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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균이 막걸리와 사랑에 빠진 곳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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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3호 28면

이지민의 “오늘 한 잔 어때요?” <37> 두두

‘연극의 메카’ 대학로. 공연을 마친 연극인들은 주로 막걸리로 목을 축인다. 그러다가 마니아가 되기도 한다. 이선균·전혜진 부부는 봉하 막걸리, 문성근씨는 금정산성 막걸리 애호가다. 김수로씨는 샴페인 막걸리로 유명한 복순도가 막걸리의 왕팬이다. 술과 함께 토크를 하는 모 방송에 나가 “가장 좋아하는 막걸리”라고 소개할 정도다.

이 배우들이 막걸리를 만나 본격적인 사랑에 빠지게 된 곳은 ‘두두’. 혜화역 마로니에 공원 뒷길 한적한 골목에 위치한 주점이다. 생막걸리 30여 종, 살균 막걸리 40여 종, 증류주 20여 종 등 메뉴도 다양하다.

젊음·문화·예술을 대변하는 대학로에는 젊은 층의 입맛과 주머니 사정을 겨냥한 식당들이 많다. 이곳에서 5000원, 심지어 2만 원이 넘는 프리미엄 막걸리를 파는 건 무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막걸리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을 위한 ‘전진기지’가 되고 싶다는 사장님의 마음 덕분일까. 두두는 수많은 주점들이 명멸하는 가운데에도 여전히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대학로에서 8도 막걸리와 각종 전통주를 두루 즐길 수 있는 곳은 여기가 거의 유일하다.

박민우(39) 사장은 원래 제약회사 영업맨이었다. 술을 좋아하고 술을 대접하는 게 좋았던 그는 우연한 기회에 막걸리를 접하고는 푹 빠졌다. 혼자 공부하다 막걸리 학교와 가양주 연구소에서 술 빚기까지 배웠다. 직장 생활 6년차에 회사를 그만두고 2012년 1월 문을 연 곳이 여기다.

이름은 어떻게 짓게 되었는지 물었다. “사실 부끄러워서 얘길 안 하는데, 제가 서울예전 문예창작과를 나왔어요. 존경했던 학교 은사님인 오규원 시인의 유고 시집 이름이 『두두』입니다. ‘두두시도 물물전진(頭頭是道 物物全眞)’. “사물 하나하나가 전부 도이고 사물 하나하나가 전부 진리다”라는 선가의 말에서 가져온 이름이에요. 이 시집의 이름을 그대로 땄죠. 어감도 좋고 뜻도 좋잖아요.”

길었던 명절 연휴 기간에 두두는 휴무였다. 인터뷰로 사장님과 연락을 주고받다 가게 정비 차 잠시 출근한다는 얘길 듣고 달려갔다. 이야기 도중에도 손님들은 끊임없이 찾아왔다. 휴무 팻말을 보고 절규 하거나 비명을 지르는 커플을 십수 쌍 보았다. 동남아시아에서 온 듯한 외국 남자 두 분이 “막걸리 마시러 왔는데 영업 안 하세요?” 할 때는 깜짝 놀랐다. 웃으며 달려나간 사장님은 다른 막걸리 주점을 친절하게 안내했다.

“대로변도 아니고 골목에 있는데, 어떻게들 알고 이렇게 찾아 오신대요?” 신기한 마음에 던진 질문에 사장님은 웃는다. “감사할 따름이죠. ‘가볍게 막걸리 한 잔 할까?’ 하고 오셨다가 다른 막걸리도 맛보겠다고 다시 오시는 분들이 대부분이에요. 처음엔 알밤 막걸리나 검은콩 막걸리 같은 대중적인 막걸리를 찾지만, 나중엔 무감미료 막걸리나 프리미엄 막걸리군을 찾는 식으로 바뀌는 모습을 볼 때가 가장 뿌듯합니다.”

안주는 전·무침·탕 등 막걸리에 어울리는 음식들이다. 가장 인기 있는 메뉴는 명란구이·감자전·명태무침 보쌈. 여기에 최근 반응 좋다는 산마 어묵탕까지 4종의 음식에 어울리는 술을 매칭해보았다.

먼저 명란구이. 양념하지 않은 염장한 명란을 공수해 들기름에 구워낸다. 함께 나오는 오이 위에 명란·양파·청양고추를 올려 마요네즈에 찍어 먹는다. 짜지 않고 담백하다. 여기 어울리는 막걸리는 지장수 막걸리. 지장수는 황토를 휘저어 가라앉힌 물로 동해 약천골 황토 암반층에서 추출한다. 각종 미네랄이 들어있고 약성이 뛰어나 『동의보감』에서도 처방에 쓰는 물로 나온다. 이 천연 지장수를 사용해 신선함과 상큼함이 돋보이는 맛을 낸다. 명란구이의 담백함에 생동감을 더하고, 마요네즈의 느끼함을 씻어준다.

감자전은 가장 인기가 좋다. 막 부쳐낸 고소하면서도 쫀득한 감자전은 별미 중 별미다. 여기엔 봉하 막걸리다.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서 친환경농법으로 생산한 무농약 햅쌀을 전남 담양군 죽향도가에 위탁 생산해서 만든다. 노무현 전 대통령 고향인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의 ‘바보주막’에서 파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서울에서는 만나보기 힘든 이 막걸리를 찾아 오는 손님도 있다.

보쌈에는 속초에서 공수해온 명태를 얇게 찢어 참기름·야채에 무쳐낸 명태회 무침이 함께 나온다. 명태회 무침만 찾는 분들도 많아 단품으로도 주문할 수 있다. 단품 메뉴엔 더덕이 추가된다. 여기엔 해창 막걸리 12도를 곁들여 보자. 전남 해남 해창주조에서 만드는 막걸리로 요즘 가장 잘 나간다. 사장님이 가장 사랑하는 술이기도 하다. 메뉴판에 ‘박민우씨가 좋아하는 막걸리’라는 타이틀이 붙어 있을 정도다. 멥쌀과 찹쌀을 원료로 첨가물 없이 빚어냈다. 도수가 다소 높게 느껴질 수 있지만, 막걸리를 거의 원주 그 자체로 즐기는 느낌에 주당들은 환호한다.

마지막으로는 산마 어묵탕. ‘산에서 나는 장어’라는 별명을 가진 ‘마’를 갈아 넣었다. 소주파를 위한 메뉴로도 인기다.

전통 소주도 다양한데, ‘조선 3대 명주’를 샘플러로 맛볼 수 있다. 육당 최남선의 『조선상식문답』에 수록된 3가지 술인 감홍로·죽력고·이강주가 잔술로도 나온다.

인터뷰를 하며 홀짝홀짝 마시다 보니 흥이 점점 올랐다. “사장님 제가 두두로 이행시를 한번 지어볼게요.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며 막걸리 한 사발 들이키니, ‘두’잔, 세 잔, 네 잔 술이 술술 들어가는구나! 캬~” 가을이 좋다! 막걸리가 좋다!

이지민 : ‘대동여주도(酒)’와 ‘언니의 술 냉장고 가이드’ 콘텐트 제작자이자 F&B 전문 홍보회사인 PR5번가를 운영하며 우리 전통주를 알리고 있다. 술과 음식, 사람을 좋아하는 음주문화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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