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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발칵 뒤집은 성추문···하비 웨인스타인 스캔들 전모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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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비 웨인스타인 / 사진 AP=연합뉴스

하비 웨인스타인 / 사진 AP=연합뉴스

 [매거진M] 영화 ‘스포트라이트’(2015, 토마스 맥카시 감독) 같은 일이 벌어졌다. 대상은 가톨릭 종교 재단이 아니라 할리우드 거물 제작자 하비 웨인스타인(65)이다. 더는 참지 못한 여자들이 미디어를 활용해 성폭력이 구조화된 현실을 고발하고 있다. 현재 미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하비 웨인스타인 스캔들의 전모를 전한다.

하비 웨인스타인 스캔들, 경멸스럽다

지난 10월 5일 <뉴욕타임즈>는 ‘하비 웨인스타인, 수십 년 동안 성추행 고소인들에게 돈 지급’이라는 제목으로 할리우드의 거물 제작자 하비 웨인스타인의 성추행 혐의를 폭로하는 기사를 실었다. 두 명의 기자가 쓴 기사엔 웨인스타인이 애쉴리 저드와 로즈 맥고완 등 여자 배우들 및 어린 여자 직원들에게 가한 성추행과 성폭력이 꼼꼼히 정리돼 있었다. 웨인스타인의 수법은 비슷했다. 사업상 미팅이라고 말한 뒤, 고급 호텔 방에 여자들을 불러 강제로 신체 접촉을 하거나 성 접대를 요구하는 식이었다. 그가 하는 말도 한결같았다. 자신이 시키는 대로 하면 영화판에서 성공할 수 있도록 보장해 주겠다고 꼬드겼다.

고발자인 직원은 이 상황을 두고 “힘의 균형에 있어 나는 0이고 웨인스타인은 10이다”라고 표현했다. 할리우드의 약육강식 세계에서 그는 언제나 먹이 사슬 꼭대기에 있는 포식자였다. 그가 설립한 영화사인 ‘미라맥스’와 ‘웨인스타인 컴퍼니’는 미국 영화를 대표하는 제작·배급사로 작품을 발표할 때마다 오스카상을 휩쓸었다. 영화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일하고 싶어 하는 회사였고, 웨인스타인은 젊은 인재들의 갈망을 이용해 자신의 성적 욕망을 채웠다.

“힘의 균형에 있어 나는 0이고 웨인스타인은 10이다” 

웨인스타인은 젊은 인재들의 갈망을 이용해 자신의 성적 욕망을 채웠다 

오랜 시간 동안 이뤄진 범죄였지만 구체적인 사실은 밖으로 거의 새어 나가지 않았다. 고소가 진행되면 합의금을 지불하며 입막음을 했다. 또한 웨인스타인 컴퍼니는 신입 직원이 들어올 때마다 회사 수익에 영향을 끼치는 발언을 금지하는 계약을 맺었다. 할리우드 어디든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그를 배신하면 영화판에서 일을 하는 건 불가능했다. 이길 수 없는 게임이었다. 올해 <뉴욕타임즈> 기사가 세상 밖으로 나가기 전까지는 말이다.

<뉴욕타임즈>는 2013년 제85회 아카데미상 시상식 진행을 맡은 코미디 배우 세스 맥팔레인이 여우주연상 후보들에게 “당신들은 더 이상 하비 웨인스타인에게 반한 척할 필요 없어요”라고 말할 때 관중이 폭소를 터뜨리는 걸 보고, 웨인스타인의 권력망을 파헤치기로 결정했다. 업계의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던 강제적인 성 접대는 진실로 밝혀졌다. 곧이어 <뉴요커>는 배우 아시아 아르젠토 등 다른 배우들을 인터뷰하고 와인스타인의 강간 혐의 사실을 보도했다. <뉴욕타임즈>는 후속 기사로 기네스 팰트로, 안젤리나 졸리, 로잔나 아퀘트 등 배우 7명이 밝히는 와인스타인의 성추행 경험담을 대대적으로 내보냈다.

메릴 스트립 / 사진 AP=뉴시스

메릴 스트립 / 사진 AP=뉴시스

미라맥스, 웨인스타인 컴퍼니와 여러 영화를 찍고 ‘철의 여인’(2011, 필리다 로이드 감독)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메릴 스트립은 “그의 행동은 경멸스럽고 변명의 여지가 없다”고 말하며 용기를 낸 여자 배우들을 격려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케이트 윈슬렛, 글렌 클로즈, 주디 덴치도 미디어와 SNS를 통해 동료 배우들을 공식적으로 지지했다.

비상이 걸린 웨인스타인 컴퍼니는 그의 권력 남용과 부도덕한 행위를 “몰랐다”고 말하며 이사 투표를 거쳐 웨인스타인을 해고했다. 할리우드 제작자조합과 아카데미 시상식 협회도 그를 제명했다. 보도가 나가자마자 사과문을 발표했으나, 대부분의 범죄 혐의를 부인하고 <뉴욕타임즈>를 명예 훼손으로 고소하겠다며 협박했던 웨인스타인은 아리조나 재활 센터로 황급히 몸을 피했다.

2주 동안 웨인스타인 스캔들이 할리우드를 뒤흔들었고 영화계 여성들은 이 스캔들을 변화의 시점으로 받아들였다. 고발자 35명 외에 다른 여자 배우들도 과거 성추행과 성폭력 경험을 적극적으로 세상 사람들과 공유하기 시작했다. 제니퍼 로렌스, 리즈 위더스푼, 비욕, 사라 폴리, 레아 세이두, 레나 헤디 등 여자 배우들의 충격적인 고백이 이어졌다.

이 움직임 속에서 배우이자 가수인 알리사 밀라노는 2007년에 등장한 해시태그 운동 #MeToo를 부활시켜 성폭력에서 살아남은 이들의 경험담에 #MeToo를 붙이자고 제안했다. 그 후 24시간 만에 25만 개의 포스팅이 추가되었다. 그야말로 사람들이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던, 성 착취와 성 접대가 빈번하게 오가는 추잡한 전통의 영화판이 위기에 처한 것이다. 영화계를 비롯 부당한 성차별을 겪고 있는 여자들이 연대해 점점 발언의 강도를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웨인스타인 스캔들을 두고 ‘물이 새는 시점’이라 말하는 오프라 윈프리의 시선은 탁월하다. 그는 “하비 웨인스타인만 이야기한다면 우리는 이 시점을 놓치는 것이다”라 강조하며, “남에게 위안을 주는 일이 여자 일의 일부였고 내 일과 내 자리를 지키기 위해 미소 짓던 시대가 끝나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39;실버라이닝 플레이북&#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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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캐롤&#39;

&#39;캐롤&#39;

“남에게 위안을 주는 일이 여자 일의 일부였고 내 일과 내 자리를 지키기 위해 미소 짓던 시대가 끝나가고 있다” 

웨인스타인이 미라맥스와 웨인스타인 컴퍼니를 통해 제작한 영화들은 대다수 지금까지도 사랑을 받고 있다.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1989,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 ‘크라잉 게임’(1992, 닐 조던 감독) ‘천상의 피조물’(1994, 피터 잭슨 감독) ‘셰익스피어 인 러브’(1998, 존 매든 감독)부터 ‘실버라이닝 플레이북’(2012, 데이빗 O 러셀 감독) ‘캐롤’(2015, 토드 헤인즈 감독) ‘싱 스트리트’(2016, 존 카니 감독) 그리고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 대부분이 그의 손을 거쳤다. 왕가위와 미야자키 햐아오 감독의 신작들을 (대대적인 편집을 거쳐) 미국에 배급한 곳도 웨인스타인 컴퍼니.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2013)도 배급 역사상 특별한 작품으로 남아 있다.

하지만 올해 웨인스타인 컴퍼니는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넷플릭스, 아마존 등 스트리밍 플랫폼 제작사들은 웨인스타인 컴퍼니의 권력 남용 방식을 지양하며 재능 있는 영화인들을 포섭하고 있다. 대안이 등장했고 무너질 것이 무너진다. 할리우드가 변하고 있다.

뉴욕=홍수경 영화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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