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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데에 놀라고 서울서 등산도···한국 예능은 '외사친' 전성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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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를 통해 한국을 찾은 독일 출신 다니엘 린데만의 친구들. 서대문형무소와 비무장지대 등을 방문하는 역사 투어로 시청자들의 관심을 모았다. [사진 MBC에브리원]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를 통해 한국을 찾은 독일 출신 다니엘 린데만의 친구들. 서대문형무소와 비무장지대 등을 방문하는 역사 투어로 시청자들의 관심을 모았다. [사진 MBC에브리원]

‘외사친’이 예능 프로그램의 주요 키워드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달 10년 만에 MBC에브리원 최고 시청률(3.5%)을 기록한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를 필두로 ‘외국인 사람 친구’를 앞세운 프로그램들이 봇물 터지듯 쏟아지고 있다. 15일 첫 방송을 시작한 JTBC ‘나의 외사친’부터 파일럿으로 첫선을 보인 SBS ‘내 방 안내서’, 다음달 방송을 앞둔 올리브 ‘서울메이트’까지 줄줄이 예고돼 있다. 이성적 감정이 없는 가까운 친구를 뜻하는 ‘남사친(남자 사람 친구)’나 ‘여사친(여자 사람 친구)’처럼 ‘외사친’ 한 명쯤은 있어야 한다는 세태를 반영하는 것이다.

외국인 예능 전성시대 '어서와' 성공 이후 봇물 #'남사친' '여사친' 이어 '외사친'이 새 키워드로 #한국 찾은 외국인 시선으로 새로운 모습 발견 #국적ㆍ연령ㆍ성별 따라 다른 타자감수성 높여

이들은 이미 숱하게 선보인 여행 예능을 다르게 보이도록 만드는 일등공신이다. 장수 예능 ‘1박 2일’을 통해 국내 방방곡곡을 훑고, 나영석 사단의 ‘꽃보다 할배’ 등을 통해 이국적인 풍광도 익숙한 그림이 됐다면, 알베르토 몬디(이탈리아)ㆍ다니엘 린데만(독일) 등 국내에서 예능 패널로 활동하고 있는 외국인 출연자의 친구들이 한국을 찾는 모습은 새롭고도 낯설기 때문이다. 화장실에 설치된 비데를 보고 놀라거나 도심 속 조계사를 찾아 힐링하는 모습은 예상치 못한 재미를 선사한다.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 출연진이 화장실에 설치된 비데를 보고 감탄하고 있다. [사진 MBC에브리원]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 출연진이 화장실에 설치된 비데를 보고 감탄하고 있다. [사진 MBC에브리원]

대형서점에서 커다란 배낭을 메고 한국 관련 서적을 보는 모습을 보고 신기한 마음에 프로그램을 기획하게 된 문상돈 PD는 “국적이나 성별ㆍ연령에 따라 같은 장소를 방문해도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는 점이 새롭게 다가왔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흔히 자연과 도시를 구분해서 여행하는 반면 서울에서 등산을 한다거나 같은 명동을 가도 관심사에 따라 주요 쇼핑지가 되거나 빛의 속도로 스쳐 지나가는 공간이 되는 것이 놀라웠다”고 덧붙였다. 덕분에 본방송은 목요일 오후 8시 30분이지만 유료채널 방송으로는 이례적으로 MBC 화요일 오후 11시에 편성되기도 했다. 장기 파업 여파로 제작에 차질을 빚고 있는 상황에서 화제성 높은 계열사 프로그램을 전진 배치하는 전략을 택한 것이다.

'내 방 안내서''에서 미국 LA에 살고 있는 DJ와 방을 교환한 박나래가 현지 삶을 만끽하고 있다.[사진 SBS]

'내 방 안내서''에서 미국 LA에 살고 있는 DJ와 방을 교환한 박나래가 현지 삶을 만끽하고 있다.[사진 SBS]

이는 우리의 여행 패턴 변화와도 맞물린다. 1989년 해외여행 자유화 이후 패키지ㆍ자유여행 등으로 변모해온 여행은 이제는 ‘머무르기’를 넘어 ‘살아보기’를 향해 가고 있기 때문이다. 자연히 박물관이나 유적지보다는 동네 사람만 아는 맛집이나 미용실 같은 정보가 더 중요해졌다. 예능국이 아닌 교양국에서 만든 ‘내 방을 여행하는 낯선 이를 위한 안내서’가 박나래ㆍ손연재ㆍ혜민스님ㆍ박신양이 직접 그린 동네 지도를 소개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내 친구들과 단골집에 요청하면 언제든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란 메시지는 낯선 곳으로 떠나는 출연진과 한국을 찾은 게스트 모두에게 마음이 담긴 안전장치로 작용하는 셈이다.

백시원 PD는 “2년 전 애를 어떻게 키워야할지 너무 막막한 마음에 덴마크와 핀란드로 휴가를 다녀왔다. 그곳에서 에어비앤비 호스트가 자신의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이나 또래 워킹맘 친구들을 소개해준 덕분에 보다 풍성한 여행을 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개인적 고민과 사회적 고민이 맞물리는 지점에서 새로운 아이템이 탄생한 것이다. 실제 리듬체조 선수 생활을 그만두고 떠난 손연재와 동갑내기 대학생이자 정치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는 니키타 클래스트룹(덴마크)은 앞으로의 진로에 대해 함께 고민한다. 25일 오후 11시 ‘싱글와이프’ 후속으로 방영된다.

'나의 외사친'을 통해 부탄을 찾은 이수근 부자. 첫째 태준이와 도지왕축이 활짝 웃고 있다. [사진 JTBC]

'나의 외사친'을 통해 부탄을 찾은 이수근 부자. 첫째 태준이와 도지왕축이 활짝 웃고 있다. [사진 JTBC]

‘나의 외사친’과 ‘서울메이트’는 관계에 보다 초점을 맞춘다. 두 아들과 함께 연간 관광객을 1만명으로 제한하는 부탄을 찾은 이수근은 도지왕축 가족 전체와 친구가 된다. “나이가 몇인데 친구를 사귀냐”는 아들의 구박에도 꿋꿋하게 이탈리아로 떠난 오연수는 레몬농장가의 며느리 조안나와 교환일기를 쓰며 46살이란 나이는 전혀 장애가 되지 않음을 몸소 증명해 보인다. ‘서울메이트’는 반대로 해외에서 사연 신청을 받아 김숙ㆍ장서희 등 한국 연예인 집에서 함께 하는 콘셉트다. 박상혁 PD는 “한국인들은 잘 모르는 인사동 놀이똥산이 외국인들에겐 핫 플레이스다. 서울에도 아직 못보여준 장소가 많다”며 “‘룸메이트’나 ‘섬총사’처럼 전혀 다른 사람들이 한 공간에서 만나 서로 이해해나가는 모습은 언제나 흥미로운 소재”라고 설명했다.

이같은 시도는 타자에 대한 감수성을 높이는 매개체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과거 일상을 벗어난 공간을 찾아 떠나던 사람들이 일상 속에서도 새로움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타인의 일상에 들어가 여행을 하는 것과 동시에 공감대를 높이는 훈련을 간접체험하는 효과가 발생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마치 영화 ‘택시운전사’에서 독일 기자의 시선으로 광주 민주화 운동을 바라본 것이 새롭게 다가온 것처럼 타자로 인한 주체화 효과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박기수 교수는 “한국 IT 기술이나 동서양이 어우러져 있는 모습에 대해 우리 입으로 대단하다고 말하는 것보다 타인의 시선으로 인해 재발견되고 그에 대한 칭찬을 듣는 것이 더욱 만족감이 크다. 외부에서 명명된 한류처럼 반대 방향의 인정투쟁인 셈”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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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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