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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천문연구진 주도, 세계가 목매던 천문관측 성과 올렸다

중앙일보

입력

중성자별의 충돌 직후 중력파와 감마선이 방출되는 순간의 모습을 컴퓨터 그래픽으로 표현했다.[사진 라이고,NSF]

중성자별의 충돌 직후 중력파와 감마선이 방출되는 순간의 모습을 컴퓨터 그래픽으로 표현했다.[사진 라이고,NSF]

 2014년 개봉한 과학소설(SF)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주인공들은 블랙홀 가르강튀아 주변의 밀러 행성을 찾아간다. 착륙선을 이용해 바다로 뒤덮인 밀러 행성의 수면에 도착한다. 이들은 탐사 세 시간 만에 거대한 해일을 피해 다시 모함으로 돌아온다. 여기에서 그들은 21년이나 더 시간이 지나 늙어버린 동료를 보고 깜짝 놀란다. 원인은 빛마저도 빨아들이는 엄청난 중력으로 주변의 시간과 공간을 왜곡시킨 블랙홀 때문이었다. 블랙홀의 중력이 행성 표면에서 흐르는 시간과 멀리 떨어진 모선에서 흐르는 시간을 다르게 만들었던 것이다.

국내 연구진 38명 포함한 국제공동연구팀 #중성자별 충돌서 나오는 중력파와 가시광선 관측 동시 수행 #"중력파 신호 정확히 어디있는지 최초로 밝혀낸 역사적 사건" #연구결과, 네이처 등 7개 국제 저명 학술지에 올라

지난 3일 발표된 2017년 노벨 물리학상도 시공(時空)을 왜곡시킨다는 중력파를 최초로 관측한 라이고ㆍ비르고 국제협력단에 돌아갔다. 블랙홀의 충돌로 생성된 중력파가 시공을 뒤틀면서 13억 광년을 달려 지구에 도달, 연구자의 실험장치에 포착된 것이다. 하지만, 블랙홀이 만들어내는 중력파의 존재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연구에 참여한 천체 물리학자가 아니면 피부로 느낄 수 없는 연구였다.

이 같은 한계를 넘어서는 획기적 연구결과가 나왔다. 그것도 국내 연구진들이 주도한 국제공동연구에서다. 16일 한국천문연구원은 한국중력파연구협력단, 서울대 초기우주천체연구단 및 국제공동연구팀과 함께 중성자별의 충돌에서 생긴 중력파와 빛(가시광선) 관측을 동시에 수행하는데 세계 최초로 성공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2월 관측에 성공했다고 발표한 중력파는 블랙홀 충돌에서 나온 것이라 중력파 이외에 다른 신호는 감지되지 않았다. 블랙홀이란 존재가 가시광선 등 대부분의 입자를 빨아들였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하지만 이번 관측에서는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중력파는 물론, 감마선과 X선ㆍ가시광선에서도 중성자별의 충돌로 인한 천체 현상을 포착했다. 지난해 중력파 검출 성공이 피부로 미세한 진동을 느낀 것이라면, 이번 관측은 눈과 귀ㆍ코ㆍ혀 등 오감(五感)을 이용해 대상을 입체적으로 인지 한 셈이다.

한국천문연구원이 KMTNet 남아프리카 관측소가 포착한 GW170817의 모습. [사진 한국천문연구원]

한국천문연구원이 KMTNet 남아프리카 관측소가 포착한 GW170817의 모습. [사진 한국천문연구원]

임명신 서울대 초기우주천체연구단장은“이번 연구는 전례가 없는 중력파-전자기파-입자 신호의 동시 관측으로 중력파를 포함한 다중신호 천문학의 시작을 알린 것”이라며 “인류가 우주 천체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는 계기가 됐다”고 의미를 말했다.

다중관측에 성공한 중성자별은 지구에서 1억3000만 광년이나 떨어진‘은하 NGC 4993’에 위치했다. 연구자들이 이 중성자별의 이름을 ‘GW170817’이라 이름 지었다. 2017년 8월17일에 발견했다는 의미를 담았다. 한국시간 기준 8월17일 오후 9시41분, 한국중력파연구협력단이 포함된 라이고ㆍ비르고 과학협력단이 최초로 중성자별 충돌에 의한 중력파 발생현상을 관측했다.

중력파 종료 시각 약 2초 후에는 2초간의 짧은 감마선 폭발 현상이 포착됐고, 약 11시간 후에는 칠레천문대가 이 중성자별이 충돌하는 가시광선을 발견, 정확한 위치를 파악했다. 이후 한국천문연구원과 서울대가 각각 KMTNet 망원경과 이상각 망원경(LSGT) 등을 사용해 중력파 발생 약 21시간 후 가시광선 추적 관측을 시작했다.

특히 한국천문연구원이 네트워크를 통해 남아프리카공화국(케이프타운)과 칠레(나세레나)ㆍ호주(사이딩스프링) 세 곳에서 운영하는 KMTNet이 24시간 연속해서 관측한 자료는 중성자별 충돌이 킬로노바 현상을 일으켰다는 것을 밝히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킬로노바는 신성(Nova)의 1000배 정도 에너지를 내는 현상이라는 뜻으로, 신성과 초신성 사이에 해당하는 에너지를 내는 현상을 말한다. 지금까지 이론만으로 알려졌던 킬로노바가 관측으로 설득력 있게 증명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또 이와는 별도로 성균관대 연구팀도 멕시코에 있는 BOOTES-5 광학망원경과 남극에 있는 아이스큐브 뉴트리노 천문대를 이용해 이 현상을 관측했다.

이번 광학관측을 주도한 임명신 서울대 교수는“중력파와 광학관측의 협동연구를 통해 중력파 신호가 정확히 어디에 있는 어떤 천체에서 기인하는지를 최초로 밝혀낸 역사적 사건”이라고 말했다.

한국중력파연구협력단의 이창환 부산대 교수는 “블랙홀 충돌과는 다른, 우리 모두가 기다리고 있던 새로운 파원으로부터 중력파 검출이며, 중성자별의 핵입자물리학적 상태를 규명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10월16일자로 2편이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5편이 천문학 및 물리학 분야 최상급 저널인 피지컬 리뷰 레터스와 천체물리학 저널 레터스에 게재된다.

최준호 기자 joo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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