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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으로 끊겨버린 뱃길 섬마을 주민들의 온풍이 지켰다

중앙일보

입력

지난 22일 태풍의 영향으로 뱃길이 끊기면서 이수도에 고립됐던 관광객들이 23일 오전 도선으로 이수도를 떠나고 있다. 마을 주민들이 배웅을 하고 있다. [사진 거제시]

지난 22일 태풍의 영향으로 뱃길이 끊기면서 이수도에 고립됐던 관광객들이 23일 오전 도선으로 이수도를 떠나고 있다. 마을 주민들이 배웅을 하고 있다. [사진 거제시]

제21호 태풍 ‘란’의 영향으로 경남 거제의 한 섬에 관광객 600여명의 발이 묶였으나 마을 주민들이 무료로 숙식을 제공해 화제가 되고 있다. 이들 관광객은 지난 21일 섬에 들어온 뒤 22일 뭍으로 나갈 계획이었으나 태풍으로 인해 뱃길이 끊기면서 23일에야 겨우 섬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지난 22일 태풍으로 뱃길이 끊겨 600여명 관광객 이수도에 발 묶여 #민박과 펜션 주인들 합심해 무료로 숙식 제공하기로 결정 #태풍으로 섬에 고립돼 어두워진 관광객들 마음 주민 인심으로 밝혀

23일 거제시 등에 따르면 경남 거제시에서 뱃길로 7분 정도 거리에 있는 장목면 시방리 이수도(利水島·면적 0.384㎢)에 지난 22일 태풍으로 뱃길이 끊기면서 600여명의 관광객이 섬을 빠져나오지 못하고 고립됐다. 이수도는 거가대교 바로 옆에 있으면서 낚시가 잘되고 둘레길도 있어 주말마다 1박 2일 일정으로 관광객 수백 명이 찾는 곳이다. 멸치잡이 권현망(權現網)이 들어와 마을이 부유해지자 바닷물이 이롭다 하여 이수도라는 이름이 붙었다.

그런데 21호 태풍 ‘란’의 영향으로 일요일인 22일 정오부터 풍랑경보가 발표되면서 이수도와 거제도를 오가는 선박운행이 전면 중단됐다. 토요일을 전후로 섬에 들어와 관광한 뒤 22일 오후 뭍으로 나가려던 관광객 전원이 오도 가도 못하고 발이 묶인 것이다. 결국 관광객 600여명은 하룻밤을 잤던 민박집과 펜션 등에서 다시 신세를 져야 했다.

이수도 선착장에 뱃길이 끊겨 하룻밤 더 묵은 관광객들이 23일 오전 선착장에서 뭍으로 나가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이수도 주민들이 커피와 온수 등을 제공하고 있다. [사진 거제시]

이수도 선착장에 뱃길이 끊겨 하룻밤 더 묵은 관광객들이 23일 오전 선착장에서 뭍으로 나가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이수도 주민들이 커피와 온수 등을 제공하고 있다. [사진 거제시]

도시 같으면 이들 관광객에게 숙식 관련 비용을 받았겠지만 이수도 민박과 펜션 집을 중심으로 한 주민 100여명의 대응은 전혀 달랐다. 원래 머물던 숙소에서 잠자리를 무료로 제공했다. 또 22일 점심과 저녁 두끼를 식대도 받지 않고 그냥 제공하느라 민박집마다 동분서주했다. 밥과 국을 만들어 관광객들에게 무료로 줬고, 끼니 마련이 쉽지 않은 곳은 라면 등을 급히 준비했다. 민박집마다 쌀과 반찬 혹은 라면이 부족한 곳은 서로 빌려 관광객들을 대접하기도 했다. 원래 숙박비는 집집마다 좀 차이가 있지만 1인당 2만원, 식사는 원래 한끼당 1만원 정도 된다. 600여명이 숙식비를 계산하면 2400만원이라는 적지 않은 돈을 받지 않고 무료로 대접을 한 것이다.

이렇게 태풍이라는 예기치 않은 재난 때문에 발이 묶였던 관광객들은 이수도 주민들의 따뜻한 인심을 받으며 하룻밤을 무사히 보낸 뒤 다음날 오전 섬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관광객들이 섬을 빠져나온 23일 새벽시간대에는 여전히 파도가 거센 상황이었다. 그러나 45인승 도선이 해경 경비정 호위를 받으며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면서 오전 5시쯤부터 오전 9시까지 시청쪽과 이수도를 여러번 오가는 수송작전은 무사히 끝날 수 있었다.

박광문 이수도 이장은 “태풍으로 뱃길이 끊겼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당시 민박과 펜션을 하는 민박협의회를 중심으로 무료로 숙식을 제공하기로 결정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거제시와 해경에 이같은 사실을 알리고 월요일에 관광객들이 출근을 할 수 있도록 뱃편을 마련해 관광객들이 무사히 섬을 나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배민자 이수도 민박협회장은 “태풍 때문에 배가 끊겨 손님들이 못나가는데 추가로 돈을 받을 수는 없지 않느냐”며 “민박과 펜션을 하는 주민들이 누구라 할 것 없이 이같은 뜻에 동참해 관광객들에게 무료로 숙식을 제공한 것이다”고 말했다. 문임숙 학섬 펜션 대표는 “보통 토요일에 들어와 일요일 오전까지 1박 3식을 주문을 받아 제공해 당일 갑작스럽게 배편이 끊겼을 때는 부식이 거의 없는 상황이어서 둥지민박 등에서 국수 등 여러가지 남은 음식으로 식사를 제공했다”며 “처음에는 뱃편이 끊겨 일요일 결혼식이나 월요일 출근을 못할 상황이 돼 관광객들이 우울해 했으나 마을 주민들이 무료로 숙식을 제공하면서 그나마 마음이 풀려 무사히 돌아가게 됐다”고 말했다.

한편 섬의 모양이 두루미를 닮았다고 해 학섬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이수도 주변 해역은 대구의 산란해역으로 멸치·갈치·고등어·도미·대구 등이 주로 많이 잡힌다. 김·미역·굴 등의 양식도 한다. 주요 농산물은 보리와 고구마이며, 마늘도 생산한다. 시방리 선착장에서 배가 1일 7회 운항한다.

거제=위성욱 기자 w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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