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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바지에 슬리퍼 신고 유럽 오페라 보는 법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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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1호 14면

김상훈의 컬처와 비즈니스 : 이벤트 시네마

메가박스의 ‘2017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포스터

메가박스의 ‘2017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포스터

메가박스의 오페라 ‘라 보엠’ 포스터

메가박스의 오페라 ‘라 보엠’ 포스터

롯데시네마의 오페라 ‘호프만 이야기’ 포스터

롯데시네마의 오페라 ‘호프만 이야기’ 포스터

여름휴가가 절정으로 치닫는 7월 말이면 알프스의 산자락 보덴 호수에서는 매년 브레겐츠 페스티벌이 열린다. 많은 이들의 버킷 리스트에 올라 있는 이 오페라 축제에 참여하는 아주 근사한 방법을 소개하고자 한다. 메가박스에 가면 된다(올해는 코엑스점 등 전국 15개 지점에서 상영했다). 반바지에 슬리퍼 차림으로 빈 심포니가 연주하는 ‘카르멘’을 팝콘과 버터구이 오징어를 먹으면서 즐길 수 있다(여름밤 호숫가의 낭만은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 한다).

메가박스는 2009년부터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공연을 상영하고 있는데, 올해에는 ‘메가박스 클래식 소사이어티’라는 이름 아래 메트 오페라뿐 아니라 빈 필, 베를린 필의 야외 공연과 브레겐츠 및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을 상영관에 걸었다. 2013년에는 빈 신년음악회를 위성 중계하기도 했다.

롯데시네마도 2016년부터 밀라노 라 스칼라와 파리 국립오페라의 공연을 상영해 오다가 지난 5월부터 영국 로열 오페라 하우스 공연 상영을 시작했다. 지금까지 ‘오페라 인 시네마’ 프로그램을 통해 상영된 오페라는 ‘노르마’, ‘코지 판 투테’, ‘호프만 이야기’ 등 3편이다. 발레도 1편(‘잠자는 숲 속의 미녀’) 상영했다. 내년에는 ‘마술피리’ 등 오페라 6편과 ‘백조의 호수’를 포함한 발레 6편 가운데 라인업을 선정할 예정이다.

영화관 빈 객석을 공연 무대 영상으로 채운다
이른바 ‘라이브 이벤트 시네마(live event cinema)’ 혹은 ‘라이브 캐스트(livecasts)’가 부상하고 있다. 영화관들은 빈 객석을 채우기 위해 대안 콘텐트를 찾아 나섰고, 오페라를 비롯한 공연 극장들은 관객 확대와 추가 수입을 기대하며 너도나도 ‘공연 영상화’에 뛰어들고 있는 것이다. 저렴한 관람 비용과 근접성(Price and Proximity)은 이벤트 시네마가 잠재관객에게 어필하는 가장 강력한 소구 포인트다.

국립극장의 NT 라이브 2017 포스터

국립극장의 NT 라이브 2017 포스터

2006년 뉴욕의 메트 오페라 단장으로 부임한 피터 겔브(Peter Gelb)는 업계 관계자들과 직원들의 반대에도 “죽어가는 오페라의 생명을 부지하기 위해(to keep opera alive)” 어쩔 수 없는 선택임을 공언하며 전세계 극장에 공연을 생중계하는 ‘HD 라이브(Live)’를 출범시켰다. 결과는 대성공. 첫 해에는 적자를 보았으나 둘째 해부터 흑자를 냈고, 2010년 이후는 안정적으로 3000만 달러에 육박하는 수입을 내고 있는데, 이는 공연 박스오피스 수입의 30퍼센트에 달하는 수치다.

‘HD 라이브’의 성공은 라 스칼라, 파리 국립오페라,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의 라이브 캐스트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특히 런던의 로열 오페라는 석유회사 BP의 후원을 받아 미들랜드 같은 영국 내 오페라 소외지역에서 ‘BP 빅스크린’이라는 이벤트를 열고 있는데, 수익보다 공익을 강조하는 영리한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스폰서인 BP는 이 프로그램에 대만족한 나머지, 20년 넘게 해오던 테이트 미술관 후원을 끊었다). 서울 예술의전당도 ‘싹 라이브(SAC Live)’ 프로그램을 통해 임실·강진·태백·포항 등지에서 파리나무십자가 소년합창단 등의 공연을 중계한 바 있다.

이벤트 시네마는 본 조비(2001)나 데이비드 보위(2003)의 공연에서 시작해 뉴욕 메트 오페라(2006)에서 꽃을 피웠지만, 클래식에서 연극·무용·뮤지컬·미술 전시와 스포츠에 이르기까지 점차 장르가 확대되고 있다. 영국의 내셔널 시어터는 ‘NT 라이브’를 2009년 시작했는데, 나름 성공을 거두어(600만 명 관람) 로열 셰익스피어 컴퍼니 등조차 영화관 상영에 나서게 했다.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 가면 단돈 1만 5000원에 이 ‘NT 라이브’를 관람할 수 있다. 2014년 첫 수입 상영작 ‘워호스’부터 전석 매진의 기염을 토했다. 영국 드라마 ‘셜록’으로 유명한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출연한 ‘햄릿’과 ‘프랑켄슈타인’도 객석점유율 백퍼센트를 기록했다(금년 2월 상영한 ‘제인 에어’는 90퍼센트).

뉴욕 브로드웨이 뮤지컬도 영화관 상영을 하고 있다. ‘다이렉트 프롬 브로드웨이(Direct from Broadway)’를 통해 ‘멤피스’, ‘지킬 앤 하이드’ 등의 뮤지컬 영상을 전세계 극장에서 관람할 수 있게 한 것이다. 런던의 대영박물관은 폼페이 전시를 전문가와 함께 관람하는 장면을 영화관에서 라이브로 상영했는데(‘Pompeii Live’), 지역 학교와 연계하고 학생들을 초대하여 좋은 반응을 얻었다.

“관객 눈높이만 높아져 국내 공연 예술계가 어려워진다?”

롯데시네마의 발레 ‘잠자는 숲속의 미녀’ 포스터

롯데시네마의 발레 ‘잠자는 숲속의 미녀’ 포스터

메가박스의 오페라 ‘예브게닌 오네긴’ 포스터

메가박스의 오페라 ‘예브게닌 오네긴’ 포스터

하지만 공연예술의 영화관 상영이 안고 있는 문제는 결코 적지 않다. ‘공연’의 정의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미학적인 문제부터, 현장의 생생함(liveness)을 전달하기 위한 기술적인 어려움도 남아 있다(연기자의 땀과 숨소리, 관객의 리액션, 그리고 기침 소리까지). 시차로 인해 생중계가 어려워 지연중계를 해야 하는 문제도 있다. 위성중계 카메라를 지나치게 의식한 오페라 가수가 오버를 하여 ‘음이탈’을 하는 경우도 있고, 클로즈업 샷으로 인해 연기자 외모(특히 안면피부)의 중요성이 부각되는 문제도 있다. 고가를 지불하고 현장에서 관람하는 관객들은 머리 위를 휙휙 지나가는 지미집에 생명의 위협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급예술의 영화관 상영은 좀더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벤트 시네마가 아직까지 국내에서 큰 호응을 못 얻고 있는 이유 중에는 오페라나 클래식 애호가가 절대적으로 적다는 인구통계적 요인도 있지만, 사업자의 소극적인 마케팅 노력도 포함된다(독자의 상당수가 ‘왜 난 여태 이걸 몰랐지?’라고 당황해 하고 있을 것이다). 메트 오페라, 빈 필하모닉 등의 공연을 자주, 쉽게 접하면 관객 눈높이 상승이 일어나 국내 예술계가 어려워진다는 씁쓸한 논리를 소극적 홍보의 이유로 내세우기도 한다.

뉴욕 메트의 경우 젊은 고객층을 영화관을 통해 흡수한다는 전략이 그다지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는 분석이 있긴 하지만, 지독히 젊은 국내 영화관 관객층을 감안할 때 예술 관객의 저변 확대에 상당한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이른바 예술 소외지역의 경우는 말할 필요도 없다.

게다가 잘 기획·제작된 ‘웰메이드’ 공연이나 소셜 미디어 시대에 더욱 수요가 집중되는 ‘메가 히트작’들이(콜드플레이 공연이나 조승우의 지킬 앤 하이드같은!) 객석 공간의 제약을 넘어 초과 수요를 흡수할 수 있는 좋은 대안일 뿐 아니라, 디지털 시대에 부응하는 미래형 플랫폼이기도 하다. ‘제살 깎아 먹기’나 ‘예술의 상품화’로 바라보는 편협한 시각을 벗어나, 새로운 관객을 찾아가는 보완재로서의 이벤트 시네마가 공연예술과 영화관의 윈윈(win-win) 모델로 발전하길 기대한다.

김상훈 :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 미술경영협동과정 겸무교수. 아트 마케팅, 엔터테인먼트 마케팅 등 문화산업 전반에 걸쳐 마케팅 트렌드와 기법을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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