내에서 남성들이 무심코 뱉은 말조차 여성들에게는 성적 수치심을 주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청와대와 국가인권위원회.감사원 등 31개 중앙 부처 및 위원회는 2003~2004년도 법에 정해진 성희롱 예방교육을 하지 않았다. 특히 청와대는 성희롱 고충 전담 창구를 설치하지 않았고 성희롱 예방 지침도 정하지 않았다.

이 같은 사실을 확인한 여성가족부는 법을 위반한 정부 부처들을 상대로 특별 교육을 실시하도록 촉구했다.

결과는?

청와대.헌법재판소.국가인권위원회.행정자치부.정보통신부.국가보훈처.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등 13개 부처 및 위원회는 여성가족부의 권고를 아예 무시했다. 국가인원위원회가 성희롱 사건 조사를 전담하는 기관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어이가 없다.

여기까지만 보면 "그래도 여성가족부만큼은 큰 기관들을 상대로 제 할 일을 했구나" 하는 대견한 생각이 든다.

하지만 한나라당 김 의원 측은 "여성가족부가 자료를 주지 않으려고 버텨 적잖이 고생했다"고 말했다.

김 의원이 자료를 요청한 것은 15일이었다. 하지만 여성가족부가 자료를 보내 온 것은 업무 보고가 시작되기 몇 시간 전인 19일 오후 11시30분이었다. "이 자료가 공개되면 곤란하다"는 하소연도 덧붙였다고 한다.

국회의 지적을 받은 장 장관은 "앞으로 참고해서 열심히 잘하겠다"고 답변했다. 하지만 청와대와 국가위원회 같은 힘센 기관들에 대해 여성가족부가 뭘 할수 있을지 의문이다.

노무현 정부는 서민층과 여성, 그리고 사회적 약자를 위한다고 끊임없이 주장해 왔다. 현실 속에선 "정말 그런가?" 하는 의문도 많이 든다. 남녀고용평등법은 민간기업도 성희롱 예방 교육을 의무적으로 하도록 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의 이중적 행태가 민간기업에도 번져나갈까 걱정이다.

문경란 여성전문기자

*** 바로잡습니다

2월 21일자 4면 '힘센 기관은 성희롱 없다?'는 제목의 취재일기에 '청와대.감사원.국가인권위원회 등 31개 중앙부처 및 위원회는 2003~2004년도 법에 정해진 성희롱 예방교육을 하지 않았다'는 대목이 있습니다. 이 중 청와대는 성희롱 예방교육을 한 것으로 밝혀져 바로잡습니다. 또 '청와대가 성희롱 고충 전담 창구를 설치하지 않았고, 성희롱 예방 지침도 정하지 않았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2003년까지는 그랬습니다. 하지만 청와대는 2004년 7월 고충 전담 창구를 설치했으며 남녀 상담원도 한 명씩 배치했다고 알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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