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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화 6만장으로 완성한 고흐 애니메이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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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고흐의 그림을 바탕으로 제작된 유화 애니메이션 '러빙 빈센트' [사진 퍼스트런]

고흐의 그림을 바탕으로 제작된 유화 애니메이션 '러빙 빈센트' [사진 퍼스트런]

화가 107명이 빈센트 반 고흐의 유화를 재현해 6만2450점의 그림을 그렸다. 그림을 다 합하면 런던 전체를 덮을만한 면적이 된다. 9일 개봉하는 ‘러빙 빈센트’는 이 그림들을 이용한 영화다. 영화는 유화 속에서 실제 배우들의 연기가 연결되며 마치 그림 속 인물이 살아 움직이는 듯하게 완성됐다. 영화에 사용된 모든 프레임은 화가들이 고흐 고유의 필법에 가깝게 직접 그린 것이다. 전 세계에서 모인 화가들은 2년 동안 한 곳에서 고흐의 화풍을 되살렸다.

9일 개봉 ‘러빙 빈센트’ #살아 움직이는 고흐 그림 생생 #화가 107명, 2년간 130점 그림 재현 #불가능 여겨진 유화 애니메이션 #고흐의 삶과 죽음, 작품세계 담아

95분짜리 영화의 기획에서 완성까지 10년이 걸렸다. “유화가 살아 움직이는 영화는 모두가 불가능할 것이라고 했다”는 멘트로 시작하는 영화의 예고편은 전 세계에서 1억3000만 조회수를 기록하며 화제다.

대표작 ‘별이 빛나는 밤’. [사진 퍼스트런]

대표작 ‘별이 빛나는 밤’. [사진 퍼스트런]

‘러빙 빈센트’의 가장 독특한 점은 유화의 아름다움이다. 고흐의 작품이 유화 그대로 애니메이션화된 것은 이 영화가 처음이다. 그만큼 품이 많이 들었다. 오프닝 장면에는 고흐 작품 세 점이 나온다. ‘별이 빛나는 밤’ ‘즈아브 병사의 반신상’ ‘아를의 노란 집’ 으로 유명한 작품이다. 이 세 점을 표현하기 위해 제작된 유화만 729장.

‘꼬마 우편 배달부’(2011) 등 페인팅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던 감독 도로타 코비엘라는 ‘별이 빛나는 밤’ 속 구름을 스크린에 재현하기 위해 구름이 나오는 고흐의 모든 그림을 연구했다. 오프닝 장면에 화가 3명이 동원돼 4주 동안 그림을 그리고 3주 동안 컴퓨터 작업을 했다. 영국·폴란드 스튜디오에서 각각 촬영을 하고 컴퓨터 작업을 해 오프닝을 제작하는 데 1년이 걸렸다.

고흐의 화풍을 되살린 화가의 작업장면. [사진 퍼스트런]

고흐의 화풍을 되살린 화가의 작업장면. [사진 퍼스트런]

영화 전체에 나오는 고흐의 작품 130점은 이처럼 세심하게 작업된 것들이다. “사람들이 열광하는 반 고흐를 제대로 보여주자”(제작자 휴 웰치맨)는 영화의 기획 의도를 위한 작업이었다. 그 결과 고흐의 실제 그림 속 인물들이 살아 움직인다.

스크린에는 고흐의 삶과 죽음이 함께 흐른다. 등장 인물들이 기억하는 고흐의 모습을 통해서다. 고흐는 1890년 7월 29일 파리 근교의 한 여관에서 총상으로 세상을 떠났다. 작품 ‘아르망 룰랑의 초상’ 속 룰랑이 죽음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여러 인물을 만난다. 역시 고흐의 작품 속에 등장했던 인물들이다. 고흐의 시신을 발견한 여관 주인의 딸 아들린 라부, ‘피아노에 앉은 가셰의 딸’ 속에 나오는 마르그리트, 고흐가 그림 그리는 모습을 지켜봤던 뱃사공까지 많은 인물이 나와 고흐의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를 통해 고흐라는 인간의 다양한 면이 밝혀진다. 광기, 예술혼과 열정으로 대표되는 화가 반 고흐는 생전에 이름 모를 여관에서 죽어간 가난한 화가에 불과했다. 어떤 사람은 그를 미치광이로 기억했고, 또 다른 이는 그를 친절한 사람으로 추억했다.

무엇보다 미스터리한 것은 그의 죽음이다. 적어도 파리 미술계에서는 “떠오르는 스타”(클로드 모네)로 불릴 만큼 명성을 얻고 있었다. 영화는 ‘막 예술적 명성을 얻은 예술가가 왜 스스로를 쏘았을까’라는 질문으로 이야기를 끌고 나간다. 사고 직후 고흐는 “내가 내 자신을 쐈으니 그 누구도 찾을 필요가 없소”라고 말했다. 영화는 이 말에 누군가를 감싸려는 의도가 있다고 판단하고 주변 상황을 추적해 나간다. 2011년 출간된 고흐의 전기 『반 고흐: 그 인생』(스티븐 나이페, 그레고리 화이트 스미스)에서도 제기됐던 의문이다.

미학자 진중권은 ‘러빙 빈센트’에 대해 “파리, 아를, 오베르 쉬르 아즈 풍경이 100년 넘는 동결의 끝에 그 당시 거기에 살았던 사람들과 함께 현대를 사는 우리 눈앞에 다시 생생히 살아난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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