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트럼프 방한 앞두고 줄 잇는 반미 선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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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오는 7~8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한에 찬물을 끼얹을 만한 움직임이 곳곳에서 감지된다. 6·25 이래 전쟁 가능성이 가장 커진 지금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은 한·미 동맹의 견고함을 재확인하고 북핵 위기의 평화적 해결을 추진할 디딤돌로 의미가 깊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에게 ‘북한을 위협한 죄’를 물어 따끔한 맛을 보여주겠다는 황당한 움직임이 반미 진영에서 마구잡이로 분출하고 있다. 자칫 트럼프 대통령이 방한 도중 봉변을 당할까 우려된다.

220개 단체, 쫓아다니며 시위 예고 #연설 예정된 국회서도 불상사 우려 #정부, 자제 촉구 넘어 적극 설득하길

우선 7~8일 경찰에 신고된 서울 도심 반미 집회·시위만 50건이 넘는다. 민주노총 주도로 220여 개 단체가 모인 ‘노(No) 트럼프 공동행동’이 핵심이다. 7일 청와대, 8일 국회로 몰려가 트럼프 대통령을 24시간 따라다니며 시위를 벌이겠다고 벼르고 있다. 구호를 ‘촛불 민심’으로 정해 반미가 국민의 여론인 양 호도하는 꼼수를 부린다는 지적까지 받는다. 통합진보당 출신 의원 2명을 보유한 민중당의 참여도 우려를 더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8일 국회 연설에서도 무슨 일이 터질까 걱정스럽다. 이미 민중당은 사드에 반대해 온 소성리 주민들과 함께 트럼프 방한 반대 기자회견을 열었고, 국회 인근에 방한 반대 플래카드를 걸었다. 이 당 소속 의원 2명이 트럼프 연설 도중 반미 플래카드를 펼치거나 야유를 외칠 가능성도 있다. 정세균 국회의장과 여야 지도부는 24년 만에 국회를 찾은 미 대통령이 봉변을 당하는 일이 없도록 이런저런 돌출행동 가능성을 차단하는 데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

상황이 이 지경인데 정부는 반미 단체들의 움직임을 막는 데 적극성을 보이지 않는다. 트럼프 방한 도중 과격 시위가 이어질 우려를 언론이 제기한 지 한참 지났음에도 별 반응을 보이지 않다가 뒤늦게 광화문과 청와대 인근에서 시위 금지 방침을 밝힌 정도다. 반미 단체들이 문 대통령 지지층임을 감안할 때 트럼프 방한 도중 시위가 과격해져도 경찰이 소극적으로 대처할까 걱정이다. 그런 점에서 청와대가 5일 반미 단체와 민중당 등을 향해 시위 자제를 촉구하는 메시지를 낸 건 잘한 일이나 더욱 적극적인 설득이 절실하다.

그렇지 않아도 트럼프는 한국 외교장관이 그의 방한을 앞두고 사드 추가 배치와 미 미사일방어(MD) 편입, 한·미·일 동맹에 대해 ‘3불’ 방침을 천명한 것에 언짢은 상태다. 이런 마당에 서울에서 과격 반미 시위를 목격하면 한·미 동맹에 근본적 회의를 품게 될까 걱정된다. 그럴수록 정부와 반미 진영에만 손해다. 미국이 한국과 동맹을 청산하면 북한을 얼마든지 마음대로 공격할 여건이 조성되기 때문이다.

일본은 트럼프를 성대하게 환영했다. 그런데 바로 이어진 한국 방문에서 트럼프가 봉변을 당한다면 그 대비효과는 극명할 것이다. 한·미 동맹이 없어지면 북한의 핵 위협도, 미국의 대북 군사행동도 막을 수 없는 게 우리 현실이다. 경거망동은 반미 진영이 목숨 걸고 반대하는 전쟁 가능성만 높일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