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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메기·대게에 상다리 휘는 백반까지…하루가 모자라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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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시간 걸려 포항 죽도시장에 도착하자마자 물횟집부터 찾았다. 먹을거리가 넘치는 시장이지만 오래 전부터 벼르고 별렀던 ‘물 없는 물회’를 먹고 싶어서였다. 시장 입구로 들어서 ‘수향회식당’까지 300m를 걷는 사이 생선탕 끓고, 게 찌는 냄새가 진동했다. 아무 집이나 들어가고 싶었지만 참았다. 물회와 회밥, 단 두 개 뿐인 메뉴 중 물회(1만2000원)를 주문했다. 잘게 채 썬 우럭 회와 설탕 대신 단맛을 책임지는 배가 넉넉히 들어간 물회는 과연 별미였다. 시원한 조개국물과 반찬까지 남김없이 비운 뒤 본격적으로 시장 탐방에 나섰다.

과메기 철이 돌아왔다. 찬바람이 더 여러번 불어야 맛이 들지만 포항 죽도시장에서는 11월부터 과메기를 판다. 포항 구룡포 덕장에서 과메기를 말리는 모습. [중앙포토]

과메기 철이 돌아왔다. 찬바람이 더 여러번 불어야 맛이 들지만 포항 죽도시장에서는 11월부터 과메기를 판다. 포항 구룡포 덕장에서 과메기를 말리는 모습. [중앙포토]

포항 죽도시장은 경상북도 최대이자 동해안 최대의 전통시장이다. 수산물과 건어물이 시장 업종의 60%를 차지한다. 신인섭 기자

포항 죽도시장은 경상북도 최대이자 동해안 최대의 전통시장이다. 수산물과 건어물이 시장 업종의 60%를 차지한다. 신인섭 기자

죽도시장은 크다. 부지는 14만8760㎡, 점포 수는 1700개(노점 포함)에 달한다. 서울 남대문시장(4만2225㎡)이 3개 들어가고도 남는 크기다. 경상북도에서 제일 클 뿐 아니라 동해안 최대 시장이다. 이 넓은 시장에 없는 게 없다. 상인들은 “(세상에 원래 존재하지 않는) 고양이 뿔만 빼고 다 판다”고 말할 정도다. 드넓은 시장에서 방문객 대부분이 찾는 곳은 횟집과 어시장이 몰려 있는 구역이다. 특히 죽도시장의 상징인 과메기와 대게를 파는 겨울에는 수산물 구역이 늘 인산인해를 이룬다.

포항 죽도시장 어시장내에 있는 물회 전문 식당인 '수향회식당'에서 맛본 물회. 물은 손님이 원하는 만큼 따로 부어 먹는다. 물을 붓지 않아도 맛있다. 신인섭 기자

포항 죽도시장 어시장내에 있는 물회 전문 식당인 '수향회식당'에서 맛본 물회. 물은 손님이 원하는 만큼 따로 부어 먹는다. 물을 붓지 않아도 맛있다. 신인섭 기자

포항은 과메기의 본고장이다. 전국 생산량의 90%를 책임진다. 구룡포 같은 덕장에서 말린 과메기가 죽도시장으로 몰린다. 한데 10월25일 죽도시장 과메기거리는 예상 밖으로 한산했다. 시장 한쪽 구석에서 과메기를 포장하는 가게가 보였다. 구룡포에 덕장을 갖고 있다는 이국동(58) ‘할매왕과메기’ 사장은 “올해는 날이 더워 본격적인 과메기 출하가 늦어졌고 생선도 예년보다 작다”며 “찬바람이 조금 더 불어야 과메기도 제맛이 든다”고 말했다. 김홍민(62) 죽도시장 상가번영회 사무국장은 “과메기를 전문으로 다루는 점포만 80개에 달한다”며 “11월부터는 200m가 넘는 과메기거리에서 상인들이 줄지어 앉아 과메기 껍질을 벗기는 진풍경이 펼쳐진다”고 설명했다.
과메기는 꽁치나 청어로 만든다. 갓 잡은 신선한 고기를 냉동해두었다가 찬바람 부는 늦가을부터 해풍에 말려 건조시킨다. 포항 과메기가 다른 지역보다 유명한 이유를 이 사장에게 물었다. 그는 “과메기 맛은 전적으로 덕장에서 좌우되는데 해풍이 좋은 구룡포가 최적의 조건”이라며 “생선도 중요하지만 건조를 잘해야 쫄깃쫄깃한 식감이 극대화된다”고 설명했다.
포항 대게도 유명하다. 경북 영덕·울진과 함께 포항은 대게의 3대 본고장으로 통한다. 대게는 11월1일부터 이듬해 5월31일까지만 잡을 수 있다. 나머지 기간은 금어기다. 11월부터 대게를 맛볼 수 있지만 살이 차오르지 않아 12월 이후에 먹는 게 낫다는 건 익히 알려졌다. 아직 10월이어서인지 줄지어선 횟집, 게요리 전문점 대부분은 대게가 아닌 홍게나 킹크랩을 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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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죽도시장 내에 있는 과메기 판매점 '할매왕과메기'에서 꽁치 껍질을 벗기는 모습. 신인섭 기자

포항 죽도시장 내에 있는 과메기 판매점 '할매왕과메기'에서 꽁치 껍질을 벗기는 모습. 신인섭 기자

11월에 들어서면 '할매 왕과메기'같은 수산물 구역에서는 과메기 껍질 벗기는 작업을 본격화한다. 신인섭 기자

11월에 들어서면 '할매 왕과메기'같은 수산물 구역에서는 과메기 껍질 벗기는 작업을 본격화한다. 신인섭 기자

수산물 코너는 비록 과메기나 대게가 없어도 먹을 것, 볼 것 천지였다. 동해안 일대에서 피데기라고 불리는 반건조 오징어, 주황색 알이 잔뜩 밴 참가자미가 주인공 행세를 하고 있었고, 경북 지역에서 많이 먹는 문어와 돔배기(염장한 상어고기)를 파는 집이 많았다. 수십 년 전통을 이어온 고래고기 전문점 '할매고래'와 '왕고래고기'가 좁은 길을 사이에 두고 경쟁하는 모습도 흥미롭다. ‘태영수산’에서는 해체 작업이 끝난 개복치도 맛볼 수 있었다. 청포묵·곤약처럼 생긴 개복치 순살코기는 맛을 묘사한다면 무미(無味). 그런데도 개복치는 포항에서는 잔칫날 별미로 반드시 상에 올린단다.

개복치 전문점인 '태영수산'에서 개복치 해체 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개복치 살코기는 청포묵처럼 생겼다. 신인섭 기자

개복치 전문점인 '태영수산'에서 개복치 해체 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개복치 살코기는 청포묵처럼 생겼다. 신인섭 기자

개복치 전문점인 '태영수산'에 진열된 개복치 살코기. 청포묵처럼 생겼다. 신인섭 기자

개복치 전문점인 '태영수산'에 진열된 개복치 살코기. 청포묵처럼 생겼다. 신인섭 기자

알이 잔뜩 밴 참가자미. 신인섭 기자

죽도시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돌문어. 신인섭 기자
포항 죽도시장 내에 있는 고래고기 판매점. 신인섭 기자
포항 죽도시장 내에 있는 어시장에서 파는 반건조 생선들. 신인섭 기자

수산물과 건어물이 시장의 60%를 차지하지만 다른 구역도 둘러볼 만하다. 농산물 구역만 해도 다른 지역의 웬만한 시장 못지않게 크다. 허창호(47) 죽도시장 연합상인회장은 “죽도시장은 포항 뿐 아니라 경주·영덕·울진 농산물 집결지이기도 하다”며 “몇 년 새 고속도로가 많이 뚫리면서 수산물 뿐 아니라 농산물을 찾는 손님도 부쩍 늘었다”고 말했다. 포항산 부추와 시금치는 전국에서도 최대 생산량을 자랑한단다.

포항 죽도시장은 서울 남대문시장보다 3배 이상 크다. 없는 게 없다. 신인섭 기자

포항 죽도시장은 서울 남대문시장보다 3배 이상 크다. 없는 게 없다. 신인섭 기자

시장을 구석구석 둘러보면 값비싼 생선회나 해산물 말고도 즐비한 먹거리와 마주하게 된다. 1만원만 있어도 든든하게 두 끼니를 해결하고 간식까지 해결할 수 있다. 먼저 들러볼 곳은 건어물 구역 안쪽에 있는 수제비 골목. 수제비와 칼국수, 두 가지를 섞은 칼제비를 파는 식당 약 스무 집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1인분 3500원. 멸치향 강한 국물까지 깨끗이 비우면 제법 든든하다.

시장 안쪽에는 수제비골목이 있다. 수제비와 칼국수를 파는 식당 약 스무 개가 있다. 울릉도분식에서 칼국수를 먹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 신인섭 기자

시장 안쪽에는 수제비골목이 있다. 수제비와 칼국수를 파는 식당 약 스무 개가 있다. 울릉도분식에서 칼국수를 먹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 신인섭 기자

수제비골목 인근에는 백반을 파는 밥집이 많다. 주로 상인들이 찾는 허름한 밥집인데 몇몇 집이 TV맛집 프로그램에 나오면서 외부 방문객 발길도 늘고 있다. 사람들이 줄지어 선 식당을 피해 의류 구역에 있는 ‘대원식당’을 찾았다. 5000원짜리 백반을 주문하니 간고등어와 동태탕을 포함해 13찬이 나왔다. 전라남도 한정식집에 온 것도 아닌데 말이다. 구수한 숭늉을 한 사발 들이키고 시장에서 공수한 신선한 재료로 만든 반찬 하나하나에 담긴 정성이 놀라웠다. 이런 백반집은 보통 오전 7시에 문을 열어 오후 6시쯤 닫는다.

포항 죽도시장에 있는 백반집 '대원식당'. 간고등어와 동태탕을 포함해 반찬 13가지를 내준다. 1인분 5000원이다. 신인섭 기자

포항 죽도시장에 있는 백반집 '대원식당'. 간고등어와 동태탕을 포함해 반찬 13가지를 내준다. 1인분 5000원이다. 신인섭 기자

시장 곳곳에는 주전부리를 파는 집도 많다. 호떡 집이 유독 많은데 중앙로 쪽 입구에 있는 ‘할매호떡’은 40년 가까운 내력을 자랑한다. 어머니의 뒤를 이어 고명희·은희 자매가 8년째 호떡을 굽고 있다. 자리에 앉아서 주문하면 1개에 700원짜리 호떡도 접시에 정성껏 담아준다. 날마다 밀가루 반죽 20㎏만 파는 집인데 오후 4~5시면 재료가 다 떨어진단다. 청년상인인 김진호 사장이 호떡을 굽는 ‘총각호떡’은 죽도시장에서 가장 긴 줄이 늘어선 가게다. 1500원짜리 크림치즈호떡이 별미다. 김 사장은 무더운 7·8월에는 장사를 접고 여행을 다닌다고 한다.

'할매호떡'에서 파는 700원짜리 호떡. 하루에 반죽 20kg만 판다. 신인섭 기자

'할매호떡'에서 파는 700원짜리 호떡. 하루에 반죽 20kg만 판다. 신인섭 기자

이밖에도 시장에는 죽도시장의 간판메뉴를 응용한 대게빵, 과메기빵도 볼 수 있다. 대게빵에는 실제로 대게 살이 들어있는데 생각보다 비린내가 나지 않고 팥소와 궁합이 좋다. 한데 과메기빵이라니? 다행히 과메기빵에는 과메기가 없다. 붕어빵의 변종으로 물고기 모양을 하고 있다. 청어인지 꽁치인지는 분간하기 어렵다.

[시장에서 놀자]④포항 죽도시장 #동해안 최대 규모…문어·개복치 등 수산물 강해 #값싸고 맛난 칼국수에 대게빵·과메기빵도 별미

건어물 판매점 '경동수산'에서 손님이 직접 건어물을 구워 먹을 수 있다. 맥주도 판다. 신인섭 기자

건어물 판매점 '경동수산'에서 손님이 직접 건어물을 구워 먹을 수 있다. 맥주도 판다. 신인섭 기자

◇여행정보=서울시청에서 포항 죽도시장까지는 338㎞, 자동차로 약 4시간 걸린다. 시장에서 1.5㎞만 걸어가면 포항 송도해수욕장이 나오고, 한국을 대표하는 일출 명소 호미곶은 약 30㎞ 거리다. 죽도시장은 온누리상품권을 사용하기 편한 시장이기도 하다. 13개 금융기관에서 파는 온누리상품권은 60% 이상 사용하면 나머지 금액을 현금으로 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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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최승표 기자 spch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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