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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분석] 조계종 총무원장 선거, '종단 어른' 대 '아웃사이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대한불교 조계종이 오는 12일 ‘제35대 총무원장 선거’를 치른다. 모두 4명의 후보가 출마했다가 막판에 원학(전 봉은사 주지) 스님이 사퇴했다. 현재 설정 스님과 수불 스님, 그리고 혜총(전 포교원장) 스님이 최종 후보로 남아 있다.

왼쪽부터 '제35대 대한불교 조계종 총무원장' 선거에 입후보한 설정 스님, 수불 스님, 혜총 스님.

왼쪽부터 '제35대 대한불교 조계종 총무원장' 선거에 입후보한 설정 스님, 수불 스님, 혜총 스님.

선거의 양상은 크게 두 세력의 싸움이다. 기존에 구축돼 있는 종단의 정치지형을 그대로 이어가려는 측과 이에 맞서 새판을 짜려고 하는 측이다. 수덕사 방장을 역임한 ‘종단의 어른’ 설정 스님과 서울ㆍ부산 등지에서 안국선원을 이끌며 ‘재가자 수행’의 붐을 일으켰던 수불 스님의 맞대결이라고 볼 수 있다.

수덕사 방장을 역임한 설정 스님은 "승풍 진작"을 출마의 핵심 이유로 꼽았다. [사진 수덕사]

수덕사 방장을 역임한 설정 스님은 "승풍 진작"을 출마의 핵심 이유로 꼽았다. [사진 수덕사]

범어사 주지를 역임한 수불 스님은 "수행과전법에 무게중심을 두지 않으면 한국 불교가 곧 위기에 봉착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진 안국선원]

범어사 주지를 역임한 수불 스님은 "수행과전법에 무게중심을 두지 않으면 한국 불교가 곧 위기에 봉착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진 안국선원]

◇몸살 앓는 총무원장 선거제도=조계종 총무원장은 임기가 4년이다. 1회에 한해 중임이 가능하다. 이번에 물러나는 자승 총무원장도 재임에 성공해 8년 임기를 마친다. 총무원장 선거는 현재 간접선거다. 종회의원 81명, 24개 교구본사별로 10명씩(총 240명)해서 모두 321명이 투표권을 갖는다.

종단 지형의 수성이냐, 새 판 짜기냐, #8년 연임한 자승 총무원장의 후임은? #몸살 앓는 총무원장 선거제도 #직선제 요구 거세고, 선거 때마다 합종연횡 #

선거인단의 숫자가 작다 보니 돈으로 표를 매수하려는 폐해가 선거 때마다 불거진다. “△△본사의 선거인단을 인사동 XX식당에 모아놓고 OO후보가 아예 보따리에 현찰을 싸 가지고 와서 안겼다” “선거인단 한 사람당 XXXX 주면 떨어지고, △△△△만원을 주면 당선된다”는 소문이 마치 ‘선거판의 철칙’마냥 떠돌 정도다.

이 때문에 조계종 구성원들 사이에서는 ‘총무원장 직선제’에 대한 요구가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그러나 직선제로 선거제도를 바꾸려면 종헌(조계종단의 헌법)을 개헌해야 한다. 결국 종회(국회에 해당)에서 결정할 사안인데, 종회를 기존의 정치권이 장악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번에도 직선제 개헌을 요구하는 집회 등이 수차례 있었지만 관철되지는 못했다. 이제 ‘총무원장 직선제 개헌’은 차기 집행부의 과제로 넘어간 상태다.

◇‘종단 어른’ 대 ‘아웃사이더’=기호 1번 설정 스님은 수덕사 방장을 역임했다. 방장은 총림(선원ㆍ강원ㆍ율원을 모두 갖춘 사찰)의 최고 어른이다. 불교계에서는 “설정 스님이 종단의 상징적 수장인 종정 선거에 나가면 모를까, 방장까지 지내신 분이 왜 굳이 총무원장 선거에 나서는지 모르겠다”는 시선도 적지 않다.

수덕사 정혜사에 주석할 때 설정 스님은 텃밭을 직접 가꾸며 덕숭총림에 내려오는 '선농일치'의 가풍을 몸소 실천하기도 했다. [사진 수덕사]

수덕사 정혜사에 주석할 때 설정 스님은 텃밭을 직접 가꾸며 덕숭총림에 내려오는 '선농일치'의 가풍을 몸소 실천하기도 했다. [사진 수덕사]

이런 지적을 출마 선언장에서 설정 스님에게 직접 던졌다. 설정 스님은 “딱 하나 이유를 꼽는다면 ‘승풍진작’때문”이라고 답했다. “솔직히 저는 방장이고 원로다. 제 안위나 편안함만 생각한다면 굳이 여기에 올 이유가 없다. 그러나 국민과 사부대중이 존경하고 신뢰받는 종단을 만들고 싶었다. 절에 들어가 머리를 깎는 순간 공인(公人)이다. 한국불교가 갈등이 많은 건 공심(公心)을 잃어서 그렇다”며 설정 스님은 ‘승풍진작’에 방점을 찍었다. 이와 함께 설정 스님은 “이번 선거에서 단돈 100원도 불법적으로 쓰지 않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기호 2번 수불 스님은 부산 범어사 주지를 역임했다. 서울과 부산 등 도심에 안국선원을 설립해 재가자 수행과 전법의 붐을 일으킨 인물이다. 도심 선원을 기반으로 한 재력도 탄탄하다. 수불 스님은 기호 1번에 비하면 일종의 ‘아웃사이더’다. 선방 안거를 통한 수행 이력보다 ‘재가자를 향한 간화선 대중화’ 활동에 무게를 둔다. 그래서인지 종단 정치판에는 세력이 약한 편이다.

서울과 부산 등 도심에 꾸린 안국선원을 통해 수불 스님은 간화선 수행의 대중화에 이바지하고 있다. 현대인을 대상으로 생활 속의 선수행을 보급하고 있다. [사진 안국선원]

서울과 부산 등 도심에 꾸린 안국선원을 통해 수불 스님은 간화선 수행의 대중화에 이바지하고 있다. 현대인을 대상으로 생활 속의 선수행을 보급하고 있다. [사진 안국선원]

출마 선언장에서 만난 수불 스님은 “지난 8년간 종단이 정체된 느낌이다. 저는 그걸 ‘죽음의 평화’라고 본다. 주위에서는 기존 정치구도에 도전하는 저에게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 말도 한다. 그러나 승가는 ‘수행과 전법’에 전념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한국 불교에 미래가 없다. 승가에 대한 신뢰가 많이 추락했다. 그걸 회복하고 싶다”며 출마 이유를 피력했다.

◇조계종 선거판의 정치 지형=조계종단에는 ‘종책 연구모임’이란 명칭의 정치적 계파들이 있다. 화엄회ㆍ법화회ㆍ금강회ㆍ무차회ㆍ무량회ㆍ보림회 등이다. 사실상 이들에 의해 종단의 정치권력이 좌지우지된다. 그렇다고 뚜렷한 철학이나 정치적 소신에 의해 종책모임이 운영되는 건 아니다. 각 계파의 정치적 득실에 따라 총무원장 선거 때마다 합종연횡을 거듭하는 편이다.

현재는 ‘불교광장’이라는 이름으로 화엄회와 법화회 등 여러 종책모임이 두루 연합한 거대여권이 꾸려져 있는 상황이다. 종회의원도 설정 스님측은 50여 명, 수불 스님측은 10여 명을 확보한 것으로 파악된다. 비구니 종회의원 10명은 중립적 성향이다.

설정 스님은 ‘거대 여권’의 지원을 받고 있다. 만약 당선된다면 '정치적 빚'을지는 셈이다. 그런 빚으로부터 벗어나 과연 종단을 독립적이고 소신 있게 꾸릴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반면 수불 스님은 ‘기성 정치판’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기존의 벽을 깨야 한다. '새로운 불교, 새로운 종단'에 목말라하는 유권자에게 얼마나 신선함과 진정성을 가지고 어필할 수 있는지가 승부수다.

백성호 기자 vangog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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