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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적금 내면 해외여행 보내드려요” 노인들 속인 '홍보관'

중앙일보

입력

2014년 경기도에 사는 김모(71·여)씨는 '아웃렛'에 놀러 가자는 동네 친구들을 따라나섰다. 도착한 곳은 상가건물 2층의 강연장이었다. 노인들을 모아놓고 물건을 파는 이른바 '홍보관'이다. "장애인들이 만든 제품이다" "국내 농장에서 직접 생산한 제품이다" "시장에 정식 판매하기 전에 입소문을 내기 위해 판매한다" 등 그럴싸한 설명을 하며 여성용 속옷, 수의, 녹용 등을 함께 팔고 있었다.

"3년 동안 매달 12만원을 내면 여행을 보내준다"며 노년층을 속여 '회원제 적립형 여행상품'을 판매한 A(63)씨 등 4명이 경찰에 붙잡혔다. [사진 서울송파경찰서 제공]

"3년 동안 매달 12만원을 내면 여행을 보내준다"며 노년층을 속여 '회원제 적립형 여행상품'을 판매한 A(63)씨 등 4명이 경찰에 붙잡혔다. [사진 서울송파경찰서 제공]

김씨가 솔깃한 상품은 '회원제 적립형 여행 상품'이었다. 홍보관 사람들은 1계좌당 360만원을 3년 동안 나눠서 불입하면 만기가 됐을 때 여행을 보내준다고 홍보했다. 미주, 유럽은 물론 크루즈 여행까지 원하는 곳을 골라 갈 수 있고, 가까운 동남아로 가면 1계좌로 2명이 갈 수 있다고 했다. 김씨는 3년 뒤 남편이 칠순이 되는 해에 자식들에게 부담 주지 말고 부부끼리 훌쩍 여행을 다녀올 생각으로 2계좌를 신청해 매달 꼬박꼬박 24만원을 여행사 계좌로 이체했다.

하지만 만기가 된 올해, 여행사는 "신청 절차가 따로 있다. 3개월을 기다려라" "일주일 더 기다려라" 하며 시간을 끌었다. 얼마 뒤 여행은 커녕 원금도 돌려받지 못한 채로 여행사는 연락이 끊겼다. 뒤늦게 찾아간 사무실은 텅 비어있었다. 김씨를 만난 건물 주인은 "이렇게 찾아온 사람이 지금 한둘이 아니다"고 말했다.

일당은 여행 상품에 가입한 사람들에게 회원증서를 만들어 주며 안심시켰다. [사진 서울 송파경찰서 제공]

일당은 여행 상품에 가입한 사람들에게 회원증서를 만들어 주며 안심시켰다. [사진 서울 송파경찰서 제공]

서울 송파경찰서는 김씨를 비롯해 노년층 72명에게 총 3억 4900만원을 받아 챙긴 설립운영자 A(63)씨 등 4명을 사기·방문판매법 위반 혐의로 입건해 기소의견으로 송치했다고 13일 밝혔다. 이들은 2013년 11월부터 2015년 3월까지 전국 28개 지역에서 노인을 대상으로 하는 '홍보관'을 2~3일씩 운영하면서 적금형 여행 상품을 판매했다. 여행사 홈페이지와 책자까지 만들어두고, 가입한 사람에게 회원 증서를 나눠주며 안심시켰다. 가입자들에게 받은 돈은 생활비와 사무실 운영비 등으로 썼다.

경찰은 "여행 상품에 가입했다가 돈을 돌려받지 못한 피해자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며 "유사한 피해를 당한 경우 적극적으로 경찰에 신고해달라"고 당부했다.

이현 기자 lee.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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