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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째 고소한 '청와대 참깨'로 참기름 만든 경북 예천의 제유소 사람들

중앙일보

입력

매년 명절 청와대는 전직 대통령·정부 고위 공직자·사회보호계층 등에 추석선물을 보낸다. 올 추석 청와대는 경북 예천 참깨·경기 이천 햅쌀·강원 평창 잣·충북 영동 피호두·전남 진도 흑미 등 다섯 종의 지역 농산물이 고루 담긴 선물 세트를 7000명에게 보냈다.

임금님 진상품으로 유명한 경북 예천 참깨, 청와대 추석 선물 포함 #예천, 토양에 모래 많고 덥고 건조한 날씨로 참깨 재배에 좋은 조건 #추석 앞둔 예천 시장 곳곳 제유소서 참기름 짜는 고소한 냄새 진동 #예천 참깨로 25년간 참기름 짜온 제유소 사람들 만나 보니

2017년 청와대 추석 선물세트. [사진 김광진 전 의원 인스타그램]

2017년 청와대 추석 선물세트. [사진 김광진 전 의원 인스타그램]

이 중 예천 참깨는 청와대 명절 선물에 자주 포함되는 단골 메뉴다. 앞서 2012년에도 예천 참깨로 만든 참기름이 청와대 추석 선물 세트에 들어갔다. 오늘날뿐만 아니라 수백년 전부터 예천 참깨는 귀한 곡물로 인정받았다. 『세종실록 지리지』에도 예천 참깨가 임금님께 올리던 진상품이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예천 참깨가 오랜 세월 그 명성을 유지하는 이유는 뭘까.

농민들이 참깨를 털며 수확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다. [중앙포토]

농민들이 참깨를 털며 수확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다. [중앙포토]

'가문 해 참깨는 풍년이 든다' '깨는 불을 담아 부어야 풍년이 든다'는 속담이 있듯이 예천은 여름에 덥고 건조해 참깨 재배에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또 낙동강 상류의 비옥한 사질(砂質) 토양은 모래의 비율이 높아 배수가 잘돼 예천은 전국에서 제일가는 참깨 생산지로 명성을 얻고 있다.

경북 예천 참깨. [사진 농부창고]

경북 예천 참깨. [사진 농부창고]

27일 경북 예천군 예천읍의 예천중앙시장. 오일장이 들어선 이날 참기름을 짜는 제유소 앞에는 허리가 구부정한 할머니들이 참깨 포대를 바닥에 내려놓고 줄지어 앉아 있었다. 예천군 지보면에 사는 박순자(70) 할머니는 "이게 내가 직접 재배한 예천 지보 참깨아입니꺼. 참기름으로 짜서 추석 전에 사돈 내외에 보내려고 서둘러 왔는데 오늘따라 사람이 많아서 큰일났다 안카나"고 말하며 참깨를 들어보였다. 예천 중앙시장 곳곳에는 오래된 제유소 45곳이 있다. 이날 고소한 참깨 볶는 냄새가 시장 골목 안을 가득 채웠다.

 경북 예천의 삼형제참기름 집. 사람들이 포대에 예천 참깨를 들고 찾아온다. 예천=백경서 기자

경북 예천의 삼형제참기름 집. 사람들이 포대에 예천 참깨를 들고 찾아온다. 예천=백경서 기자

2대째 참기름을 짜고 있는 제유소 '삼형제참기름' 집 앞에도 손님이 끊이질 않았다. 예천군 예천읍에 위치한 삼형제참기름은 25년간 예천 참깨로 참기름을 짜왔다. 부모님과 아들 삼형제가 합심해 운영한다. 아버지대도 삼형제, 자식도 삼형제여서 가게 이름을 삼형제참기름이라고 지었다.

경북 예천의 삼형제참기름 집. 예천=백경서 기자

경북 예천의 삼형제참기름 집. 예천=백경서 기자

첫째 아들 임환걸(41)씨는 "원래 예천 용문면에서 1500평 규모의 참깨농사를 지었다. 직접 깨를 수확하면서 예천 참깨의 맛과 효능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됐다. 93년부터 예천 참깨의 고소함을 살려 참기름을 짜보자 싶어 제유소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경북 예천의 한 참깨밭. [사진 농부창고]

경북 예천의 한 참깨밭. [사진 농부창고]

평소에는 예천 각지에서 직접 재배한 참깨를 들고오는 손님이 90%, 제유소에서 친척들이 재배한 참깨를 공수해 참기름을 짜서 파는 비율이 10%정도다. 추석·설 대목에는 참기름을 선물하려는 손님이 많아 비율이 반반으로 바뀐다.

20년간 이곳을 찾았다는 김순분(60)씨는 "참기름을 짰는데 정직한 맛이 느껴지더라. 참깨 농사를 지어봐서 그런지 참깨의 고소한 향을 아는 것 같았다. 예천 내 제유소는 다들 참깨에 일가견이 있어 진한 참깨 맛을 그대로 내려고 한다"고 말했다.

경북 예천의 삼형제참기름 집. 첫째 아들 임환걸씨가 참기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예천=백경서 기자

경북 예천의 삼형제참기름 집. 첫째 아들 임환걸씨가 참기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예천=백경서 기자

이날 제유소에서는 참깨가 참기름으로 변신하는 과정도 지켜볼 수 있었다. 어머니 양말순(60)씨가 손님이 가져온 참깨를 깨끗한 물에 휘저어 가면서 씻는다. 채로 받치면 돌 등 불순물이 걸러진다. 양씨는 "대부분 참깨를 미리 씻어서 바짝 말려 가져온다. 참깨에 수분이 없어야 진한 기름을 짤 수 있다"고 말했다.

경북 예천의 삼형제참기름 집. 어머니 양말순(60)씨가 참깨를 씻고 있다. 예천=백경서 기자

경북 예천의 삼형제참기름 집. 어머니 양말순(60)씨가 참깨를 씻고 있다. 예천=백경서 기자

다음은 참깨를 볶아내는 과정이다. 이곳에서는 볶는 온도를 155도 이상 올리지 않는다. 200도까지 온도를 올려 볶아내면 순간적으로 고소한 향이 더 날 순 있지만 탄 참깨를 먹는 거나 다름이 없다. 참깨를 볶는 기계의 회전속도는 빠르게, 천천히를 반복한다. 빨리 돌리면 참깨의 속이 익고, 천천히 돌리면 겉이 익는다. 볶는 시간은 15~20분 정도 걸린다. 무조건 기계에 의존하지는 않는다. 첫째 아들 임씨는 "전체적으로 봤을 때 노르스름할 정도로 볶아야 미네랄 등 영양분이 남아있다. 참기름 색깔이 검은 색일수록 고소한 향을 강하게 내기 위해 오래 볶았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예천 삼형제참기름 집에서 참깨를 볶고 있다. 예천=백경서 기자

예천 삼형제참기름 집에서 참깨를 볶고 있다. 예천=백경서 기자

삼형제는 모두 '참깨 박사'다. 깨를 볶을 때 나오는 연기만으로도 좋은 깨인지 구분이 가능하다. 주말마다 와서 일을 도와준다는 셋째 아들 임병준(35)씨는 "중국산 등 참깨와 예천 참깨의 차이는 껍질 두께다. 껍질이 두꺼우면 볶을 때 연기가 많이난다. 예천 참깨 중에서도 낙동강 자락에 위치한 지보면의 참깨는 껍질이 얇아 연기가 적다. 대신 기름양이 많고 고소한 맛이 더하다"고 설명했다.

경북 예천의 삼형제참기름 집. 볶은 참깨를 정제하는 과정은 두 번만 거친다. 영양분이 빠질 우려가 있어서다. 예천=백경서 기자

경북 예천의 삼형제참기름 집. 볶은 참깨를 정제하는 과정은 두 번만 거친다. 영양분이 빠질 우려가 있어서다. 예천=백경서 기자

다음은 참깨를 짜서 기름을 내는 과정이다. 정제된 참깨를 압착기에 넣자 기계는 630t의 압력을 가했다. 살대 사이로 참기름이 흘러나왔다. 첫째 아들 임씨는 압착기를 알아보러 전국의 제유소를 돌아다녔다고한다. 이전에 쓰던 전통 누름틀 방식으로는 수증기가 들어갈 수밖에 없는 구조여서다. 그는 참기름에 수분이 아예 들어가지 않으면 훨씬 고소함이 더해지고 보관기간도 늘어날 것이라고 판단했다. 부모님과의 상의 끝에 지난 3월 최신식 압착기 3대를 들여왔다. 실제 압착기를 이용한 참기름은 수분이 전혀 들어가지 않아 1년가까이 보관해도 첫맛과 끝맛이 비슷하다고 한다.

예천의 삼형제참기름집. 참깨를 압착기로 누르면 참기름이 흘러 나온다. 예천=백경서 기자

예천의 삼형제참기름집. 참깨를 압착기로 누르면 참기름이 흘러 나온다. 예천=백경서 기자

이날 참깨 4되(4.8㎏)로 350㎖ 소주병 7병 정도의 참기름이 나왔다. 마른 참깨가 참기름으로 변신하는 시간은 50분 정도 걸렸다. 주문이 밀린 만큼 온 가족이 분주히 움직였다. 꼼꼼함은 어머니의 몫이었다. 아들이 참깨를 조금 오래볶는다 싶자, 어디선가 "다 탄다~"라는 어머니의 잔소리가 들렸다. 멀리서 참깨를 씻으면서 시간까지 챙기는 어머니의 잔소리에 아들은 정겹게 웃는다. 부모님은 참깨 농사를 짓고, 참깨를 볶아 아들 셋을 키웠다. 삼형제가 이 제유소에 더 애착을 가지는 이유다.

경북 예천의 삼형제참기름 집. 부모님은 참기름을 짜서 삼형제를 키웠다. 예천=백경서 기자

경북 예천의 삼형제참기름 집. 부모님은 참기름을 짜서 삼형제를 키웠다. 예천=백경서 기자

◆역대 대통령 명절 선물은?=역대 대통령의 명절 선물은 당시 대통령의 성격이나 시대에 따라 변화했다. 사회 분위기에 따라서 선물이 가진 의미도 달랐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전두환 전 대통령은 명절에 인삼을 보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명절에 격려금을 주로 전달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명절 선물 대상은 주로 고위 정부 관계자였다. 명절 선물이 여야 정치인 등을 관리하는 수단이었다는 해석이다.
지역특산물이 대세가 된 건 김영삼 전 대통령부터였다. 김 전 대통령은 멸치잡이를 하는 부친이 보내준 거제도 멸치를 선물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고향 전남 신안의 김·한과 등으로 선물세트를 꾸렸다. 점점 보내는 대상의 범위도 늘어났다. 정부 관계자·종교·문화계 인사부터 보훈가족·유공자 등 소외계층까지 약 1만명에게 명절 선물을 보냈다.
노무현 전 대통령때부터는 각지의 특산물을 고루 섞기 시작했다. 지역 감정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미에서다. 2003년 청와대는 추석 호남의 지리산 복분자와 경남의 한과를 묶은 지역 통합 선물을 선보였다. 또 각 지역의 전통주를 선물하기도 했다. 반면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이명박 전 대통령은 선물에서 주류를 제외했다. 대신 인제 황태·논산 대추·부안 재래김·통영 멸치·달성 4색 가래떡 등 지역특산물을 보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명절 선물로 전남 장흥 육포·경기 가평 잣·대구 유가 찹쌀을 주로 보냈다.

예천=백경서 기자 baek.kyungse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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