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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당했다” → “보물 파트너” 트럼프를 바꾼 아베 스킨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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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왼쪽에서 셋째)과 부인 멜라니아 여사(넷째)가 6일 일왕의 거처를 방문해 각각 아키히토 일왕(왼쪽), 미치코 왕비(오른쪽)와 환담을 나누고 있다. 이날 일왕은 ’양국 간 우호관계와 미국의 지원으로 오늘날의 일본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도쿄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왼쪽에서 셋째)과 부인 멜라니아 여사(넷째)가 6일 일왕의 거처를 방문해 각각 아키히토 일왕(왼쪽), 미치코 왕비(오른쪽)와 환담을 나누고 있다. 이날 일왕은 ’양국 간 우호관계와 미국의 지원으로 오늘날의 일본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도쿄 AP=연합뉴스]

“일본은 보물 같은 중요한 파트너이고 미국에 없어서는 안 될 동맹국이다.”

일본은 어떻게 트럼프 사로잡았나 #미 대선 전에 물밑 접촉, 회동 추진 #트럼프 당선되자 재빨리 미국 찾아 #골프채 선물 등 세심한 배려 먹혀 #비판 언론 기피, 불고기 선호 공통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5일 방일 직후 첫 일정인 요코타 미군기지 격납고 연설에서 한 말이다. 2000명이 넘는 주일미군 앞에서 미국 대통령이 일본을 격찬했다.

하지만 과거의 트럼프는 달랐다. 무소속 대선 출마를 검토하던 1987년 트럼프는 뉴욕타임스·워싱턴포스트에 다음과 같은 광고를 실었다. “미국은 수십 년간 (부국인) 일본에 이용당하고 있다… 일본에 (주일미군 주둔 경비를) 지불하도록 해 미국이 지고 있는 거액의 적자를 끝내야 한다.”

물론 현재의 트럼프도 30년 전 트럼프처럼 일본과의 무역 불균형 등에 불만을 드러내고 있긴 하다. 트럼프는 6일 아침 주일 미국대사관에서 열린 양국 기업 경영자 대상 간담회에서도 “미국은 오랜 기간에 걸쳐 일본에 의한 무역 적자로 고생해 왔다”고 말했다. 그러나 미·일 동맹의 근간을 흔들 정도는 아니었다는 평가가 나왔다.

일본 언론들은 달라진 ‘트럼프의 일본관’을 부각하며 아베의 ‘스킨십 외교’를 그 원동력으로 꼽고 있다.

아베 정권에 비판적 논조를 견지해 온 아사히신문도 6일자에서 “지난해 대선 때만 해도 주일미군 철수를 시사하며 분담금 압박 태도를 보이던 트럼프가 일본에 도착하자마자 미·일 동맹의 중요성을 몇 차례나 강조하는 등 태도가 크게 바뀌었다”며 “아베 총리와의 친밀함이 트럼프의 대일관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일본을 바라보는 트럼프 시선의 변곡점이 된 것은 아베의 발 빠른 방문이었다. 지난해 11월 트럼프가 당선되자 아베는 즉시 미국으로 날아가 뉴욕 트럼프타워에서 그를 만났다. 아베는 당선자 신분인 트럼프를 만나러 간 첫 외국 정상이었다. 이를 성사시킨 건 일본 외교의 치밀함이었다. 대선 기간 보수파 원로인 가메이 시즈카(龜井靜香·81) 전 금융담당상이 트럼프 캠프를 들락날락거리며 만든 파이프 덕분이었다. 아베는 면담 10분 전 트럼프타워 꼭대기 층에 도착했고 회담을 마친 뒤에는 골프광인 트럼프에게 시가 50만 엔(약 488만원)의 ‘혼마’ 최고급 골프 드라이버를 선물했다. 트럼프는 딸 이방카와 사위 재러드 쿠슈너를 소개하고, 마이크 펜스 부통령 당선자를 회담에 합류시켰다. 지난 2월 미국에서 열린 정상회담 때 두 정상은 트럼프의 별장인 플로리다주 마라라고 리조트에서 무려 27홀에 걸친 골프 라운드를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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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 사이엔 미국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이탈 등으로 서먹했던 시절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한반도 위기 국면에서 아베는 수시로 트럼프와 전화하며 스킨십을 멈추지 않았다. 정상회담이 5차례, 공개된 전화 회담만 16차례에 이른다.

이 같은 스킨십은 트럼프가 아시아 순방의 첫 방문지로 일본을 택하는 결정으로 이어졌고, 아베 총리는 트럼프에게 ‘오모테나시(혼이 담긴 환대)’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 세계랭킹 4위 프로골퍼 마쓰야마 히데키(松山英樹)를 라운드에 참여시키고, 트럼프가 좋아하는 황금색 자수(‘도널드와 신조, 동맹을 더 위대하게’)가 새겨진 모자를 선물했다. 6일 만찬에서도 아베 총리는 트럼프에게 황금색 천에 꽃과 풀 장식을 수놓은 고급 테이블보를 선물했다. 멜라니아 여사에겐 도야마현 전통 기술로 만든 주석 목걸이를 선물했다. 만찬 메뉴엔 일본 최고의 소고기로 정평 난 사가현의 ‘사가규’로 만든 스테이크가 올랐다. 모두 일본식 현미경 외교의 결과다.

두 사람이 공통점이 많아 죽이 잘 맞는다는 분석도 있다. 아사히에 따르면 둘 다 골프와 불고기(스테이크와 야키니쿠)를 좋아하고, 자신에게 비판적인 언론을 싫어하는 경향도 강하다. 공교롭게도 야당에 마땅한 대안세력이 없다는 점과 현재 양국의 주가가 최고점을 갈아 치우는 등 호경기를 맞고 있다는 점도 비슷하다. 게다가 스캔들에 연루돼 있다는 점도 같다. 트럼프는 대선 과정에서의 ‘러시아 내통 의혹’에 발목이 잡혀 있고, 아베 역시 잇따른 사학 스캔들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처지다.

김상진 기자 kine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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