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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보이'로만 알려졌던 휴 헤프너의 또다른 얼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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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7일, 91세를 일기로 타계한 플레이보이 창업자 휴 헤프너.
생전 젊은 여성들에 둘러싸인 모습, 죽어서도 매럴린 먼로 묘지 옆에 안장될 그를 호색한으로 기억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그의 의외의 면모를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창간호의 매럴린 먼로 외에도 수퍼모델 케이트 모스(왼쪽)와 배우 제시카 알바 등 당대 최고의 셀럽들이 플레이보이 표지를 장식했다. [중앙포토]

창간호의 매럴린 먼로 외에도 수퍼모델 케이트 모스(왼쪽)와 배우 제시카 알바 등 당대 최고의 셀럽들이 플레이보이 표지를 장식했다. [중앙포토]

1953년 발간된 잡지 플레이보이 창간호는 매럴린 먼로의 누드사진을 게재하면서 ‘섹스 잡지’라는 낙인이 찍혔다. 이에 헤프너 자신은 “이 잡지를 섹스잡지라고 생각한 적은 한번도 없다. 나는 언제나 라이프스타일 매거진을 만들고 있다고 믿고 있다. 섹스는 그 중 중요한 요소 중 하나”라고 반박하곤 했다.

낙태자유권 등 여성인권운동, 성소수자 지지 #60년대 흑인도 파티에 초대해 광고 끊기기도 #40년간 살았던 플레이보이 맨션에서 #조만간 '마지막 성대한 추모파티' 예정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당시 작가로도 활약했던 헤프너는 55년 필명으로 SF소설 『The Crooked Man』을 발표했다. 이성애자인 남성이 동성애자가 다수인 세계에서 멸시와 핍박을 당하는, 당시로선 매우 진보적이고 파격적인 내용이었다. 예상대로 비난여론이 쇄도했다.

그는 “동성애자의 세계에서 이성애자를 핍박하는 것이 잘못이라면 이성애자의 세계에서 동성애자를 핍박하는 것 역시 잘못”이라고 반박했다. 훗날 헤프너는 동성결혼을 지지했고 “우리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싸움”이라며 LGBT(성소수자) 단체들의 활동을 옹호했다.

1970년대 LA의 플레이보이 맨션에서 젊은 여성들에 둘러싸여 기념촬영한 휴 헤프너. [AP=연합뉴스]

1970년대 LA의 플레이보이 맨션에서 젊은 여성들에 둘러싸여 기념촬영한 휴 헤프너. [AP=연합뉴스]

헤프너는 누구보다 여성의 권리를 주장하고 여성운동을 지지한 사람이다. 여성이 남성에 종속적이던 그 시절, 그는 일찍이 남녀가 동등하게 섹스를 즐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성의 권리를 잡지 칼럼을 통해 여러 차례 강조하곤 했다. 때론 여성필자들의 직접 칼럼을 쓰도록 했는데, “당신들(남성)이 우리 이야기에 귀 기울일 생각이 없고, 우리를 한낱 고기 덩어리로밖에 보지 않는다면 앞으로 우리는 당신들과 어울리지 않겠다”는 내용도 여과없이 잡지에 실렸다. 헤프너가 이에 대한 지지를 공개적으로 표명한 것은 물론이다.

바니걸스 차림의 플레이메이트들과 함께 한 휴 헤프너. 자주색 가운과 흰색 모자는 그의 상징이었다. [AP=연합뉴스]

바니걸스 차림의 플레이메이트들과 함께 한 휴 헤프너. 자주색 가운과 흰색 모자는 그의 상징이었다. [AP=연합뉴스]

이밖에도 여성의 피임약 복용과 낙태자유권을 지지했다. 여성잡지 ‘코스모폴리탄’을 창간한 초대 편집장 헬렌 걸리 브라운이 당시 헤프너의 이런 철학에 영향을 받았다는 건 유명한 일화다.
흑인이 공공시설을 이용할 수 없었던 시절, 헤프너는 흑인을 자신의 파티에 초대하기도 했다. 당시 파티 모습이 TV를 통해 방송되면서 항의가 쇄도했고, 기업 스폰서들이 광고를 중단하기도 했지만 그의 입장엔 변함이 없었다.

2009년 저택을 매각할 당시 헤프너의 모습. 당시 1억 달러(약 1200억원)에 옆집 젊은 기업인에게 팔았다.살아있을 동안은 계속 이 집에 산다는 그의 조건이 받아들여졌다. [중앙포토]

2009년 저택을 매각할 당시 헤프너의 모습. 당시 1억 달러(약 1200억원)에 옆집 젊은 기업인에게 팔았다.살아있을 동안은 계속 이 집에 산다는 그의 조건이 받아들여졌다. [중앙포토]

또 그가 만든 ‘플레이보이 재단’은 표현과 종교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활동을 지속적으로 해왔으며, 그 역시 이런 활동에 적지 않은 돈을 기부했다. 여성운동가인 카밀 팔리아는 인종과 성별, 섹스를 망라한 모든 차별에 맞서 싸워온 헤프너를 가리켜 “사회혁명의 근본을 설계한 인물 중 하나”라고 말했다.

플레이보이 맨션에서 마지막 추모 파티 예정

고인이 수십년을 생활했던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플레이보이 맨션의 소유주는 옆집에 사는 대런 메트로포울로스(33)다. 그리스계 투자회사인 메트로포울로스의 2세 기업인이다. 2009년 8월 헤프너로부터 1억달러(약 1200억원)에 플레이보이 맨션을 매입했다. 헤프너는 저택을 매각한 뒤에도 자신이 살아있는 동안엔 이곳에 살 수 있도록 하는 조건을 제시했고, 메트로포울로스가 이를 받아들여 매매가 성사됐다.

패리스 힐튼(오른쪽) 등 당대의 셀럽들의 누구나 한번씩은 플레이보이맨션의 파티에 다녀갔다. [중앙포토]

패리스 힐튼(오른쪽) 등 당대의 셀럽들의 누구나 한번씩은 플레이보이맨션의 파티에 다녀갔다. [중앙포토]

메트로포울로스가 헤프너를 추모하는 ‘마지막 성대한 파티’를 조만간 개최하겠다고 발표했다. 메트로포울로스는 28일(현지시간) “휴 헤프너는 꿈을 좇는 사람이었고, 미디어의 거인이자 대중문화의 상징적인 존재였다. 그는 우리 사회에 잊지 못한 전설을 남겼다”는 추도사를 발표했다.
미국 연예뉴스 사이트인 TMZ에 따르면 그는 파티를 위해 고인의 친구들을 초대할 예정인데, 구체적인 파티계획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메트로포울로스는 앞으로 플레이보이 맨션과 자신의 집을 터서 재개발할 계획을 갖고 있다.

LA시 당국이 유일하게 동물원으로 허가를 내준 주택이 플레이보이 맨션이다. 헤프너가 우유를 마시는 아기 호랑이를 쓰다듬고 있다. [중앙포토]

LA시 당국이 유일하게 동물원으로 허가를 내준 주택이 플레이보이 맨션이다. 헤프너가 우유를 마시는 아기 호랑이를 쓰다듬고 있다. [중앙포토]

‘헤프너 맨션’은 시간을 거슬러올라가면 프랭크 시나트라, 딘 마틴부터 최근 10년사이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나 찰리 신 등 수많은 할리우드 셀럽들이 플레이메이트 등 절세 미녀들과의 파티를 즐긴 곳이다. 헤프너가 40년간 머물렀고, 미국에서는 백악관 다음으로 유명한 저택 중 하나다.

플레이보이 맨션을 배경으로 마당을 거닐고 있는 공작새. [중앙포토]

플레이보이 맨션을 배경으로 마당을 거닐고 있는 공작새. [중앙포토]

플레이보이 맨션은 로스앤젤레스 시 당국이 ‘동물원’으로 허가를 낸 유일한 주택이기도 하다. 택지 내에는 헤프너가 취미로 키운 새와 원숭이 등 많은 동물들이 살고 있다. TMZ에 따르면 메트로포울로스가 동물들도 지금처럼 같은 환경에서 살 수 있도록 관리할 예정이다.

서정민 기자 meantr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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