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이슈추적] 26세 청년 자살까지 부른 45년 팔당댐 규제 또 논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70가구 식당 생계냐, 수도권  2500만명 맑은 물 마실 권리냐.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 비견될 정도의 일방적 대결 양상이다.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팔당상수원 보호구역 일대의 생계형 음식점 허용 여부를 놓고 벌어지는 정부와 지역 주민 간 갈등이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음식점 생존권 피해 26세 청년 자살 후에도 마찰 #팔당상수원 음식점 등 45년간 규제 논란…해법 없어 #환경부, 상수원 보호구역에 푸드트럭 제한적 허용 # 남양주 조안 주민들, “생계형 음식점은 허용해야” # # 조안 70가구 음식점, 단속으로 문닫아 절망감 # 전체 가구의 20%에 대해 음식점 허용 청원 #환경부 "규정과 원칙에 따른 물관리가 우선" #환경단체 “2500만 수도권 주민 물관리 중요” #전문가, “팔당호ㆍ주민 동시 살리는 묘안 필요” #

환경부는 지난달 18일 상수원 보호구역에 푸드트럭을 제한적으로 허용한다는 골자의 입법예고를 했다. 상수원 보호구역 중 레저특구에 원거주민 및 보호구역 주민에 한해 음식판매자동차(푸드트럭)을 제한적으로 허용해 소득기반시설로 활용하겠다는 내용이다.

검찰 등의 거듭된 단속으로 지난해 12월 폐업한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운길산역 앞 음식거리의 한 장어 음식점. 전익진 기자

검찰 등의 거듭된 단속으로 지난해 12월 폐업한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운길산역 앞 음식거리의 한 장어 음식점. 전익진 기자

이 조치가 나오자 조안면 상수원 보호구역 주민들이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주민들은 “이는 환경부가 지역주민의 ‘생계형 음식점 운영을 가능하도록 해달라’는 청원을 무시한 처사”라며 “앞으로도 환경부가 지역주민의 간절한 청원을 무시한 채 팔당호 상수원 수질을 제대로 관리할 수 있을지 묻고 싶다”고 반발했다.

“팔당상수원 보호구역 주민들이 45년간 희생하고 남모르는 고통을 겪었다는 것을 좀 알아달라.” 조안면 주민들의 하소연이다. 최동교(61) 조안면 상수원규제피해주민대책위원회 총괄 본부장은 “1975년 조안면 대부분 지역이 상수원 보호구역으로 지정된 이후 신규 영업 허가가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하지만 주민들은 생계유지를 위해 어쩔 수 없이 허가 없이 주택과 버섯재배사·창고 등을 개조해 음식점과 카페 등 영업시설을 운영했던 실정”이라고 말했다.

지난 1일 오후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운길산역 앞에서 지역 주민들이 환경부의 푸드트럭 허용 방침에 반대하는 결의문을 낭독하고 있다. 전익진 기자

지난 1일 오후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운길산역 앞에서 지역 주민들이 환경부의 푸드트럭 허용 방침에 반대하는 결의문을 낭독하고 있다. 전익진 기자

그는 “이곳은 72년부터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으로도 묶여있고, 수도권정비계획법 적용도 받고 있다”며 “조안면 전체 1270가구의 가구주 절반 이상이 영업 등 단속으로 인한 전과자로 전락한 상태”라고 했다. 또 상수원 보호구역 지정, 그린벨트 지정 등으로 마을에는 약국·이미용실·다방·정육점 등 최소한의 편의시설도 없다고 했다.

이 지역에서는 지난해 11월부터 올 3월까지 이뤄진 지자체와 경찰·검찰의 대대적 단속으로 70곳의 음식점과 카페 등이 수도법 위반 등 혐의로 적발돼 업주 전원이 불구속기소 됐다. 이 가운데 위반이 심한 업주 7명은 구속기소 됐다. 이번 단속으로 대부분 업소가 폐업한 상태다.

지난 1일 오후 검찰 등의 단속으로 지난해 12월 음식점 문을 닫은 조안면 주민 황선남씨가 가게 앞 마당에 멍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 전익진 기자

지난 1일 오후 검찰 등의 단속으로 지난해 12월 음식점 문을 닫은 조안면 주민 황선남씨가 가게 앞 마당에 멍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 전익진 기자

참다못한 주민들은 지난해 12월부터 거리에 플래카드를 내건 데 이어 최근 환경부·국토교통부 등에 청원서를 내고 규제 완화 등 대책 마련을 요구해 오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 7월엔 부친(65)과 같이 음식점을 운영하다 단속으로 가게 문을 닫아야 했던 26세 청년 A씨가 자신의 음식점 내에서 목을 매 스스로 목숨을 끊는 극단적인 사건까지 발생했다. 이 청년은 유서에서 “이 가게(부친 가게를 의미) 잘 될 수 있는 수호신이 될게요”라고 적어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정부의 푸드트럭 허용 입법예고가 나오자 조안면 상수원규제피해주민대책위원회는 성명서를 내고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 “팔당호 상수원 피해주민들은 45년간 중첩규제로 인한 재산권 침해 및 생존권마저 박탈된 채 생계에 막대한 지장을 받으며 살아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상수원 피해주민들은 조안지역에 하수처리시설이 완벽하게 설치돼 있기 때문에 최소한의 먹고 살기 위한 식당 허가, 농사 관련 시설 등과 관련된 상수원 관리규칙 개정을 지난 3월 20일부터 계속해 환경부에 청원해 왔다”고 밝혔다.

지난 1일 오후 검찰 등의 단속으로 지난해 12월 음식점 문을 닫은 조안면 주민 황선남(왼쪽)씨가 지난 7월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아들의 사진을 보며 슬픔에 잠겨 있다. 전익진 기자

지난 1일 오후 검찰 등의 단속으로 지난해 12월 음식점 문을 닫은 조안면 주민 황선남(왼쪽)씨가 지난 7월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아들의 사진을 보며 슬픔에 잠겨 있다. 전익진 기자

주민들은 “환경부는 잘못된 규제로 계속해서 지역주민들을 전과자로 내몰고 있고 현재 조안면 지역경제가 파산지경에 이르러 주민 생계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주민들은 조안면 지역은 생활하수를 상수원수 수준으로 처리할 수 있는 현대화된 하수처리시설이 설치, 운영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동교(61) 조안면 규제피해주민대책위원회 총괄 본부장은 “상수원 규제 피해 지역주민의 생존권 보장을 위한 음식점 허용 요구 등의 청원사항을 환경부가 상수원 관리규칙 개정안에 조속히 반영하기를 강력하게 촉구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남양주시의회도 지난달 23일 ‘팔당 상수원 보호구역 규제개선 촉구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시의회는 “환경부의 이번 대책은 음식점 등의 허가 범위 확대요구가 반영되지 않은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주민들의 불만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라며 “지역 주민들이 공감할 수 있는 규제 완화 방안을 조속히 마련해 줄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고 밝혔다.

지난 7월 남양주시 조안면에서 스스로 묵숨을 끊은 26세 청년의 상여. 김민욱 기자

지난 7월 남양주시 조안면에서 스스로 묵숨을 끊은 26세 청년의 상여. 김민욱 기자

시의회에 따르면 규제 완화의 조건으로 2009년 및 2012년 일부 구역이 환경정비구역으로 지정돼 전체 가구 수의 5% 범위에서 음식점 등을 운영할 수 있도록 했지만, 상수원 보호구역 지정 이전에 이미 허가받은 업소까지 포함해 결과적으로 음식점 수가 허용범위에 육박하거나 초과해 실효성이 없는 상태다. 또 주민들의 생계를 위한 음식점 등의 영업허가 범위를 확대한다고 해도 처리능력이 넉넉해 수질에는 문제가 없음에도 도저히 지켜질 수 없는 기준으로 주민들을 가혹하게 규제하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남양주시의 입장도 강경하기는 마찬가지다. 이석우 남양주시장은 “운영이 제한된 푸드트럭만으로는 주민들의 생계와 소득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시장은 “환경부가 경기도와 관련 시·군과 상수원 관리규칙 개정 방안에 대해 협의를 진행 중인 상태에서 근본 문제를 외면하고 푸드트럭을 허용하겠다는 정부의 발표는 본질을 흐리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환경부가 전체 가구 수의 5% 범위에서 음식점을 허용하는 것을 20%로 확대해 상수원 관리규칙을 개정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 방안”이라고 대안을 제시했다.

지난 7월 남양주시 조안면에서 스스로 묵숨을 끊은 26세 청년이 남긴 유서. [유족 제공]

지난 7월 남양주시 조안면에서 스스로 묵숨을 끊은 26세 청년이 남긴 유서. [유족 제공]

이에 대해 환경부와 환경단체는 주민들의 입장과 분명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환경부는 “2500만 수도권 주민들의 상수원 수질을 엄격하게 관리하기 위해서는 예외 없는법 적용이 우선”이라는 입장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환경정비구역 내 생활기반시설의 신축·용도변경 간 불균형 해소를 위해 소매점 멸실 후 주택신축은 가능하도록 했다”고 말했다. 또 소매점에서 주택으로 용도변경은 불가한 현행규정 개선을 위해 소매점에서 주택으로의 용도변경 근거를 마련하되, 주택에서 음식점 등 타 용도로의 무분별한 재용도 변경은 방지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영업중단 남양주시 조안면 운길산역 일대 위치도. [중앙포토]

영업중단 남양주시 조안면 운길산역 일대 위치도. [중앙포토]

이석우(59) 의정부양주동두천 환경운동연합 공동의장은 “2500만 수도권 주민들의 깨끗한 상수원을 관리하는 일은 너무나 중요하다”며 “정부가 규정과 원칙에 따라 상수원을 관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만 “정부는 상수원 보호구역 내 피해 주민들에 대해서는 수질 오염과 관련되지 않은 다른 방법을 통해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게 합당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난 1일 오후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운길산역 앞에서 지역 주민들이 환경부의 푸드트럭 허용 방침에 반대하는 결의문을 낭독하고 있다. 전익진 기자

지난 1일 오후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운길산역 앞에서 지역 주민들이 환경부의 푸드트럭 허용 방침에 반대하는 결의문을 낭독하고 있다. 전익진 기자

이와 관련, 전형준 단국대 분쟁해결연구센터 교수는 “수도권 2500만 주민들이 맑은 물을 마실 권리는 규정과 원칙에 따라 보호받아야 마땅하다”며 “그러나 비록 70가구이긴 하지만 조안면 지역 주민들의 생계형 음식점 운영 요청도 가볍게 묵살할 수만은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결국 상수원 관련 기관과 조안면 주민이 지혜를 짜내 상생할 수 있는 묘안을 찾는 노력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남양주=전익진·김민욱 기자 ijjeo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