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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식의 寫眞萬事]이 쓸쓸한 추석에 대하여

중앙일보

입력

 추석을 앞두고 예절 교육을 받는 아이들.[연합뉴스]

추석을 앞두고 예절 교육을 받는 아이들.[연합뉴스]

  어렸을 때 부모를 잃어 고아가 되거나, 중년에 부인이 죽어 홀아비가 되는 것, 또는 중년에 남편이 죽어 기댈 곳이 없어진 과부가 되는 것, 그리고 늘그막에 자식이 죽어 의탁할 언덕이 사라진 노인이 되는 것. 이 네 가지가 인간이라면 피하고 싶은 불행이다.
 시대가 변해 ‘돌싱’을 바라보는 시각이 예전같지 않고 ‘모태 솔로’니 ‘졸혼’이니 하면서 결혼의 의미와 관계의 중요함을 별 것 아닌 것으로 평가절하하는 경향이 있기는 해도, 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은 것이 그 네 가지 불행인 것은 분명하다.

  네 가지 불행의 본질은 인간관계의 시작점인 가정 내 친족관계가 붕괴된다는 데 있다. 가정은 공기나 물과 같은 속성이 있다. 평범함이 유지되는 시간에는 보통 그 중요성을 인식조차 못하고 지나가지만, 어느 순간 울타리가 붕괴되기 시작하면 견디기 힘든 고통에 그 어떤 보호 장치 없이 그대로 노출되는 신세가 된다.
 모든 스트레스가 고통이지만 대부분의 인간은 관계의 상실에서 비롯된 스트레스에 특히 취약하다. 관계가 인간을 만든다. 인간은 결국 관계다. 관계의 대상이 어느 날 갑자기 눈앞에서 사라지는 경험은 상상 이상으로 깊은 고통을 남긴다. 고통이란 극복되는 것이 아니다. 그저 견디는 것이다. 견디든 말든, 상처는 남고, 어떤 상처는 죽을 때까지 치유되지 않는다.

 추석 음식을 마련하는 주부의 노고를 덜어주는 차례 음식 판매 행사. [연합뉴스]

추석 음식을 마련하는 주부의 노고를 덜어주는 차례 음식 판매 행사. [연합뉴스]

  다시 추석이 됐다. 차가 밀려도,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이루고 싶은 바를 아직 이루지 못해 마음이 불편해도, 하던 것을 잠시 내려놓고, 사람들은 익숙한 장소, 익숙한 관계를 찾아 떠나고 있다.
연어처럼.

  도로는 강이다. 고속도로를 가득 메운 저 차량의 행렬은 시간의 강을 거슬러 익숙한 곳으로 돌아가는 인간들의 회귀본능이 발현되는 현장이다. 저들이 찾아가는 그곳에, 그동안 잊고 살았던, 공기 같고 물 같은, 사람이 있고, 관계가 있다.

  저들은 찾아갈 곳이 있는 사람들이다. 찾아갈 곳, 찾아야 할 사람을 잃은 사람은 어디를 가야 하나.

귀성 차량들.[중앙포토]

귀성 차량들.[중앙포토]

 추석 차례상 차리기 행사.[연합뉴스]

추석 차례상 차리기 행사.[연합뉴스]

조상의 묘소를 찾은 사람들.[중앙포토]

조상의 묘소를 찾은 사람들.[중앙포토]

  세월이 흐른다. 세월은 어떤 경우에도 멈추는 법이 없다. 그러나 어머니 아버지를 잃은 사람들의 정신 일부분은 그분들이 돌아가신 그 순간에 딱 멈춰 정지화면처럼 꼼짝하지 않기도 한다. 그 자신이 이미 훌쩍 커버린 아이들의 부모가 되었어도 그건 아이들과의 관계일 뿐, 부모를 잃는 과정에서 상처 입은 정신의 일부는 언제까지나 어머니 아버지의 어린 자식으로 남고 싶은 욕망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건, 사랑하는 사람을 어쩔 수 없이 떠나보낸 자의 트라우마일 수도 있고,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지워지지 않는 기억 때문이기도 하며, 유한성의 벽을 넘을 수 없는 모든 인간의 탄식이기도 하다. 무서운 것을 피해 뛰어들면 “어이구 내 새끼”하며 토닥여주던 어머니 품의 체취는, 숨 쉬는 한 결코 놓치고 싶지 않은 기억이다. 아련하기도 하고 아득하기도 한데 결국 사람도, 체취도 잃고 마는 게 우리의 운명이다.

풍성한 가을 들판. [중앙포토]

풍성한 가을 들판. [중앙포토]

  사람이 가면 관계도 간다. 사람이 떠나고, 관계는 희미해졌으나 그것들이 남긴 기억들은 머릿속에 남아 오늘과 과거를 연결하는 다리가 된다. 오늘 같은 날, 그 다리를 건너, 보고 싶은 얼굴, 잊을 수 없는 체취, 주고받은 말들을 찾아 헤맨다. 고속도로를 가득 메운 차량의 후미등은 그리움을 눈앞에 둔 설레임이 반짝이는 것이다. 이것이 현실이다. 그 현실에 같이 참여하고 싶지만, 찾아갈 곳이 없어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는 자들은, 있던 자리에 그대로 서서 기억의 다리 주변을 서성거릴 뿐이다. 현실과 비현실이 눈꺼풀 한 겹의 두께로 갈린다. 원래 보고 싶은 것들은 잘 보이지 않는다. 더 잘 보기 위해, 눈을 감는다.

카르페 디엠.
과거는 소유할 수 없고, 미래는 실현되지 않았다. 현재만이 내 것이다. 노릇노릇하게 익어가는 전들, 코끝을 스쳐 마당으로 번져나가던 음식 냄새, 밭고랑을 닮아가는 어머니의 주름, 말 수가 부쩍 줄어든 아버지의 기침, 달고 기름진 명절 음식이 가득 차려진 밥상, 낮은 천장에 눌려 웅웅거리는 웃음과 원망들...
각자 저마다의 모습으로 마음에 담을 오늘의 단상들은, 언젠가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지워지지 않는 정지화면으로 남아, 우리가 어디서 왔고, 어디에 있으며, 어디로 가는지 규정하는 정신의 한 부분이 될지도 모른다.
그날이 올 때 까지. 당신도, 나도, 카르페 디엠!

김춘식 중앙일보 포토데스크 부국장 kim.choonsi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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