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 게을리해 해고돼도 투사로 둔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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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옆자리의 동료와 소속조직에 엄청난 피해를 주면서까지 심각하게 업무를 게을리한 자도, 폭력을 유일한 수단으로 삼는 자들도 해고되면 희생자나 투사로 둔갑하는 기막힌 조직에서 희망은 없다. 노동조합은 단지 그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공간일 뿐….'

국민건강보험공단 사회보험노조가 20일과 21일 전면파업 중인 가운데 노조 지부장이었던 이모씨가 최근 노조 홈페이지에 이런 글을 올렸다. 사측의 인사조치까지 문제삼으며 파업 등 강경일변도로 치닫고 있는 노조 집행부를 비판한 것이다. 이 글은 20일 오전 현재 조회수가 3650여 건(사회보험노조원은 총 5300여 명)에 달하고 추천수도 148건에 이르는 등 동료 조합원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사회보험노조는 2월 말 공단 측과의 임금협상이 결렬되자 '생활임금 보장''해고자 복직' 등을 요구하며 지난달 16일 부분파업을 시작했다. 노조 측은 파업 중이던 지난달 17일과 24일 공단이 총 1260명에 대해 전보인사를 하자 "쟁의 기간 중 인사조치는 무효"라며 발령지로의 출근을 거부하도록 지시했다. 이에 공단은 인사조치 후 한 달가량 새로 배치된 곳으로 출근을 하지 않은 조합원 114명에 대해 18일 해임.파면 등 중징계를 내렸다.

노조 측이 '탄압'사례로 꼽고 있는 조합원 가운데는 지난해 공단 특별감사에서 근무 태만으로 적발돼 올해 초 직위해제된 26명도 포함돼 있다. 이들 중 한 노조원은 5개월간 근무해야 하는 109일 중 일을 한 날이 39일 밖에 안돼 업무복귀를 지시하는 지사장에게 "비노조원인 간부와는 개인적으로 말하지 않는다"며 복귀를 거부한 경우도 있었다. 또 지난 13일 밤엔 해고자 등 5명이 서울 마포구 공단 건물 인근에서 노사협력담당 부장을 집단폭행해 형사고발됐다.

노조원들조차 일부 노조원의 지나친 행태와 이를 감싸는 듯한 조합 지도부에 불만스러워하고 있다. 올 들어 자발적으로 노조를 탈퇴한 조합원이 145명에 달한다.

이 같은 사태는 공단 측이 자초한 측면도 있다. 1998년과 99년 인사를 했다가 노조가 원거리 전보 반대를 주장하며 파업하자 철회한 바 있다.

노조 관계자는 "이번 인사 때 제주도에서 근무하던 40대 여성조합원들을 서울로 전보조치하는 등 노조원에 대한 사측의 탄압이 잇따르고 있어 파업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김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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