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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톡 감옥에서 해방될 권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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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김경희 기자 중앙일보 기자
김경희 중앙SUNDAY 정치부 기자

김경희 중앙SUNDAY 정치부 기자

아침에 눈 뜨자마자 스마트폰 알람을 끄면서 카카오톡 채팅창을 연다. 밤새 쌓인 카톡을 확인하는 일로 하루를 시작한다. 각종 취재원이 보낸 톡들이 쌓여 있다. 요새는 기관 공보실에서 출입기자들을 단체 카카오톡 채팅방(단톡방)으로 초대한 다음 보도자료를 올리는 경우가 많다.

점심때쯤 되니 전날 밤 친구들과의 ‘술자리 정산 방’이 열렸다. 카카오 송금 기능으로 엔 분의 일 술값을 보낸다. 우연히 회사 동료의 카톡 프로필을 눌렀는데 오늘이 생일이라고 알려준다. 선물하기 기능으로 생일 축하한다는 메시지와 함께 기프티콘을 보낸다.

인터넷 쇼핑을 하다 물건을 주문하니 카톡으로 확인서가 날아왔다. 내가 언제 동의한 걸까 싶은 광고성 카톡도 점점 늘어난다. 여러 번 카톡을 주고받은 사이인데 정작 급할 때 통화를 하려고 보니 저장된 전화번호가 없다. 잠깐 당황하다 자연스럽게 보이스톡 버튼을 누른다.

어느새 카톡이 일상을 점령했다. 카톡이 없을 땐 어떻게 지냈나 싶을 정도로 아득하다. 카톡이 주는 편리함을 무시할 수 없지만 한편으론 피로감이 커져 간다. 미친 척 카톡에서 탈퇴해 볼까도 생각했지만, 카톡은 이미 선택이 아닌 의무가 돼 버렸다. 이게 없으면 각종 정보 습득, 인적 네트워크 형성 등 면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

그래도 이대론 안 될 것 같다. 쉬는 날에도 침대에 누워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다 보면 두세 시간이 훌쩍 지나 있다. “SNS는 인생의 낭비”라고 했던 영국의 전설적 축구 감독 알렉스 퍼거슨의 말이 자꾸 떠오른다. 그의 말에 100% 동의할 수는 없지만 이러다 ‘디지털 좀비’가 될까 두렵다. 디지털 기술이나 소셜미디어에 빠진 사람을 이렇게 부른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SNS를 줄이거나 아예 끊는 ‘디지털 디톡스’가 유행한 지 꽤 됐다. 이달 초에도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성인 남녀 3000여 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했더니 약 30%가 디지털 디톡스를 시도해 봤다고 답했다. 이들을 돕기 위해 스마트폰을 쓰지 않을수록 포인트를 적립해 주는 앱도 등장했다.

물론 개인 의지만으로 어렵단 걸 잘 안다. 오죽하면 ‘퇴근 후 카톡금지법’이란 대선 공약까지 나왔을까. 다만 주 1회, 단 몇 시간만이라도 카톡에서 온전히 해방되는 자유를 누렸으면 좋겠다. 오프라인 상태 표시 기능을 추가하는 건 어떨까. 프로필 사진에 ‘OFF’를 표시해 두면 카톡 좀 늦게 봤다고 다그치지 않기로. 직장 상사든, 애인이든.

김경희 중앙SUNDAY 정치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